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인턴십
2017-07-12
글 : 김혜리

※<스파이더맨 : 홈커밍>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

많은 이국 감독들이 미국의 광활한 땅과 끝없는 도로, 한적한 노변 식당(diner)과 모텔의 풍경에 매료됐다. 빔 벤더스, 아키 카우리스마키, 왕가위, 월터 살레스로 이어지는 긴 명단에 영국 감독 안드레아 아놀드도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이하 <아메리칸 허니>)로 이름을 올린다. 삶의 전망을 찾기 힘든 소녀 스타(사샤 레인)는 월마트에서 우연히 만난 청년(샤이아 러버프)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여 ‘가출팸’에 합류한다. <아메리칸 허니>는 모텔과 승합차의 영화다. 아이들은 일 나가는 미니밴 안에 흐르는 음악을 따라 부르고 밤이면 모텔 마당에서 춤을 춘다. “나는 미국의 모텔이 좋다. 방문을 열면 내 차가 보이고, 문 밖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 낯선 이들과 대화가 시작된다.” 안드레아 아놀드의 표현이다.

06/28

어떻게 한 거지? 설마 체구를 줄인 건가? <내 사랑>에서 장애를 지닌 왜소한 화가 모드로 분한 샐리 호킨스를 보는 순간, 배우라는 직군의 비현실적 능력에 새삼 경탄했다. 모드의 가족은 선천적 관절염으로 몸을 보통 사람처럼 가누지 못하는 그녀가 당연히 자기 앞가림도 할 수 없다고 믿어버린다. 그러나 샐리 호킨스가 연기해온 많은 여성이 그렇듯 모드는 사자성어 외유내강의 살아 숨쉬는 정의(定義) 같은 인물이다. 팔다리는 오그라져 있고 얼굴은 경련으로 떨리지만 그녀는 결코 겁에 질린 인간이 아니다. 마음이 답답하면 혼자 동네 펍에 가서 술도 마시고, 팔레트를 더듬어 그림을 그리며, 협박에 가까운 주변의 타박에도 주눅들지 않는다. 말과 말 사이에 어김없이 끼어드는 모드의 수줍은 미소는 약자의 아부라기보다 ‘ 당신을 상냥히 대할 테니 당신도 나를 그렇게 대해달라 ’ 는 요청이다. 모드가 온전한 성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는 그러니까 질병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예단이다. 독립하려는 모드에게 입주 가정부의 일자리와 숙식을 제공하는 이는 모드와 반대로 정신적으로 미숙하지만 강한 척 살아온 고독한 생선장수 에버렛(에단 호크)이다. 고아원 출신의 남자는 외딴 오두막에서 홀로 살며 아직도 고아원에 가서 끼니를 때운다. 에버렛은 사지가 멀쩡하지만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0에 수렴한다(대화의 명인 에단 호크의 캐스팅이 아이러니다). 말문이 막힐 때 에버렛이 의지하는 마지막 비상구는 화내기다. 버럭 하면 상대의 입을 막아 대화를 중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드가 집에 온 첫날 무슨 일부터 할까 묻자 에버렛은 “일일이 지시할 거면 내가 하고 말지!”라고 성을 내는데 여기서 우리는 그가 감정표현은 고사하고 아주 단순한 사실의 설명도 힘겨워하는 중증의 소통 장애를 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내 사랑>은 사회적 약자인 인물이 배려하는 반려자를 만나 잠재력을 실현한다는 인간 승리 미담이 아니라, 원래 강인한 여성이 본인의 자아를 실현하는 도중에 겉으로만 터프해 보였던 미성숙한 남자까지 돕는 이야기라서 진부하지 않다. 에버렛은 그의 오두막이 그러하듯 모드에게 허름하지만 꼭 필요한 지붕이고, 모드는 그 지붕 밑을 진정한 집(home)으로 변화시킨다.

에버렛은 모드와 동거한 지 두달 만에 뺨을 때리고 거칠게 모드를 밀어낸다. 이 행동은 착취와 증오의 발현이라기보다 친밀한 관계의 가능성이라는 ‘무시무시한’ 위기에 몰린 남자의 자기방어에 가깝다(물론 그렇다고 용인되는건 아니다). 분노한 모드는 밀린 급료를 받아 오두막을 뛰쳐나오지만 다음 순간 우리는 그 돈으로 물감을 사서 에버렛의 집에 돌아와 그림에 몰두하는 모드를 본다. <내 사랑>은 실화의 일부를 생략한다. 전기 작가와 기록에 의하면 폭력은 한번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고 에버렛은 다른 여성을 곁눈질했으며 모드가 유명해진 다음 아내의 재능을 이용한 면도 있다고 한다. 에이슬링 월시 감독은 루이스 부부에게서 영감을 받아 착안한 두 남녀의 희귀한 관계를 그리기 위해 실화를 취사선택했지만, 그렇다고 최루성 멜로를 뽑아내려고 무리수를 두진 않았다. <내 사랑>에는 흔한 키스 신 하나 없다. 사랑의 고백 대신 모드는 “에버렛은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하고, 에버렛은 “당신이 나보다 나은 사람이라 겁났어”라고 말한다. 관객이 목격하는 가장 다정한 행위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 정도이다. 러브신의 결핍에 관한 질문에 에단 호크는 ‘비포’ 시리즈가 배출한 사랑의 철학자답게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미디어 탓에) 성생활과 로맨스에 관한 너무 많은 과장된 가짜 아이디어가 우리의 머리를 점령하고 있다. 그래서 실망하고 혼란에 빠진다.” 어쩌면 <내 사랑>이 그리는 관계를 규정하는 단어로 사랑은 과하다. 에버렛과 모드가 도달하는 정점은 상대방과 내가 삶을 견디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해이고 그것만으로도 감격하기엔 족하다.

