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사진작가 노순택·정택용, 다큐멘터리 감독 김일란 - 투쟁과 소외의 현장에 기록자 목격자 예술가로 서다
2017-07-12
글 : 이주현
사진 : 백종헌
노순택 사진전 <비상국가 Ⅱ: 제4의 벽>을 계기로 모이다
정택용, 김일란, 노순택(왼쪽부터).

기자는 2주일에 한번 <씨네21> ‘사진의 털’에 실리는 노순택 사진작가의 글과 사진을 누구보다도 먼저 받아보는 행운의 첫 번째 독자다. 말이 좋아 담당 기자지 고순도, 고밀도의 글과 사진을 시간 맞춰 척척 보내주는 그에겐 별달리 연락을 취할 일도 없다. 노순택 작가는 가끔 자신이 관여한 전시의 소식도 들려준다. 최근엔 반갑게도 개인전 소식을 메일 말미에 전해왔다. 8월 6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노순택 작가의 개인전 <비상국가Ⅱ: 제4의 벽>은 2008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었던 <비상국가>의 연장선에 있는 전시다. 오랜 기간 그가 천착해온 분단권력, 국가폭력이라는 주제가 이번 전시에 압축되어 있다. 프레임 바깥에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 사진이 찍힌 맥락이 궁금해지는 그의 사진은 다분히 동시대적이다. 동시에 간결한 조형미와 무심한 블랙 유머가 담긴 사진은 이것이 거친 현장에서 길어올린 사진이 맞나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리고 그 스타일은 시대를 뛰어넘어 아름답다. <비상국가Ⅱ: 제4의 벽> 전시를 계기로 그의 사진은 물론 노순택이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두명의 작가에게 연락했다. 김일란 감독과 정택용 사진작가는 용산과 밀양과 세월호라는 상징적 사건의 공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카메라를 들었던 이들이다. 현장의 기록자이자 목격자이자 예술가인 세 사람이 들려준 다큐멘터리와 사진의 상상력, 그리고 예술과 액티비즘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노순택_ 나는 전시장을 잘 지키는 작가가 아니다. 전시된 작업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심히 괴롭고 불편하다. 사진을 빤히 쳐다보건 어수선하게 보건 상관없이 그렇다. 대신 내 작업의 주인공이라고 해야 할까, 이 전시의 VVIP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 있는데, 명시적이건 암묵적이건 내가 사진을 찍도록 허락해준 분들이 전시장에 오면 시간을 내 설명을 해드린다. 모든 사진을 일일이 허락받고 찍은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사진은 대상이 찍지 말라고 하면 찍을 수가 없다. (경찰의 얼굴이 드러나는 경우도 많은데) 경찰의 경우 그 개인의 사적인 행동이 아니라 공무 집행 현장을 찍은 것이기 때문에 그건 국가의 얼굴이라 할 수 있다. 경찰 개인을 모욕 주는 게 아니라 국가의 합법적 폭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사진이 공개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정택용_ 그런데 요즘은 국가 공무원의 얼굴이 드러난 사진도 법률 용어로 표현하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보더라. 재판으로까지 번지는 일도 있고.

노순택_ 그런 다툼이 벌어진다면 싸워야 하지 않을까. 공무 집행 현장을 찍었다고 개인의 초상권 침해를 들먹이면 이미지로써 국가권력을 감시할 수 있는 길이 차단돼버리는 거니까.

=김일란_ 앞서 노순택 작가님이 ‘사진을 빤히 쳐다보건’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관객이 다큐멘터리를 빤히 쳐다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한번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사진은 빤히 보는 게 가능하다. 그 사진 앞에 머무르고 싶은 시간만큼 머무르면서 사진을 빤히 쳐다볼 수 있다. 그 시선은 사진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진가를 향한 것이기도 하니까 그 광경을 보는 게 민망하다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정택용_ 이번 전시의 설치 작업을 도와드렸는데, <잘라라 약자에게만 가혹한 그 손을>이라고 64장의 A4 분할 이미지를 이어 붙인 작품이 있다. 정교한 노동이 필요한 수작업을 시켜서 하긴 했는데 이제 그런 방식은 그만하셨으면 좋겠다. (웃음)

