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크루즈의 <미이라>는 괴작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흥행과는 별개로 쏟아지는 최악의 평가들을 보면 괴작이란 이름도 과분해 보인다. <미이라>는 유니버설 픽처스의 새로운 시네마틱 유니버스인 ‘다크 유니버스’의 문을 열겠다는 목표 아래 기획됐다. 할리우드는 언제나 ‘다음 영화’의 안정적인 흥행을 꿈꾼다. 영화 사이 세계관을 공유하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이제 할리우드의 새로운 장르나 마찬가지다. 기획의 입장에서 볼 때 이만큼 매력적인 아이템도 드물다. 일단 세계관을 구축하고 학습만 시키면 시리즈를 줄줄이 안착시킬 수 있는 것이다. 마블의 어벤져스는 하나씩 계단을 쌓듯 만들어진 경우지만 이후 후발주자들이 시도하는 유니버스는 대개 시작단계부터 엔딩까지 거대한 그림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유니버설 픽처스도 욕심이 났을 것이다. 사실 유니버설은 1930, 40년대 호러영화 황금기에 이미 영화들의 크로스오버를 수차례 시도한 경험이 있다. 당시엔 힘이 떨어진 캐릭터를 어떻게든 되살리려 이것저것 섞어본 절박한 시도였지만 본질적으로 프랜차이즈 혹은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판매전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기 있는 캐릭터를 크게 내세우고 다른 캐릭터들과 충돌시키면서 반복, 변주하는 것. 어쩌면 개별영화라기보다는 연속극에 가까운 묶음 상품인 셈이다.
다크 유니버스는 꽤 그럴듯한 아이템처럼 보인다. 관객에게 유니버스 형식은 이제 낯설지 않은 방식이고, 자신들의 창고엔 매력적인 몬스터 캐릭터들이 쌓여 있으며, 유니버스의 전신이라고 할 만한 크로스오버를 기획한 경험도 있다. 지구를 구하는 히어로 일색인 분위기에서 몬스터(내지 다크 히어로)라는 설정도 이색적이다. <반 헬싱>(2004), <울프맨>(2010) 등 개별영화로 이미 수차례 리메이크하려 했지만 번번이 좌절을 맛본 아이템들도 묶어서 크게 판을 키우면 왠지 잘될 것만 같다. <미이라>는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를 짊어지고 태어난 영화다. 1999년 브렌던 프레이저 주연의 <미이라> 시리즈는 나름 괜찮은 성적을 거뒀지만 3편에 이르러 생명력이 다한 만큼 리부트하기에 적격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미이라>는 태생적으로 단독 영화가 되기엔 불가능한 위치에 서 있다. 톰 크루즈의 <미이라>에 대한 혹평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적은 이야기의 얼개에 대한 것이다.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건데, 한마디로 ‘말이 안 된다’는 인상을 받는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미이라>는 아마네트 공주(소피아 부텔라)를 굳이 런던 한복판에 떨어뜨려 지구상의 모든 악을 감시한다는 비밀결사 프로디지움으로 초대한다. 아마네트 공주와 그녀의 제물로 선택된 닉 상사(톰 크루즈)를 프로디지움의 수장인 지킬 박사(러셀 크로)와 만나게 하는 건 이미 개별영화로 <미이라>의 세계 바깥에서 벌어지는, 어찌 보면 불필요한 이야기다. <미이라>는 그 불필요한 부분에 모든 힘을 쏟는다. 서로 다른 세계관을 잇기 위해 접착제처럼 등장하는 인물을 배치시키다 보니 정작 영화 안에서 인물들끼리의 감정선은 생략되어 있다. 가령 닉이 고고학자인 제니(애나벨 월리스)에게 바치는 헌신과 애정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도대체 둘이 함께했다는(대사로만 나오는) 그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해질 정도다. 요컨대 <미이라>는 시종일관 정신이 딴 데 팔려있다가 할 말을 못하고 끝나는 영화 같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그래서 <미이라>가 재미없냐고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거다. 호러를 기반으로 액션과 코믹 요소가 섞여 있는 이 영화를 즐기는 데 서사와 드라마는 필요조건이 아니다. 대개 액션영화에서 드라마는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한 최소한의 뼈대 역할을 한다. 