[영화비평]
[듀나의 영화비평] <원더우먼>과 제1차 세계대전
2017-06-13
글 : 듀나 (영화평론가·SF소설가)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에게 원더우먼은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다. 린다 카터 주연의 텔레비전 시리즈도 방송국을 옮긴 시즌2부터는 70년대로 건너뛰었고 이후 코믹북 시리즈도 윌리엄 몰턴 마스턴의 시절 이후 그 시대에서 점점 멀어졌지만 어린 시절 한번 각인된 이미지는 쉽게 잊히지 않는다. 아무리 <저스티스 리그> 시리즈가 현대를 배경으로 한다고 해도 <원더우먼> 영화는 무조건 40년대가 배경이어야 한다고 내가 아무도 안 들어주는 허공에 대고 혼자 외쳤던 것도 이해해주셔야 한다. 그만큼 TV시리즈 시즌1과 골든 에이지 코믹북 시절의 고풍스러우면서도 천진난만하고 낙천적인 분위기를 사랑했다.

그 뒤로 나는 꾸준히 가까운 미래에 만들어진다는 <원더우먼> 영화의 배경에 관심을 가졌다. 망해버린 에이드리언 팔리키 주연의 TV시리즈 파일럿에서는 무대가 현대였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원더우먼> 시나리오를 영화사에서 사들였다는 소문이 들린다. 이후 소문을 들어보면 나중에 판권 문제가 생길까봐 미리 대비한 것이란다. 그럼 시대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될 수도 있는 것인가?

그런데 엉뚱한 소문이 들린다. 패티 젠킨스가 감독하는 <원더우먼>의 시대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이 될 것이다!

여기서부터 나는 당황하기 시작한다. 이해는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슈퍼히어로영화는 최근에 하나 나왔다.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져>(2011)와 <원더우먼>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두 영화의 분위기가 겹치지 않길 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은 할리우드에서 비교적 다루기 쉬운 시대이다. 선악이 분명하고 당시에 대한 향수와 자부심도 강하다. 성조기 색깔의 유니폼을 입은 미국의 슈퍼영웅이 나치와 싸우고 있는 그림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럽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라? 어느 전쟁이라고 선악으로 단순하게 나뉠 수 있겠냐만, 이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만큼 명확해 보이지는 않는다. 젠킨스의 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도 제2차 세계대전과 똑같았고 독일군은 모두 그냥 독일군일 뿐이라고 주장할 것인가?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패티 젠킨스의 영화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정공법으로 치고 나가는 영화였고 시대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젠킨스의 제1차 세계대전은 차선책으로 선택한 ‘위장한 제2차 세계대전’이 아니었다. 그냥 제1차 세계대전이었고 영화는 아주 사실적이지는 않더라도 이 시대를 있는 그대로 이용한다.

영화 속 상황을 보자. 미군 파일럿 스티브 트레버가 아마존들이 사는 숨겨진 섬 근처에 추락하고 앞으로 원더우먼이라고 불릴 다이애나가 그를 구출한 뒤 바깥 세계의 전쟁에서 싸우기 위해 같이 바깥 세계로 나간다는 설정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나간 세상은 사악한 나치가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 팔을 벌리고 있는 40년대 초반이 아니라 수년 동안 끌어온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마지막 전쟁’에 양쪽 모두가 지쳐 있는 1918년 가을이다. 이 영화의 최종 악역처럼 보이는 인물은 실존 인물의 이름을 빌리고 있지만 전혀 상관없는 악당인 에리히 루덴도르프 장군인데, 그는 닥터 포이즌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이자벨 마루가 발명한 독가스로 이미 다들 끝났다고 생각하는 전쟁에서 이기려 한다. 그리고 다이애나는 루덴도르프 장군이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전쟁의 신 아레스의 현신이고 그를 죽이면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믿는다.