노순택_ 재밌는 에피소드가 담긴 작품이다. 지난겨울 박근혜 정부 퇴진 촉구 및 문화예술계·노동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항의하기 위해 광화문광장에서 문화노동자들이 천막 노숙을 했다. 그곳에 궁핍현대미술광장을 차렸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다루지 않거나 소홀히 여겼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천막 전시장이었다. 그런데 말 그대로 우리가 ‘궁핍’하니 큰 이미지를 프린트하는 게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묘안을 짜낸 게 광화문광장 건너편 KT 건물에 있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이용하는 거였다. 회원가입만 하면 컬러 프린트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어서 그곳을 창조적으로 이용했다. <잘라라 약자에게만 가혹한 그 손을>도 그때 만든 작품인데, 광장에서 한 작업을 이번 전시에도 하나 가져오고 싶었다. 택용씨가 고생 많았다. (웃음)

정택용_ 순택 선배와 나는 활동 반경이 겹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전시를 보면서 든 생각 중 하나는 그 작업들을 하나로 엮어내고 전시의 형태로펼쳐 보일 수 있는 그 차이는 뭘까 하는 거였다. 노순택 신문 사진과 완전히 다르거나 방송 장면과 아예 다른 사진을 찍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내 작업은 사람들이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살짝 비틀거나, 내가 아는 게 다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을 촉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전시 역시 이미지를 어떤 맥락에 위치시킬 것인가, 어떤 형식과 이야기 구조를 보여줄 것인가, 그런 고민을 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큐멘터리(사진)에서도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김일란_ <잘라라 약자에게만 가혹한 그 손을>이 전시된 작품 중에서 가장 이질적이었다. 동시에 가장 노순택 작가님스러운 작품이었던 것 같다. 그 작업에 적힌 글귀마저 그랬다. 예전에 용산 전시에서 봤던 사진 중에 젊은 용역의 팔뚝을 찍은 사진과 글(<솜털 오렌지 그리고 깍두기>)도 인상적이었는데, 글이 사진과 연동되면서 감동이 밀려와 울컥했다. 그런 게 바로 상상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노순택_ 언론과 비교해 나는 시간적으로도 한발 늦고 그만큼 파급력이 있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가 보여주지 않았던 것, 미디어가 보여줌으로써 가려진 이야기를 생각한다. 무언가를 보여준다는 것은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어떻게 보면 그것이 내가 현장에 있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순택 작가의 <감전> 시리즈.

공유와 제한의 딜레마

김일란_ 현장에선 택용 작가를 훨씬 자주 봤다. 실례를 범하면서 알게 된 사이다. (웃음)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도보행진 ‘소금꽃 찾아 천리길’때 김정우 전 지부장 발 사진도 자기가 찍은 거지? 그때 현장사진을 받아서 쌍용자동차 관련 영상을 만들었는데 그게 누가 찍은 사진인 줄도 몰랐다. 기본적으로 택용 작가는 자신의 사진이 어딘가에서 잘 쓰이고 있겠지하며 사진 크레딧에 크게 욕심내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사진이 영상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어떻게 해서 사진이 쓰이게 됐는지 알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얘기를 전해 듣고 바로 사과 전화를 했다. (웃음) 사진을 쓰기 전에 한번 더 확인을 해야 하는데 ‘활동’이란 명목으로 사진을 뭉텅이로 받아 쓴 거다. 사진이나 영상 미디어 활동가들이 이름 없이 활동할 때가 많다보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

노순택_ 현장에서 생산된 많은 이미지들이 어디까지 공유 가능하고 어떻게 사용을 제한해야 하는가는 민감하고도 중요한 문제다. 우리의 사진이 상황 개선에 기여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은 당연하다. 더군다나 상황이 현재진행형이라면 현장에서 생산된 이미지가 공적 자산처럼 더 많이 이용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간혹 나의 이런 마음씀이 누군가에겐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저들은 공짜로 사진을 줬는데 당신은 왜 돈을 바라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으니까. 현장에서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다 자기노동을 하는 거고 생활인으로서 기반도 만들어야 한다. 많은 선배 사진가들이 열의를 가지고 현장에서 작업했지만 또한 많은 분들이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기록자들에 대한 존중이라고 해야 할까. 물적이건 심적이건 제대로 존중받지 못한 데 대한 상처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일란_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서 같이 활동한 감독님의 영상을 KBS <추적 60분>에서 무단 도용한 일이 있었다. 항의했지만 미온적인 태도를 취할 뿐이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런 경우가 흔하디흔하다. 사안이 알려지는 게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공중파의 역할과 파급력이 있으니까 현장 미디어 활동가들은 대체로 협조하게 된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했던 노동이나 우리의 의도가 삭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출처를 명시하고 사용료를 지불하는 건 최소한의 요구이고 권리인데 그마저도 쉽게 무시된다.

