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웃음)” 한국영화에서 쉽게 도전하지 않았던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 영화가 등장했다. 조선호 감독의 <하루>는 반복되는 하루에 갇힌 남자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화다. 주어진 시간 안에 실수를 되돌리지 못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사건을 마주해야 한다. 마치 게임처럼 속도감 넘치는 90분의 짧은 러닝타임 동안 관객을 끌고 가야 하니, 상당히 정교한 계산과 과감한 연출이 중요했을 것이다. 관객의 취향에 따라 평가가 극명하게 나뉠 것 같다고 걱정하는 조선호 감독을 첫 언론 시사회가 끝난 직후 만나, 데뷔작을 내놓은 소회와 아이디어의 출발점에 대해 물었다.
-반복되는 하루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12년, 조감독 생활을 정리하고 데뷔를 준비하면서 오래전에 써놨던 메모를 뒤적이다 “끝나지 않는 하루, 지옥 같은 하루가 반복된다”는 문구를 보고 이야기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워낙 흔하다. 초고를 완성하니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가 개봉하더라. (웃음) 신선함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영화들과 차별화된 <하루>만의 전략을 짜는 게 관건이었겠다.
=반복은 반복인데 매일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남자의 하루와 매일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남자의 하루가 출발점이었다. 너무 어두운 이야기지만 그런 상황에 놓인 이들의 심정은 어떨까, 혹은 어떤 이유에서일까를 상상하며 2년 동안 써내려갔다.
-배우 김명민과 변요한은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과 땅새 역할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드라마의 영향으로 캐스팅하게 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시나리오를 준비할 때 주인공 준영과 민철의 성격에 대비를 주고 싶었다. 의사인 준영은 딸을 구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생각하며 행동하고, 민철은 감정이 앞서는 스타일이다. 준영은 관객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 배우이길 바랐고 민철은 에너지와 분위기만으로 슬퍼야 했다. 김명민과 변요한이 적역이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침 드라마가 끝날 때쯤이었는데 김명민씨에게 먼저 시나리오를 건넸더니 내게 말도 안 하고 요한씨에게도 읽어보라고 권했더라. (웃음)
-타임루프라는 설정상 애초 인물들에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시간을 얼마나 부여해줄 것인가에 따라 영화의 성격과 리듬이 달라졌을 텐데.
=지금의 조건이 짧다는 느낌이 들어서인가? (웃음) 제목은 ‘하루’지만 인물들이 깨어나서 교통사고가 벌어지는 순간까지 사실상 2시간 남짓의 시간이 주어지는 셈이다. 만약 사건 해결에 24시간이 주어진다면 누군가를 구해야만 하는 시도 외에 다른 행동도 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기 때문에 이야기의 집중도가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세 인물의 상황과 감정, 이들의 지옥 같은 관계에 집중하고 싶었던 것이 단순화한 이유다.
-반복되는 특정 상황에 집중하다 보니 영화가 자연스럽게 굉장히 빠른 호흡을 유지한다.
=기획 단계 때부터 러닝타임이 길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분명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한다. (웃음) 한 호흡으로 영화를 밀고 나가다 보면 배우들이 디테일하게 표현한 부분을 캐치하기 힘들 수 있다. 이 지점이 편집하면서 고민했던 부분이다. 양날의 검이다. (웃음) 질질 끌지 말고 가되 후반부에서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는 장면들은 상대적으로 조금 여유를 줬다.
-김지운 감독과 오래 작업해온 김지용 촬영감독과 함께 작업했다. 촬영상의 기본 컨셉과 톤을 이야기할 때 원했던 룩이 있었나.
=굉장히 건조한 톤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우리의 촬영 컨셉 역시 단순하고 간결하게 찍자는 것이었다. 과한 테크닉은 지양하자, 배우의 힘을 믿고 배우에 집중하는 촬영을 하자고 촬영감독과 의견을 나누었다. 그리고 같은 날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카메라를 전부 같은 앵글로 찍을 것이냐의 문제에서는, 가급적 같은 앵글로 가되 배우의 연기로 변화를 보여주자고 했다. 관객이 지루하다 느낄 수도 있겠지만 배우를 믿고 밀어붙였다.
-반복되는 촬영이다 보니 겹치거나 순서가 헷갈리기도 했을 것 같다.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해서 써도 괜찮을 장면도 보이고…. 현장이 궁금하다.
=솔직히 말하면 변화된 감정을 보여줘야 하는 장면 외에, 다시 써도 괜찮을 것 같은 몇 장면은 편집할 때 반복해서 쓴 경우가 있다. 이것이 장점이었다면 촬영 순서 때문에 생긴 어려움은 단점이었다. 한 장소에서 두 신을 찍는다고 할 때 보통의 영화는 1신 찍고 이어서 10신 찍는 식인데, 우리는 한컷 찍을 때, 첫날과 둘쨋날, 넷쨋날 찍고 이동해서 또 첫날, 둘쨋날, 셋쨋날 찍는 식이었다. 디테일과 연결을 짓는 게 정말 어려웠다.
-시나리오와 완성된 영화와의 온도 차이가 상당하다. 하드보일드에 가까운 시나리오에 비해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면 인물의 심리 변화를 감정적으로 강조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시나리오로는 정말 많은 버전이 있었다. 안 가본 길이 없을 정도다. 지금보다 훨씬 더 장르적 쾌감을 강조하는 버전도 있었다. 결국 지금의 버전을 선택한 이유는 <하루>가 장르가 아니라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촬영감독과 반은 농담으로 이 영화는 오직 바스트숏만으로 찍으면 어떨까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길게 바스트숏을 찍은 장면도 있다. 결국 인물의 감정을 보여주기 위해 바스트숏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해 찍은 것이다.
-왜 주인공의 하루가 반복될까 고민해보면, 결국 시간을 거슬러 현재를 되돌려야 하는 과오를 저지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후회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현재의 잘못된 선택에 의해 내일 후회를 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하루를 되돌리고 싶다는 상상의 원천이다. 결국 영화에서 반복되는 하루를 살펴보면 맨 마지막 날 빼고는 전부 어떤 잘못을 하나씩 하고 있다. 사실 세 사람 모두 나쁜 사람이지만 이들은 정치인도, 깡패도, 형사도 아닌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의 후회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격정적으로 묘사한 부분은 있지만 영화적인 설정 안에서 용서와 화해의 이야기를 깔고 싶었다.
-첫 상업 장편영화를 연출한 소감이 어떤가.
=영화를 세상에 내놓는 지금, 나 혼자 발가벗겨진 기분이다. (웃음) 정말 아무 생각이 없다. 수백번 본 영화이다 보니 지금 내게는 단점만 보인다. 장르적인 쾌감을 우선으로 접근하는 관객도 있겠지만, 복수는 끝이 없다는 말처럼 가혹한 상황에 놓인 인물들을 통해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가지고 돌아갔으면 좋겠다.
-다음 영화는 어떤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나.
=개인적인 취향인데 역사적 격변기를 좋아한다. 그런 시기에는 항상 이름 모를 개인의 삶이 소용돌이치면서 무언가 툭 튀어나와 신념을 가진 지도자로 각성하기도 하고 자기도 몰랐던 인간성이 발현되기도 한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개인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20년쯤 후에 내공이 좀 쌓이고 나서 해야 할 것 같은데.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