없으면 액션 자체를 즐기기 어렵지만 절대적이진 않다. 캐릭터의 설명과 감정적인 설득이 무너진 <미이라>에서 이야기라는 뼈대를 담당하는 건 다름 아닌 톰 크루즈의 존재다. 어느 순간부터 톰 크루즈는 이미 하나의 장르처럼 기능하고 있는 것 같다. 가령 영화 초반부터 콤비를 이루는 크리스(제이크 존슨)와 티격태격하는 장면들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벤지(사이먼 페그)를 연상시킨다. 요란하게 자랑하는 무중력 비행기 시퀀스나 톰 크루즈의 육탄 액션 등은 분명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사실상 <미이라>와 무관한 (혹은 어울리지 않는) 액션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 다름 아닌 톰 크루즈가 서 있을 때 우리는 큰 거부감 없이 액션을 받아들일 수 있다. 여기서 맥락을 잇는 건 닉 상사라는 캐릭터가 아니라 톰 크루즈라는 스타다. 심지어 <미이라> 시리즈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모래 폭풍 장면에서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1999년 <미이라>와 2011년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이 함께 연상된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톰 크루즈는 닉이라는 캐릭터를 구원하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의 존재감(또는 스타성)으로 다크 유니버스라는 세계관을 관통하고 떠받칠 최소의 얼개를 짜는 데 주력한다. 엔딩 시퀀스에서 모래 폭풍을 뒤로한 채 질주하는 귀여운(?) 장면을 보고 피식 웃을 수 있다면 오직 거기 톰 크루즈가 있기 때문이다. 톰 크루즈는 영화 내러티브 바깥에 서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존재로 활용된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 <미션 임파서블3>의 각본을 쓴 알렉스 커츠먼이 메가폰을 잡은 것도 이런 방향성에 한몫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톰 크루즈의 <미이라>는 클래식 고딕 호러의 조악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와는 톤이 다를지언정 (좀비물로 변용된) 호러의 색채를 확실히 드러내는 지점은 코믹 어드벤처에 가까웠던 1999년 <미이라>보다 좀더 관객을 압박하는 긴장감이 있다.
물론 톰 크루즈가 항상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다는 건 아니고, 그런 방향을 찬성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욕망이야말로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영화의 본질적인 속성이라고 느낀다. <미이라>는 개별영화로 성립하기 어려울 정도의 패착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다만 수습하려고도 하지 않는 뻔뻔함이야말로 시네마틱 유니버스라 불리는 프로젝트들의 민낯이 아닌가 싶다. 전체적인 밸런스의 붕괴가 군데군데 박힌 재미있는 장면과 아이디어들을 즐기는 데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 기묘한 상태. 생각해보면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프로젝트 자체가 불균질한 개별영화들을 서로 다른 톤으로 얼기설기 엮어나간 것에 불과하다. 약간 과장하자면 <미이라>는 액션, 어드벤처, 호러, 로맨스 등 여러 영화들을 조립해놓은 것처럼 불균질하다. 사실 톰 크루즈만큼 호러에 어울리지 않는 배우도 드물다. <미이라>가 온전히 호러의 톤을 유지하지 못한 건 뜬금없는 유머를 남발하는 톰 크루즈 탓도 있을 것이다. 개별영화로서 실패라 불러 마땅하겠지만 구멍을 메우는 스타(캐릭터가 아니라 스타다)의 접착력 덕분에 최소한의 뼈대는 유지한다. 재미있는 부분만 골라 즐기기에 크게 부족함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 이유로 최소한 망작이 아니라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욕망의 민낯을 드러내는) 괴작은 된다고 변명해주고 싶다.