노순택_ 예를 들어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사진을 요청하면 현장에서 함께 운동한 사람으로서 얼마든지 사진을 드릴 수 있다. 그런데 방송국에서 연락이 오면 무조건 사진 사용료를 주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내가 돈을 받으려고 사진을 찍은 건 아니라 할지라도 당신들은 돈을 지불하는게 맞다’고 얘기하는데 그러면 대부분 어이없어한다. 그래서 결국 사진이 방송에 나가지 못하면 또 씁쓸하다. 방송이 가지는 파급력이 있는데 쓰라고 할걸 그랬나 싶고.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면 현장 미디어 활동가들의 처우는 달라지지 않을 거다.

노순택 작가의 <비상국가> 시리즈.

“당신의 일은 이 모습을 찍는 거다”

김일란_ 궁금한 게 있는데, 두분은 사진 찍을 때 전시를 상정하고 사진을 찍는 경우가 있나. 이 사진은 작품으로 갖추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지.

노순택_ 개인마다 특별히 끌리는 순간이 다를 텐데, 어떤 모습이나 상황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누구라도 셔터를 누르게 되는 장면이 있다. 밀양에서의 사진들이 그렇다. 행정대집행을 하려고 경찰들은 밑에서 우루루 몰려 올라오고 있고 분노한 어르신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고 그런 상황에서 경사진 비탈길에 한 어머님이 우비를 입고 망연히 앉아 계셨다. 그 순간 사진을 찍는 게 죄스럽기도 했지만 찍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 사진은 나도 찍었고 택용씨도 찍었고 <한겨레21>의 박승화 기자도 찍었다. 접근한 거리마다 사용한 렌즈마다 프레임은 다르지만 누가봐도 이건 같은 사진일 수밖에 없다. 대상 자체가 압도적일 땐 기교나 스타일이 크게 필요치 않다.

김일란_ 사진전 <밀양을 살다>에서 전시된 작품인데, 송전탑 사이에 걸린 산의 풍경을 3면으로 분할한 게 있지 않나. 그런 사진(<감전> 시리즈)은 애초 전시를 상정하고 일부러 분할해 찍은 건가.

노순택_ 전시를 상정한 건 아니어도 그 풍경을 보면서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전탑 사이로 건너편 산이 보였는데, 처음엔 산만 찍고 다음엔 송전탑 철골이 걸리게 오른쪽과 왼쪽을 찍었다. 그러고 나니 왠지 송전탑이 근조 띠처럼 보이더라.

김일란_ 그 사진을 보면서 다큐멘터리와 사진의 매체 차이를 분명하게 느꼈다. 이걸 영상으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과연 영상으로 번역 가능한 감각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진을 한참 들여다봤다. 사실은 하나의 풍경인데 프레임을 나눔으로써, 3면의 사진이 하나로 조합될 때 느끼는 감각이 단계적으로 달라지지 않나. 마지막에는 이미지를 넘어선 의미에까지 도달하게 되고. 대체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건가 싶었다. (웃음)

노순택_ 3면 분할의 경우 종교화의 3면화에서 영향받은 측면이 있다. 그리고 사진은 프레임으로 세상에 가위질을 하는 거라서 선택한 프레임 안에는 바깥 것들이 배제되어 있다. 그것만 보여줌으로써 발생하는 트릭이 있다. 치열한 투쟁의 현장에도 누군가가 잠깐 담배 한대 피우는 풍경이 존재할 수 있는데 그 풍경만을 오려서 보여주면 고요한 풍경이 된다. 전체의 투쟁을 드러내는 이야기 안에 이 장면을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가, 상황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상황을 풍부하게 읽게 할 것인가 고민한다. 그렇게 현장을 묘사하든 기록하든 재현하든 작업의 과정에서 형식미를 구축하게 된다. 간혹 이 상황을 이렇게 아름답게 보여줘도 되나 싶을 때도 있고. 그런데 스타일만 남고 이야기가 증발된다면 그건 공허한 일 같다.

김일란_ 맞다, 작가님의 사진들은 예쁘다. (웃음) 디자인적으로 참 예쁘다. 119 구급차를 둘러싼 경찰의 모습을 부감으로 찍은 사진(<비상국가> 시리즈)도 일부러 그렇게 디자인한 것처럼 예뻤다.