06/30

<스파이더맨: 홈커밍>(이하 <홈커밍>)에서 내게 제일 유쾌했던 개그는 피터 파커(톰 홀랜드)가 물류창고에 갇혀 있는 장면이었다. 영화는 피터가 시간을 죽이기 위해 하는 산만한 행동을 몽타주로 한참 보여준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지루해진 소년은 슈트에 장착된 인공지능 카렌(제니퍼 코널리)에게 얼마나 지났냐고 묻는다. 답이 들려온다. “37분 경과했습니다.” 분주한 멀티태스킹이 정상 상태인 오늘날 10대의 짧은 주의력 지속주기에 관한 농담이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3부작이 생계형 너드 히어로라는 특징을 강조하고, 앤드루 가필드 주연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연작이 부모를 잃은 트라우마를 견디는 마음씨 고운 청년의 감성을 부각시켰다면, 최연소 배우를 극중 15살로 캐스팅한 존 와츠 감독의 <홈커밍>은 “이번에는 진짜 애다”라는 슬로건을 흔든다. 성장 내러티브는 <스파이더맨> 영화 여섯편의 공통점이지만 <홈커밍>은 차별화를 위해 성장기의 상실감과 외로움은 생략하고 얼른 어른이 돼 능력을 증명하고 싶은 10대 남성의 안절부절못함에 초점을 맞춘다.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은 더 큰 힘에 따르는 더 큰 책임이 고민거리가 아니라 더 큰 책임을 얻지 못해 앙앙불락한다. 극중 피터는 오로지 과거 아닌 미래에 관심이 있으며 부모와 벤 아저씨의 비극적 부재는 피터 본인보다 메이 숙모(마리사 토메이)의 상처로만 언급된다. 톰 홀랜드의 피터 파커는 감정적 결핍보다 물질적 결핍과 씨름한다. 학교 과학실에서 거미줄 용액을 충당하고 학교 컴퓨터실을 헤드쿼터로 빌려쓴다. 소년성의 묘사도 개인의 성격보다 외적인 코드에 기대고 있다. 존 휴스 감독의 80년대 청춘영화가 대거 재활용된다. 피터가 좋아하는 소녀 리즈(로라 해리어)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갔다가 교외 중산층 주택의 담을 차례로 넘으며 연쇄 소동을 일으키는 장면은 <페리스의 해방>(1986)의 추억을 소환한다. 촬영의 형식에서도 <홈커밍>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세대의 셀피 문화를 끌어들인다. 이 영화의 도입부는 10대 스파이더맨과 동일시할 만한 팬들이 만약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스파이더맨이 처음 편입된 전작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세트장에 견학 갔다면 몰래 찍어올 만한 핸드폰 동영상의 형식을 취했다.

이번 스파이더맨의 정체성은 궁극적으로 ‘인턴’이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보고 <홈커밍>에서 정규 어벤져스 멤버로서 스파이더맨의 활약을 기대했던 관객은 “역시 한번에 취업하긴 어렵다”라는 당대적 교훈(?)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어벤져스 맹주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전화만 오매불망 기다리며 방과 후 이웃 돕기에 열중하는 고교생 피터는 종종 스펙을 쌓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소년에게 주어진 두명의 멘토 후보는 그리 미덥지가 않다. 우선 피터가 동경해 마지않는 메이저 중의 메이저 토니 스타크는 무책임한 어른이다. 스파이더맨의 고유한 개성을 위협할 만큼 복잡한 첨단 기능을 탑재한 슈트를 15살 소년에게 덥석 안겨줘놓고는 나 몰라라 한다. ‘베이비 모니터링’ 모드를 작동해 사생활 침해에 가까운 감시를 하면서도 정작 필요한 조언은 해주지 않고 너무 늦게 나타나서 평가만 내린다. 피터의 두 번째 멘토 후보는 다름 아닌 툼스다. 다국적 재벌의 횡포에 분개해 도덕심을 버린 이 인물은 블루칼라로서 동지 의식을 강조하며 피터를 제 편으로 돌려세우려 한다. 그러나 세상을 어차피 망한 곳으로 치부하고 개인의 이익만 찾기에 피터는 아직 젊고 희망차다. 소년에게는 사랑할 대상과 사랑받을 기회가 필요하다. 이 세계에서 ‘인턴’ 히어로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예의 요란한 클라이맥스에 묻혀버리지만 <홈커밍>은 유효한 질문 하나를 남긴다.

<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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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시스터

<옥자>의 농화학 대기업 총수 루시(틸다 스윈튼)는 극중 악을 대표하는 캐릭터지만 기묘하게 나약한 존재다. 그녀의 성장기는 영화에 직접 그려지지 않지만, 현재의 모습만으로도 루시가 자존감이 부족하고 특히 언니에 대한 열등감이 심하며 그 결과로 대외적 이미지를 철저히 연출하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그녀의 여가선용 방법은 사인 연습이다. 본인이 앞으로 꺼낼 말보다 그녀에게 더한 흥분제는 없다. 첫 장면에서 루시가 끼고 나오는 치아교정기는 사춘기에 고착된 인상과 함께 10년 후의 이벤트를 벌써 준비하고 있음을 알린다. 탈색한 금발과 의상 선택은 경쟁자인 언니 낸시(틸다 스윈튼)의 외모와 최대한 멀어지려는 욕구를 드러낸다. 루시는 이미지의 힘을 신봉한다. 틸다 스윈튼은 루시를 가리켜 <옥자>에서 가장 미숙한 존재이며 그녀와 반대쪽 극점에 있는 원숙한 존재가 동물 옥자라고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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