공포의 스타일을 창조하다
<프랑켄슈타인>(감독 제임스 웨일, 1931)
거대한 몸집에 각진 머리, 납작한 헤어스타일 아래로 꿰맨 상처가 역력하다. 홀쭉하게 팬 양 볼을 지나면 목을 관통한 두꺼운 볼트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리가 흔히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알고 있는 이 괴물은 사실 이름이 없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창조한 박사의 이름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프랑켄슈타인의 이미지가 이토록 강렬하게 각인된 건 아마도 1931년 제임스 웨일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의 영향일 것이다. 1818년 메리 셸리의 소설은 이전에도 연극 등으로 각색되었지만 제임스 웨일의 손을 거쳐서 비로소 살아났다고 해도 좋다. <프랑켄슈타인>은 같은 해 개봉한 토드 브라우닝 감독의 <드라큘라>와 함께 30, 40년대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공포영화 전성기를 견인했다. 동시에 걸출한 두명의 스타를 낳았는데, 바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역을 맡은 보리스 칼로프와 <드라큘라>의 벨라 루고시다. 사실 벨라 루고시는 <프랑켄슈타인>에도 캐스팅되었지만 거절한 일화가 있다.
1931년작 <프랑켄슈타인>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작품이 이후 영화사에 숱하게 반복되는 명장면들의 전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벼락을 모아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하는 시퀀스는 ‘생물을 되살린다’는 코드의 시초가 되었고, 헨리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신을 거역한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원형으로 자리매김한다. 그 밖에도 물에 빠진 소녀가 떠오르지 않는 걸 괴로워하는 괴물의 모습, 낡은 풍차에서 박사와 대치하는 모습, 횃불을 들고 괴물을 쫓는 마을 사람들의 실루엣 등 숱한 공포영화들의 근간이 될 장면들을 창조했다. 독일 표현주의를 연상시키는 미술과 촬영으로 고딕 호러의 외양을 다졌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공포영화라는 스타일의 창조주라 해도 좋겠다. 인간이 기계 부품 취급을 받는 산업혁명에 대한 혐오와 공포가 깔려 있는 원작의 어두운 결말에 비해 풍자적인 성격이 한층 짙어진 이 영화는 원작과 달리 괴물을 어린아이에 가까운 순수한 존재로 그렸다는 점이 이채롭다. 덕분에 유니버설의 크리처 중 가장 선한 이미지를 품고 있는 존재가 되었고, 극적 아이러니를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얻었다. 호러영화가 아님에도 팀 버튼의 <가위손>(1990)을 보면 <프랑켄슈타인>이 생각나는 이유다.
<프랑켄슈타인> 영화 중 가장 걸작으로 불리는 작품은 1935년 제임스 웨일 감독의 속편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다. 그 밖에 영국의 해머 영화사가 만든 1957년 테렌스 피셔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의 저주>가 이에 견줄 만한 작품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 어떤 변주도 결국 보리스 칼로프의 크리처를 벗어나긴 어렵다. 단역배우에 불과하던 보리스 칼로프를 일약 스타로 만든 건 탄탄한 이야기와 인상적인 스타일도 있지만 결국 프랑켄슈타인 속 괴물을 직접 형상화해낸 분장이다. 유니버설의 분장사 잭 피어스의 손길에서 탄생한 프랑켄슈타인의 디자인은 폭력과 순수가 공존하는 그로테스크의 정점 중 하나다. 해부학까지 고려해서 디자인된 괴물의 모습과 대사 하나 없이 느린 몸짓으로 창조주를 압박해가는 보리스 칼로프의 팬터마임 연기는 이후 어떤 크리처도 넘어설 수 없을 하나의 벽이 되었다. 보리스 칼로프는 1932년 <미이라>에서 이모텝 역을 맡기도 했는데 분장의 도움 없이도 상대를 몰아붙이는 그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하비에르 바르뎀의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다크 유니버스가 선택한 원형은 1935년작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다. 1931년작 <프랑켄슈타인>에는 원작의 설정이 다수 빠져 있었고, 누락된 이야기들을 모아 4년 뒤 후속편에 반영했다. <프랑켄슈타인의 신부>에는 하비에르 바르뎀이 캐스팅됐고, 안젤리나 졸리가 추가 캐스팅 물망에 올랐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선보였던 하비에르 바르뎀이 이 순수하고 이중적인 괴물을 어떻게 소화할지 기대를 모은다. 가만 보면 두꺼운 눈꺼풀을 천천히 끔벅거리는 모양에서 보리스 칼로프가 연상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여주는 방식
