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이 얼굴을 기억해두세요
2017-06-23
글 : 주성철

한동안 연락을 주고받다 끊긴 여배우가 있다. 연락이 끊긴 이유는, 당연한 얘기지만 활동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거의 10년도 더 된 2000년대 초반에 처음 만나 인터뷰를 했었다. 이번호 ‘독립영화계 신 여성배우들 7인’ 특집처럼 여러 단편영화의 주인공 혹은 상업영화의 조·단역으로 이제 막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배우들을 만나는 특집이었다. 그런데 당시 그 배우는 약속시간보다 무려 2시간 늦게 촬영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소속사가 없는 데다 집은 경상도라 기차를 타고 서울로 왔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라 노선표만 보고 버스를 잘못 탔기에 늦은 것이었다. 섭외 전화를 했을 때 서울에 있는 것으로 얘기하지 않으면, 혹시라도 (기자와 사진작가가 번거롭게 지방 출장을 가야 하는 상황이 되어) 인터뷰가 취소될까봐 “마침 오디션 보려고 서울에 있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하고는 부랴부랴 서울로 온 것이었다. 나중에 얘기를 나누며 안 것이지만 “어디쯤 오셨어요?”라는 기자의 확인 전화에,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를 버스에 앉아서는 “죄송합니다. 너무 막혀서요”라는 말만 되풀이해야 했을 때 얼마나 막막했을까 싶었다.

혼자 버스 타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나 손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던 그 여배우처럼, 그때나 지금이나 소속사가 있는 배우보다 없는 배우가 더 많았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 배우의 가장 큰 고민도 바로 소속사 문제였다. 단편영화의 주인공으로 얼굴을 알린 뒤 작은 역이나마 TV 아침드라마에 바로 출연하게 된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으나, 역시 그다음 스텝이 문제였던 것이다. 어떻게 개인 연락처를 알았는지 여기저기서 만나자는 연락은 많이 오지만,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홈페이지나 전화번호도 나오지 않는 회사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요즘으로 치면 나무엑터스, 매니지먼트 숲, 싸이더스HQ, 씨제스, 판타지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같은 곳이라면 안심할 텐데 매번 혼자 모르는 이들과 미팅을 갖는 것도 힘든 일 중 하나라고 했다. <스물>이라는 영화 속 치호(김우빈)의 연인 은혜(정주연)가 처한 상황을 떠올려보면 알 것이다. 게다가 ‘인맥’이라는 것에 의지해볼 법한 영화학과 출신도 아니고, <라라랜드>의 미아(에마 스톤)처럼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는, 그래서 오디션이라도 볼라치면 하루 휴가를 내야 하는 지방 출신 고졸 배우에게 영화란 예술 이전에 비즈니스였다.

문제는 그것이 남배우가 아닌 여배우에게 더 심각한 조건이라는 점이다. ‘남자나 여자나 무명의 슬픔은 똑같은 것’이라는 말로 넘겨버리기에는, 오디션에서 여배우에게 할당된 배역 수 자체가 일단 적고, 남배우와 달리 ‘풀 메이크업’을 요구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처럼 당시 그 배우는 ‘듣보잡’ 신인 여배우로 살아가는 고단함을 얘기하며 살짝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배우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힘닿는 데까지 해보겠다며 웃는 얼굴로 헤어졌지만, 이후 소식은 더 씁쓸했다. 당대 청춘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TV드라마에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뻐했던 것도 잠시(동시에 인터넷을 통해 소속사가 생긴 것도 알게 됐다), 그로부터 며칠 뒤 다른 배우로 캐스팅이 바뀌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어떤 이유로 그렇게 됐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후 이메일 답장을 통해 ‘고향 집에 가서 다른 일 해 볼 생각이에요’라는 얘기만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이유로 그렇게 됐는지는 처음부터 묻지도 않았고, 그녀가 먼저 얘기해주지도 않았다.

너무 우울하게 마무리된 듯하지만, 이번호에 만난 배우들은 하나같이 ‘안 되면 말고’ 식으로 씩씩하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된다. 그리고 올해 <씨네21>은 경기콘텐츠진흥원, 사람엔터테인먼트와 함께하는 신인배우 오디션과 페스티벌도 계획 중이다. 다음호부터 2주 연속 커버 촬영도 진행한다. 어떤 식으로든 신뢰할 만한 ‘공식적인’ 자리와 통로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 특집을 채운 배우들 한명 한명에 대한 기사를 꼼꼼히 읽고 기억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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