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직접 만나고 깜짝 놀랐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목소리와 말투가 연상됐기 때문이다. 그럴 만도 하다. 그는 2000년 총선에서 자원봉사자로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행한 뒤로 2003년 기획재정부 장관 정책보좌관,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제2부속실장을 차례로 지내며 노 전 대통령과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이후 2006년 지방선거에서 부산 북구청장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 2008년 총선에서 부산 북구강서구갑에 민주통합당 간판을 달고 출마했다가 낙선, 2012년 총선에서 같은 지역구에 또 낙선했다. 연거푸 세번이나 낙선의 고배를 마신 그는 지난해 총선에서 네번째 도전 끝에 국회의원(부산 북구강서구갑)으로 당선됐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의원으로서 한국 영화산업에 관심이 많은 그가 새 정부 들어 처음으로 토론회 ‘다시 시민 품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정상화’를 6월 22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연다.
-현재 흥행하고 있는 영화 <노무현입니다>에 잠깐 나온 걸 봤다. 20대의 앳된 얼굴이더라.
=극장에서 몇 차례 봤다. 시사회도 지역구에서 주민들과도 함께 봤다. 영화의 초반부, “후보님 오십니다”라고 외친 것이 나다. 2000년 부산 북구강서구을 총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행하면서 그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삶의 궤적이 아주 드라마틱해서 앞으로도 그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많이 나올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한국 사회와 비교했을 때 지금은 많은 과제가 남아 있지 않나. 우리가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억을 하나 꼽자면.
=2008년 총선에서 부산 북구강서구갑에 출마해 득표율 39%를 얻고 낙선했다. 당시 많은 동료들이 민주당(민주통합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나만 민주당 간판을 달고 나갔다. 선거가 끝난 뒤 모두 봉하마을에 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동료들의 무소속 출마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가지고 계셨지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다른 일 때문에 좀 늦게 도착한 나를 보자마자 “우리 막내 (전)재수가 내보다 표를 더 많이 받았다… 나는 (부산에서) 32%, 재수는 39% 받았으니 나보다 더 대단하다”라고 얘기한 기억이 난다.
-당선이 확실한 지역구를 버리고 부산에 도전했던 그처럼 의원님 또한 부산에서 4수 끝에 지난해 총선에서 당선되지 않았나.
=힘들고 어려운 부산에서만 네번 도전했다. 그분이 온몸에 생채기를 만들면서 한번도 간 적 없는 길을 개척했다면 우리는 그 길을 묵묵히 따라간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유지(지역감정 타파와 동서화합)를 받드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이기도 하다. ‘제 할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줬는데 떨어져봐야 재수만 할 것이다’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4수나 할 줄은. (일동 폭소)
-올해 한국 영화산업과 관련해서 여러 토론회를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어떤 취지에서 여는 토론회인가.
=‘한국영화의 새로운 10년을 위한 아고라’라는 이름의 연속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정상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개혁, 대기업 수직계열화로 인한 구조적 문제 해결 등 여러 문제가 있다. 이제는 국정농단 국면을 수습하고, 적폐들을 청산하며, 한국영화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할 때다. 이 과정에서 영화인·시민·정치권·행정부 등이 참여하는 장을 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과거 영화계 내부에 아주 모범적인 ‘공론의 장’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토론회를 통해 영화계 공론의 장이 복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첫 번째 토론회가 ‘다시 시민 품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정상화’다.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아직 재판을 받고 있고, 최근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이 안타깝게 세상을 뜬 일도 있었다. 해결해야 할 우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부산지역 국회의원인 까닭에 부산국제영화제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 시민들이 키운 영화제다. 문정수 전 부산시장 또한 ‘지원은 해도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다. 하지만 부당한 정치권력이 팔길이 원칙을 깨고 영화제를 사유화하려고 했고, 이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영화제와 영화인을 탄압하고 예산을 삭감했다. 문화예술계의 첫 번째 적폐청산은 부산국제영화제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공론의 장에서 영화인들이 마음을 모으고, 부당한 간섭과 개입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한 뒤 공동의 대응방안을 만드는 게 이번 토론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이 있어야 개별적인 문제를 풀어갈 수 있고,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 회복 또한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상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아직 재판을 받고 있지 않나. 사법부가 정의로운 판결을 내릴 거라는 믿음이 있다.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문제는 개인의 재판으로 바라볼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검의 수사 결과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의 배후에 박근혜 정권의 조직적 탄압과 정치적 개입이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의 재판은 단순히 영화계만의 문제만이 아니며 문화예술계 전체적으로 불행한 일이고,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연속 토론회가 영진위 개혁, 대기업 수직계열화 문제, 독립영화 지원, 현장스탭 근로 환경 개선 등 영화계 문제 전반을 다루고 있는데, 이 문제들에 대한 입장도 궁금하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시장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 경제 주체간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이 문제들을 바라볼 것이다. 영진위 개혁은 철저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대기업 수직계열화 문제는 한국영화가 발전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라는 전제에서 고민하고 합의한 뒤 결론을 내렸으면 좋겠다. 독립영화 지원 문제는 상영관 확보를 포함한 산적한 과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문제는 상생과 문화적 다양성, 그리고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전제되어야 한다.
-영화계의 주요 현안들은 이번 국감에서 다룰 계획이 있나.
=여당이든 야당이든 한 사람의 헌법기관으로서 과거 정부의 적폐에 관해서는 관용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관심을 가지고 영화계 현안들을 지켜보고 잘못된 문제가 있다면 질책도 하고, 대책도 강구하려고 한다.
-개인적인 질문도 하고 싶다. 평소 극장을 자주 찾는 편인가.
=두달 전까지는 개봉영화를 거의 모두 챙겨봤다. 아내와 두딸은 부산에서 살고, 혼자 서울에서 숙소 생활을 하고 있다. 숙소가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근처인데 집 앞에 멀티플렉스 체인이 하나 있었다. 밤 9시가 넘어 그곳에 가면 영화를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큰 극장을 전세내다시피하며 영화를 봤다. 그런데 장사가 안 되는지 두달 전에 문을 닫았더라. 부산에 내려가면 가족과 함께 영화 보러 극장을 자주 찾는다.
-내 인생의 영화가 궁금하다.
=스코틀랜드 독립을 그린 <브레이브하트>(감독 멜 깁슨, 1995). 개봉 당시 굉장히 감동적으로 봤다. 최근에 본 영화로는 <변호인>(감독 양우석, 2013)이 있다.
-마지막으로 <씨네21>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
=<씨네21> 독자들이 촛불혁명에 많이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씨네21> 또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정론의 길을 걸어오지 않았나. 영화계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씨네21> 독자들의 집단지성을 기대한다. 관심을 갖고 좋은 의견을 주시면 의정 활동에 적극 수용하겠다. 개혁의 과정은 험난하니 부족한 점이 많더라도 계속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시면 최선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