<투명인간>(감독 제임스 웨일, 1933)
1933년작 <투명인간>은 SF 호러의 첫걸음이라 할 만하다. 1920년대부터 다양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 괴기스런 영화를 만들어가던 유니버설 픽처스는 1931년 <드라큘라>의 흥행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크리처영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 그 대표주자 중 한 사람이 바로 제임스 웨일 감독이었다. 제임스 웨일 감독은 1931년 <프랑켄슈타인>, 1933년 <투명인간>, 1935년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일약 유니버설을 대표하는 감독 반열에 올랐다. 유니버설의 성공한 두 크리처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창조한 셈이니 ‘호러영화의 아버지’라 불릴 만하다.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투명인간>은 첫 영화 <프랑켄슈타인>과 달리 최대한 원작에 충실하고자 하는 성실한 연출을 보여준다. 아마도 이때의 경험이 다음 작품인 <프랑켄슈타인의 신부>에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볼거리를 위해 투명인간 그리핀의 폭력적인 행동과 사건들이 좀더 늘어났다는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인 구성은 원작을 그대로 따랐다. 조지 웰스가 살아 있을 때 제작된 덕분에 작가 본인의 철저한 검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장르영화의 한계상 깊이 있는 주제는 상대적으로 단순화한 측면이 있다. 예컨대 웰스의 소설에서 <투명인간>은 현대사회의 인간 소외와 차별을 그린 우화에 가까운데, 영화는 결과적으로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광기와 약의 부작용으로 서둘러 결말을 짓는다. 참고로 약혼녀 플로라는 영화에서 추가된 오리지널 캐릭터인데, <타이타닉>에서 노년의 로즈 역을 맡았던 글로리아 스튜어트의 젊은 시절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투명인간>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투명인간이라는 상상력을 구현한 방식에 있다. 배우의 분장과 연기에 기댈 수 있었던 다른 크리처와 달리 투명인간은 종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특수효과가 필요했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대상’이란 딜레마를 표현한 방식은 검은 벨벳과 붕대, 선글라스 그리고 침대에 누운 베개 자국, 눈 위에 찍힌 발자국 같은 주변의 흔적들이다. <투명인간>이 추구한 단순한 투명 스타일은 유려한 카메라워크를 통해 효과적으로 부각된다. 투명인간이 붕대를 푸는 장면, 거울을 보는 장면 등은 이후 유사한 소재의 영화들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되었다. 특히 투명인간이 거울을 보는 장면의 경우 3개의 장면을 따로 찍어 이어붙이는 등 정교한 편집의 재미를 확인할 수 있다.
무명이었던 클로드 레인스를 주연으로 발탁한 것도 신의 한수였다. 클로드 레인스는 이 영화에서 마지막 엔딩의 딱 한 장면을 제외하곤 오로지 목소리로만 연기를 했는데 오히려 매혹적인 목소리에 집중한 덕분에 명배우 반열에 오른 사례라 할 수 있다. SF의 상상력과 호러의 분위기 사이 빛을 발하는 건 제임스 웨일 특유의 블랙코미디 성향이다. 웨일은 호러와 코미디의 충돌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했던 대표적인 감독이고 그 괴팍한 호흡과 미의식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바로 <투명인간>이다. 이후 ‘투명인간’이란 소재 자체가 드라마나 코미디로 확장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조니 뎁의 <투명인간>
다크 유니버스 버전의 <투명인간> 역에는 조니 뎁이 낙점됐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배우를 캐스팅해서 투명인간으로 만든다는 발상이 놀라우면서도 이보다 적절한 캐스팅이 없는 듯 보인다. 1933년 <투명인간>은 예상보다 코미디적 요소가 훨씬 짙은 데다 연극적이고 과장된 장면들도 꽤 있어 여러모로 조니 뎁이 쌓아온 익살맞은 이미지에 부합하는 지점이 많다. 허버트 조지 웰스의 원작을 좀더 살린다면 단순한 광기가 아니라 혁명가적 사상을 지닌 독특한 투명인간이 탄생할지도?
