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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꽃> 박석영 감독 - 나를 위로하는 나
2017-07-06
글 : 이주현
사진 : 오계옥

박석영 감독은 <들꽃>(2014), <스틸 플라워>(2015), <재꽃>(2016)으로 이어지는 ‘꽃 3부작’을 통해 우리가 손잡아주지 못한 소녀(들)의 이야기를 해왔다. 집 나온 세 소녀의 위태로운 걸음을 따라 밟았던 카메라(<들꽃>)는 이어서 매정한 세상에 맨몸으로 부딪히는 홈리스 소녀를 들여다보았고(<스틸 플라워>), 다시 시골에 정착한 소녀가 자신을 닮은 소녀를 보살피는 과정(<재꽃>)을 따라간다. <재꽃>은 아빠를 찾으러 시골 마을에 도착한 11살 해별(장해금)과 해별의 친구이자 보호자가 되어주는 하담(정하담)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드라마다. 앞선 두 작품과 비교해 <재꽃>은 밝다. 희망적으로 3부작의 마침표를 찍고 싶었냐고 묻자 박석영 감독은 “이상한 대답이란 걸 알지만 하담이에게 친구가 생긴 게 좋다”는 말을 들려줬다. <재꽃>에 이르러 하담은 비로소 햇볕 아래서 웃는다. 외로웠던 한 소녀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웃음을 준 박석영 감독은 그러나 환히 웃지 못했다. 첫 대답부터 목이 메어선, 꽃 3부작을 완성한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아직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 애틋한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들꽃> <스틸 플라워> <재꽃>까지 1년에 한편씩 부지런히 결과물을 내놓았다.

=다른 동료 감독님들도 나더러 영화를 빨리 만든다고 하는데, 애초 3편을 찍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들꽃>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될 때 <스틸 플라워>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스틸 플라워>의 편집을 마무리하면서 <재꽃>을 생각했다. 그 생각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따라가보고 싶었다.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은 단 한번도 저절로 만들어진 적이 없다. <재꽃>으로 만난 안보영 PD가 지원사업을 알아봐준 덕에 처음 예술영화 제작지원이란 걸 받아봤다. 언제나 한 영화가 다음 영화를, 다음 영화가 그다음 영화를 위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줬다. 영화를, 영화의 힘을 믿고 지금까지 왔다.

-<스틸 플라워> 이후 하담의 이야기가 스스로도 궁금했나. <재꽃>의 이야기는 어디서 시작됐나.

=<스틸 플라워>의 마지막 장면에서 파도를 정면으로 맞던 하담은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 탭슈즈를 끌어안고 촛불을 켰을 거다. 그 촛불을 바라보는 하담의 마음속을 상상했다. 아마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하담이 어린 날의 자신을 찾아가서 그 아이 곁에 있어주고 같이 놀게 해주고 싶었다. 내 입장에서 중요했던 건 내가 위로하지 못했던 나, 아무도 지켜주지 않았던 나를 향해 좀더 큰 내가 달려가 위로하는 거였다. 또 한 가지, 이 아이(하담)가 웃는 걸 보고 싶었다. <들꽃>과 <스틸 플라워>에선 한번도 웃지 않았던 이 아이가 이번엔 웃을 수 있길 바랐다.

-<재꽃>은 앞선 두 영화보다 한결 밝고 건강하다. 초록의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시원해지고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담이 밥벌이를 하고, 작은 방이건 어디서건 산다는 게 중요했다. 어떤 계절에도 일은 하지만 어두운 밤만 뛰어다니던 애였으니까, 햇볕을 받으면서 먹고 일하고 사람들과 함께 있었으면 싶었다. 얘기했듯 <스틸 플라워>의 마지막 장면 이후 방 안에서 촛불을 들여다보는 하담의 모습에서 시작한 이야기라 그 순간 하담이 가고 싶은 곳에 대한 선택들이 <재꽃>에 반영되었다.

-하담과 해별의 만남뿐만 아니라 하담이 시골에 정착하면서 만난 가족들의 이야기가 서사의 또 다른 축을 담당한다.

=해별이 아버지를 찾으러 시골 마을에 오지만 아버지란 사람은 이웃집에 해별을 맡겨버린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악인이 아니라 매우 소소한 인간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순간의 이기심과 오해, 잠깐의 그릇된 선택으로 일을 망쳐버리는 소소한 인간들. 이 시대는 악의를 가지고 아이를 버리는 시대가 아니다. 그냥 우리의 마음이 바빠서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 거다. 그러곤 아이들을 잃어버리는데, 잃어버린 아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가족은 우리 삶의 한축이다. 하지만 그 믿음의 관계마저도 작은 것 때문에 흔들릴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흔들리는 존재니까. 영화적으로는 어떤 이들의 아침드라마가 있고 하담과 해별의 로드무비가 있는데, 하담과 해별이 그 아침드라마를 관통하는 구조를 생각했다.