노순택_ 연출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 그런데 현실이 비현실처럼 보이는 경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순간을 자주 마주하기 때문인 것 같다. 대추리에 강제집행이 시작되던 날 새벽녘에 들판 저 멀리서 양복 입은 용역 깡패와 하이바 쓴 용역 깡패와 무장한 경찰들이 밀려오는데, 어찌할 줄 모르던 농민들은 들에다 불을 질렀다. 연기가 자욱이 깔린 그 들판을 보는데 중국 무협영화 속 전투의 한 장면 같기도 했고 <파고>(1996)의 안개 낀 풍경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건 연출해서 만든 장면이 아니라 우리가 뉴스에서 봤던 사건의 한 장면인데 말이다.

김일란_ 개인적 감상이지만 두분의 사진이 주는 느낌은 꽤 다르다. 사진에서 느껴지는 수고스러움이 다르다고 할까. 앞서 언급한 김정우 전 지부장의 발 사진이 내게는 택용 작가의 시그니처 사진 같은 느낌이 있다. 그 사진이 그냥 정택용이란 사람 같다. 상처 난 발을 찍는 수고스러움, 그 발에 주목하는 마음이 정택용 작가인 거다. 그런데 노순택 작가님의 사진은 워낙 디자인적으로 예쁘기 때문에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수고스러움이 스타일에 가려진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스타일 때문에 가려지는 수고스러움이 확실히 있는 것 같다.

노순택_ 밀양에 갔을 때 한 할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여기 예술 하려고 오지 말라고. 충분히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라. 만약 어떤 시인이 현장에서 연대를 하는데, 그 시인이 짐만 나르고 돌아가서 정작 시를 안 쓴다면 그 또한 책임을 방기하는 게 아닐까. 핑계인지 모르겠지만 그곳에 카메라를 들고 갔다면 내 일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속된 말로 다들 몸빵만 한다면 어떻게 밀양을 풍성하게 얘기할 수 있겠나.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시인은 시를 쓰고 사진가는 사진을 찍음으로써 밀양에 대한 이야기는 풍성해질 수 있다. 더불어 밀양이란 공동체가 국가에 의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이야기할 때 일종의 문화예술적 사료로서도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택용_ 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드는 예가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이다. 기륭 조합원들이 정문 앞에서 천막 투쟁을 하던 시절이었다. 태풍 때문에 천막이 다 날아갈 판이었는데 현장에서 영상 찍던 감독이 도와주려고 달려가 천막을 붙잡았다. 그러니까 한 조합원이 소리를 질렀다. 지금 뭐 하시는 거냐, 당신의 일은 이 모습을 찍는 거다. 그런 감동적인 예도 있다.

노순택_ 기륭 같은 곳이 단위는 작지만 정말 치열하게 장기적으로 싸운 곳이다. 조직 단위의 연대보다도 개인 단위의 연대가 지속적으로 있었던 곳인데 거긴 그런 미덕이 있었다. 택용씨도 오랫동안 기륭 작업을 했지만, 기륭 노동자들이 오체투지할 때 카메라를 들고 그 고통스러운 행진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편치만은 않았다. 짧은 생각인지 몰라도 차라리 함께 기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기륭 같은 곳에선 걱정하지 말고 찍으라고 한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조금 덜 무겁다.

정택용_ 현장에서 사진 찍는 것의 어려움 중 큰 부분이 대상과 신뢰를 형성하고 관계를 만드는 과정인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회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사진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처음엔 뭐 하는 사람이냐, 사진은 왜 찍냐, 찍지 말라고 반응한다. 당연한 반응인데도 그 기간을 통과하는 게 힘이 든다. 그런데 기륭의 현장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건 내게 큰 행운이었다. 그땐 어쭙잖게 필름으로 사진 찍어서 집에서 현상하고 스캔해서 카페에 사진을 올렸다. 누군가가 그 사진을 보고 시위 현장의 피켓에 쓰고 선전물로 쓰더라. 내 사진이 이렇게 쓰일 수도 있구나 싶었고, 이렇게 쓰일 수 있는 사진을 계속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노순택_ 기륭의 투쟁을 기록한 정택용 작가의 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는 기륭이라는 단위사업장의 고된 투쟁을 그린 결과물일 뿐만 아니라, 사진가와 투쟁의 당사자들이 연대하고 호흡하면서 현장을 함께했을 때 그것이 어떤 결과물로 나올 수 있는가에 관한 굉장히 좋은 사례를 남긴 거라 생각한다. 빈손이기는 뭣해서 억지로 백서 내듯이 만든 책이 결코 아니다. 더불어 현장에서 사진가를 그냥 돌려보내지 않고 환대해준다면, 우리 이런 일이 있는데 왜 사진 찍으러 안 오세요, 하고 말을 걸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런 결과물이 나오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다.

