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이 땅의 모든 여자들은 ‘자유로운 척’ 할 뿐이야! <안티포르노>
2017-06-14
글 : 김현수

영화가 시작하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성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다음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방 안을 뛰어다닌다. 마치 연극 무대처럼 생긴 방에서 기이한 행동과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는 그녀의 이름은 쿄코(도미테 아미). 그녀의 말에 따르면 쿄코는 어린 나이에 일찍 성공한 예술가로 그림과 소설 모두에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 그런 그녀가 여성 아티스트로서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갑갑함을 토로하던 중이다. 그런데 쿄코 주변의 상황이 갈수록 기괴해진다. 아침 일찍 한 잡지사의 인터뷰 스케줄을 안내하러 온 매니저 노리코(쓰쓰이 마리코)를 쿄코가 발가벗겨 괴롭히더니, 마침 잡지사의 취재 일행이 쿄코의 집에 들이닥쳐서는 둘에게 뜨거운 포즈와 성적 관계를 강요한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이 영화 속 영화 촬영현장의 한 장면이었음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정체 모를 액자식 구성의 미로 속으로 빠져든다. <안티포르노>는 소노 시온 감독이 로망 포르노 리부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예술’이란 주제를 가지고 만든 일종의 실험극이다. 주인공 쿄코는 좁은 방 안에서 셀러브리티로서의 허상과 여성 아티스트로서의 상상력의 원천에 대해 신랄한 방식으로 비판의 메시지를 남긴다. 10분에 한번씩 정사 장면이 등장해야 하는 로망 포르노 장르의 규칙을 교묘히 이용하면서 여성 캐릭터의 육체를 남성 우월적 시각에서 소비하던 세태를 풍자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소노 시온 감독은 액자식 구조나 연극적 요소가 바탕에 깔린 1인 실험극 등 화려한 연출 기법을 통해 여성을 억압하는 것들에 대해 분노를 쏟아내는 쿄코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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