-해별을 연기한 장해금은 정하담 배우와 묘하게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해금이랑 같이 작업하게 된 이유가 하담이와 함께하기로 한 이유와 비슷하다. 하담이는 정직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듣는 사람이다. 해금이한테서도 비슷한 걸 느꼈다. 캐리어를 끌고 가는 첫 장면을 찍을 때였다. ‘캐리어를 끌고 아빠를 찾아가는 거야, 아빠 집은 저기 앞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있어’ 그렇게 설명하고 해금이 뒤에서 카메라 들고 따라갔다. 그런데 가다가 멈춰서 꽃을 한참 보고 가는 거다. 나중에 물어봤다. 아빠를 찾아야 하는 순간에 왜 한눈을 팔았냐고. (웃음) 그랬더니 이러더라. “꽃이 예쁘잖아요.” 하담과 해별이 탭댄스를 함께 추는 장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하담이 해금에게 자신이 신고 있던 탭슈즈를 신겨주고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인데, 해금이가 맨발의 하담에게 자기 신발을 신으라고 내밀었다. 언니가 맨발로 서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신발을 줬다는 거다. 그런 순간들에서 확신이 생겼다. 감독이 배우에게 액션을 가르칠 수 있고 타이밍을 알려줄 순 있지만, 그런 마음까지 가르칠 순 없다. <재꽃>에선 두 배우가 너무도 평화로운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나는 그걸 가만히 지켜봤고. 그런데 정작 하담이는 세편 중 <재꽃>을 가장 고통스러워하며 연기했다. 밤마다 잠을 못 자고 어두운 시골길을 혼자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몇번이나 목격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서 그랬나보다.

=때려부수고 소리 지르는 건 너무 쉽지만 배려가 담긴 애정의 감정을 표현하기란, 그러면서 감정의 선을 넘지 않으려 노력하기란 쉽지 않았을거다. 친자증명서를 확인한 아버지 명호가 밤중에 해별을 무작정 데려가려 할 때, 하담이 “제가 데리고 나갈게요”라고 말하며 마음을 추슬러 해별을 보내는 그 순간이 사랑이 아닐까 싶다. 또 하담과 해별이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하담의 시선을 좋아하는데, 그때 현장에서 하담이가 “감독님 전 무얼 볼까요?” 하고 묻더라. 3부작을 매듭짓는 마지막 장면이라 사실 난 하담이 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하담이가 해금이랑 풀 뜯어서 머리에 꽂고 신나게 놀더라. ‘대체 왜 이러지’ 싶었는데(웃음) 생각해보니 나는 이 아이를 여전히 내 그림 속에 가두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우리는 종종 우울을 과장하며 사니까. 내가 유독 그런 게 심하기도 하고. 그래서 ‘감독님 뭘 볼까요’ 했을 때 좀더 슬픈 감정을 담고 싶은 마음에 “<들꽃>과 <스틸 플라워>와 <재꽃>까지 걸어온 길을 생각해보지 않을래”라고 말했다. 그런데 하담이는 그게 슬픈 감정이 아니었다더라.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하담이는 ‘다 됐어’ 하는 느낌으로, 모든 걸 털어내는 사람처럼 고개를 돌리고 걸어간다. 아이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꽃 3부작을 통과하며 하담이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랐나.

=<스틸 플라워>에서 하담이 그랬던 것처럼, 세상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더라도 자존감을 잃어버리지 않고 자신을 지켜내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는 섬세하고 따사로운 전사? 살다보면 원치 않는 많은 싸움을 하게되는데, 마음속의 탭댄스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을 보듬는게 아니라 적어도 옆에 있는 작은 아이 한명을 보듬을 수 있는 사람으로 나이 들면 좋지 않을까.

-최근엔 <포토그래퍼>(가제) 작품 준비차 아프리카에 다녀왔다.

=한달 정도 케냐에 머물렀다. 시나리오 정리도 하고 현장 답사도 할 겸. 그런데 참상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가난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건 힘든 일이었다. 가난하기 때문에 오히려 선명하게 비열한 모습들, 역시나 가장 큰 피해자가 돼버린 아이들의 모습을 목격해야 했다. 그렇게 보고 느낀 것들이 시나리오에 새로 반영됐는데, 어쨌든 이 작품 역시 제작지원이 필요한 프로젝트라 제작비가 마련될 때까지는 다른 작품을 소규모로 만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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