유니버설 호러의 중개자
<늑대인간>(감독 조지 와그너, 1941)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 미라에 이어 유니버설 픽처스 4대 크리처의 대미를 장식한 시리즈는 다름 아닌 늑대인간이다. 늑대인간의 경우 특이한 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1935년 <런던의 늑대인간>이 아니라 1941년 조지 와그너 감독의 <늑대인간>(The Wolf Man)이 향후 늑대인간 영화의 원형으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유니버설 호러영화의 황혼기에 나온 <늑대인간>은 70분이라는 짧은 분량에, 전개도 매우 빠르며, 영국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소품에 가깝다. 그럼에도 <늑대인간>의 원형으로 자리잡게 된 건 인상적인 특수효과 때문이다.
주인공 래리(론 채니)가 반인반수의 늑대인간으로 변신하는 장면의 합성 트릭은 나름 당대 특수효과의 집약이었다. 온몸이 털북숭이가 된 채 이족 보행을 하는 늑대인간의 모습은 <런던의 미국인 늑대인간>(감독 존 랜디스, 1981)이 나오기 전까지 영국 해머 영화사의 <늑대인간의 저주>(1961)를 비롯한 늑대인간 영화들에서 끊임없이 변주되었다. 덕분에 십자가가 드라큘라의 약점으로 함께 묶이는 것처럼 늑대인간과 은탄환을 연결 짓는 등 캐릭터의 특징과 상징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최초의 늑대인간 영화인 스튜어트 워커 감독의 <런던의 늑대인간>이 현대를 배경으로 한 것에 반해 조지 와그너의 <늑대인간>은 19세기를 배경으로 하여 고딕 호러의 분위기를 한층 살린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그렇게 <늑대인간>은 주연을 맡은 론 채니의 대표작이 되었다. <투명인간>의 클로드 레인스가 론 채니의 아버지 탈보트 경으로 출연하고 <드라큘라>의 벨라 루고시가 단역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늑대인간>은 유니버설 황혼기에 나온 만큼 단일 영화로서의 임팩트를 유지하기보다는 여러 시리즈와 크리처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이것이 바로 <늑대인간> 시리즈의 두 번째 특이한 점이다. 이미 유니버설 크리처들의 힘이 떨어지고 있던 시기라 단독으로 속편이 나오던 <프랑켄슈타인> 등과는 다른 전략이 필요했던 것이다. <늑대인간> 2년 뒤인 1943년 <프랑켄슈타인과 늑대인간>이 나오면서 본격적인 크로스오버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늑대인간으로 변하는 주인공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찾는다는 설정으로, 치밀한 기획은 아니지만 본격적인 몬스터 콜라보레이션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재밌는 건 간판스타 벨라 루고시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역을 맡았다는 건데, 벨라 루고시는 원래 <프랑켄슈타인>에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대사가 한마디도 없어서 거부했다가 결국 괴물 역할을 수락했다. 1944년작 <프랑켄슈타인의 집>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늑대인간, 드라큘라까지 한자리에 모였지만 이미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시기에 접어들어 장르 변주의 끝자락을 선보이기도 했다.
드웨인 존슨의 <늑대인간>
유니버설 호러 클래식 작품들의 크로스오버의 중심에 선 크리처인 늑대인간인 만큼 누가 이 역할을 맡을지가 관건이다. 아직 캐스팅이 결정되지 않았으나 현재 드웨인 존슨이 물망에 올라 있다. 변신 장면 등은 어떤 작품을 원형으로 삼을지 모르지만 할리우드에서 가장 티켓 파워가 센 스타 중 한명인 드웨인 존슨이라면 원형에서 가장 많은 변주를 겪은 늑대인간을 충분히 소화하고도 남을 것 같다.