정택용 작가의 <잠의 송Ⅱ>. 김정우 쌍용자동차 노조 전 지부장의 발.

지속 가능한 활동의 기반이 마련되길

김일란_ 요즘은 고민이 쏟아지는 시기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관객을 만나야 하는데, 관객을 만나야 하는 순간부터 복잡한 일들이 많아진다. 프로듀서로 참여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의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광장>도 배급해야 하고, 연분홍치마에서 제작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에 관한 다큐멘터리 <안녕 히어로>도 9월 초로 개봉 날짜가 잡혔고, <공동정범>도 9월에 개봉을 해야 하는데 독립다큐멘터리의 개봉 상황은 점점 안좋아지고 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비상업영화와 관련해 어떤 정책들을 구상하고 계시는지도 궁금하고(웃음), 연분홍치마라는 조직의 유지비는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걱정이고….

정택용_ 지난해에 사진집 <외박>을 냈고, 그 뒤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건립을 위한 전시 <두 어른>을 준비했고, 겨울엔 광화문 캠핑촌에서 예술인들과 함께 노숙을 했고, 지금은 그 상황의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뭘 찍어야 할지 고민이 깊은데, 8월에 꿀잠이 개소하고 나면 뭔가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노순택_ 언제까지 이렇게 현장에 나가서 현장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현장에 선다는 건 기본적으로 육체노동이지만 감정노동 또한 상당하다. 상대방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하고 공감능력이 끊임없이 작동하게끔 스스로 채찍질도 해야 한다. 반복해서 참사를 본다고 해서 그 참사에 익숙해질 순 없다. ‘이명박근혜’ 시절엔 너무나 많은 아우성이 있었다. 누군가는 그런 현장이 있어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아우성의 현장이 더이상 없어서 마음 편하게 그런 현장에 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속 편하게 다른 스타일도 개발하고 그러면 참 좋을 텐데. (웃음) 하지만 헛된 바람이란 걸 안다. 다만 뜨거운 열의를 가지고 현장에서 작업한 선배 작가들이 어쩔 수 없이 작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상황만큼은 깨졌으면 좋겠다. 나 자신도 좋은 선례를 만들고 싶다. 작업을 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이번 작업이 다음 작업을 위한 기반이 되어주는 환경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일란_ 앞서 택용 작가가 기륭의 천막 얘기를 하면서 감동적이라고 했는데, 그게 왜 감동인가 생각해봤더니 평소에 그런 인정을 못 받아서 그런 것 같다. 예를 들면 ‘416TV’의 지성아버지는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기 때문에 현장의 미디어 활동가들에게 항상 고맙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런데 사람들마다 그 이해의 정도가 다르다.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현장의 미디어 활동가로서 유의미하다고 생각되는 이 작업을 계속하고 싶은데 이것을 지속 가능한 활동으로 만들기 위한 이해의 기반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활동을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정책과 활로를 찾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사실 난 우리 같은 문화노동자들이 어떻게 먹고사는지 모르겠다. 노후가 제일 걱정이다. (웃음)

노순택, 정택용_ (끄덕끄덕)

정택용 사진작가. 2005년 서울 금천구 기륭전자에서 처음 현장 노동자들의 사진을 찍었다. 그뒤 대추리, 용산, 밀양 등의 현장에서 외롭고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피로한 육체와 뜨거운 마음을 사진으로 담았다. 개인 사진집으로 기륭전자 비정규직투쟁 1890일 헌정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2010), 고공농성과 한뎃잠을 담은 <외박>(2016)이 있다.

김일란 다큐멘터리 감독. 성적소수문화인권운동 단체 연분홍치마에서 활동 중이며, 다큐멘터리 <3xFTM>(2008), <두개의 문>(공동연출 홍지유, 2011), <공동정범>(공동연출 이혁상, 2016) 등을 만들었다. <두개의 문>과 <공동정범>을 통해 용산참사를 꾸준히 조명했으며,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활동 등 다양한 현장에서 미디어 활동가로 활약하고 있다.

노순택 사진작가. 한국전쟁 이후 ‘분단권력’이 어떻게 대한민국을 지배해왔는지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현장에서 사진을 찍었다. <분단의 향기>(2004), <얄읏한 공>(2006), <비상국가>(2008), <좋은 살인>(2010), <망각기계>(2012), <비상국가Ⅱ: 제4의 벽>(2017) 등의 개인전을 열었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씨네21> ‘사진의 털’에 글과 사진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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