제1차 세계대전을 경유하여 획득한 보편성

가장 먼저 건드려야 할 것은 페미니즘이다. 사실 이 영화의 다이애나는 골든 에이지 원더우먼과는 달리 바깥 세계 여성의 권리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아레스를 죽여 영원히 전쟁을 끝내고 인류를 구해야 한다는 더 큰 목표가 먼저다. 하지만 영화는 다이애나보다 더 많은 것을 본다. 남자들만의 성스러운 영역에 눈치 없는 젊은 여자가 들어왔을 때 발생하는 긴장감, 20세기 초 서구 여성들이 막 벗어나기 시작한 구시대 복식의 갑갑함 등등. 영화는 고정 캐릭터 에타 캔디를 영국인 서프러제트로 만드는데, 에타는 이 영화에서 다이애나의 존재를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당연히 동시대의 여성권리쟁취 운동은 원더우먼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물론 여성 진출이 이를 통해 확대되었던 제2차 세계대전도 잘 어울렸지만 기왕이면 진짜 초창기로 가는 것이 더 신화적인 시작이 아닐까.

하지만 스토리 면에서 영화가 더 구체적으로 집중하는 것은 전쟁 자체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호평을 받는 액션 신이 있는 벨드 전투를 보자. 신선하면서도 그만큼이나 익숙하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제1차 세계대전 전장에 나타난 고대의 초자연적인 존재가 독일군을 때려잡고 승리를 안겨다준다는 이야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유명한 제1차 세계대전의 전설인 몽스의 천사들이다. 아니면 그 이야기와 연결되었다고 믿어지는 아서 매켄의 단편 <사수들>을 예로 들어도 좋고. 이 부분은 코믹북 슈퍼 히어로 액션보다는 죽어가는 병사들 사이를 떠도는 전장의 전설을 그대로 영상화한 것처럼 보인다. 그 때문에 약간의 귀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다이애나가 보는 전쟁과 스티브 트레버를 포함한 전쟁은 다르다. 다이애나의 전쟁은 옳고 그름과 목표가 분명하다. 과정도 마찬가지여서 마치 체스게임의 킹을 잡듯 최종 보스인 아레스를 제거하면 끝이 나는 게임이다. 이 관점은 아직 20세기 현대전을 직접 경험해본 적이 없는 구세대의 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이애나 주변의 군인들은 참호전과 셸 쇼크, 대공습, 기관총과 탱크를 모두 겪은 사람들이다. 전쟁은 더이상 구식 영웅담의 재료가 아니고 전투는 영예를 잃었으며 선악은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제1차 세계대전은 제2차 세계대전처럼 선명한 미국의 성공 신화를 제공해주지 않으며 영화는 이 흐릿함을 일부러 노출시킨다. 전쟁광 루덴도르프 장군도 여기에 분명한 선명성을 더하지는 않는다. 그는 오히려 대량살상 무기를 만들면 필연적으로 닥칠 수밖에 없는 자연적인 사고에 가깝다.

그 와중에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과는 다른 보편성을 확보받는다. 제1차 세계대전은 이제 그냥 ‘전쟁’이 되고 원더우먼은 절대 악 나치와 싸우는 애국적인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현대전과 현대 정치의 잔인한 난장판에 버려진 옛 시대의 유령과 같은 존재가 된다. 성장물로서 <원더우먼>은 환상과 이상으로 구성된 이 과거의 유령이 (그리스 신화에 기반한 캐릭터의 배경은 여기에 아주 잘 들어맞는다) 불완전하고 더러운 동시대와 불안한 화해를 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으로 첫걸음을 디디면서 끝이 난다. 그러는 동안 영화는 굉장히 잔인한 수를 둔다. 앞에서 다이애나가 신화적인 전투 끝에 구출한 벨드의 주민들을 루덴도르프 장군의 독가스로 날려버리는 것이다.

이 영화의 아레스가 코믹북의 아레스보다 훨씬 설득력 있게 발전한 존재이며 최종 전투 직전까지 상당히 인상적인 존재감을 과시함에도 불구하고 다소 잉여처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주제만 본다면 아레스는 이 영화에서 얼마든지 잘라낼 수 있는 불필요한 방정식과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원더우먼>은 전쟁에 대한 영화인 만큼 신화적 영웅이 신화적 악당과 맞서 싸우는 신화적 여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언제까지 이 인물을 현대의 현실적인 역사에만 남겨놓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아레스와 마찬가지로 원더우먼 역시 잉여의 존재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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