새로운 몬스터의 탄생
<해양괴물>(감독 잭 아놀드, 1954)
이미 전성기를 지난 유니버설 호러 시리즈가 거의 마지막으로 창조한 크리처가 바로 <해양괴물>의 ‘아가미 인간’이다. 스토리는 매우 단순한데 고생물학자, 어류학자가 고대부터 살아남은 아가미 인간을 탐사하고, 아가미 인간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적을 살해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아가미 인간이 학자의 약혼녀인 케이(줄리아 애덤스)에게 한눈에 반하고 그녀를 납치한다는 로맨스 요소를 넣기도 했다. 물론 영화는 호러의 방향성을 잃지 않고 아가미 인간의 최후를 보여준다. <해양괴물>의 가치는 아가미를 가진 양서류형 인간이라는 새로운 몬스터를 탄생시켰다는 점, 그리고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수중촬영에 공을 들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멕시코에서 전승되는 크리처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아가미 인간’의 디자인은 이후 해양괴물들의 또 다른 전형을 제공했다. <해양괴물>은 본격 스쿠버영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수중 촬영 분량이 많은데, 4회 정도의 수중 신이 러닝타임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다. 해양괴물답게 대사보다 수중에서의 사투를 주로 그리고 있으며, 덕분에 대사가 없는 초기 유니버설 호러 클래식의 무성영화적 매력을 십분 발휘한다. 해양괴물과 여주인공의 로맨스가 중요한 요소인 만큼 여주인공의 액션 분량도 상당히 요구됐다. 최초의 수중 카메라와 수중 에어건, 거대한 조명 등을 접할 수 있는 <해양괴물>은 수중 촬영 기술의 발전과 함께 그동안 꾸준히 리메이크 이야기가 나왔던 영화 중 하나다. 현재 스칼렛 요한슨이 캐스팅 물망에 올라 있으며, DC가 제작 중인 <아쿠아맨>의 각본 작가 윌 빌이 작가로 내정되었다.
다크 유니버스의 안내인들
<반 헬싱>과 <지킬 앤 하이드>
다크 유니버스에 합류하기로 결정된 <반 헬싱>은 현재 가장 미지에 싸인 프로젝트다. <드라큘라>(1931)에서 드라큘라를 퇴치하려는 반 헬싱 교수는 일종의 빌런에 가까운데, 그간 단독 영화로 등장하진 않다가 2004년 휴 잭맨이 주연을 맡은 <반 헬싱>이 제작되기도 했다. 원작에서는 노년의 교수 이미지지만 단독 영화에서는 뱀파이어 헌터 느낌이 강했다. 재미있는 건 반 헬싱이 늑대인간으로 변신하는 설정을 추가하여 세계관을 믹스하고 뱀파이어 대 늑대인간의 구도를 그렸다는 점이다. 다크 유니버스 전체를 총괄하고 있는 알렉스 커츠먼은 <반 헬싱>이 단독 영화로 나올 것이라고 여러 차례 공개했고, <미이라>의 톰 크루즈도 출연할 예정이다. 반 헬싱은 몬스터 헌터로서 다크 유니버스를 묶어주는 존재인 셈인데, <미이라>에서 등장한 또 한명의 다크 유니버스 안내인 헨리 지킬 박사(러셀 크로)와 어떻게 역할을 나눌지도 궁금하다. 다크 유니버스는 악을 견제하는 비밀결사 프로디지움을 중심으로 몬스터들을 연계해나갈 예정이며, <노틀담의 꼽추>(1923)의 콰지모도, <오페라의 유령>(1925)의 팬덤 등 호러 크리처 이전인 1920년대 유니버설 고딕영화들도 세계관 안으로 끌어오는 장대한 프로젝트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미이라>를 통해 정체가 상당 부분 공개된 지킬 박사가 앞으로 몬스터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갈지에 다크 유니버스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