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에서 봉준호 감독이 직접 선곡한 사운드트랙은 두곡이다. 옥자를 생포하려는 ‘미코(미란다 코리아) 4인방’과 미자(안서현), 동물해방전선(ALF) 대원들이 지하상가에서 고속촬영의 난장을 펼칠 때 흘러나오는 존 덴버의 <Annie’s Song>, 옥자와 미자가 미국으로 건너가 수송차에 실려 닥터 조니(제이크 질렌홀)의 도축실험실에 당도하기까지의 몽타주 시퀀스에 흘러나오는 탱고곡인 오스발도 푸글리에세의 <Evaristo Carriego>다. 먼저 후자는 아르헨티나 민중시인 에바리스토 카리에고에게 바쳐진 곡으로, 청년 시절의 보르헤스 또한 그를 우상으로 여겨 전기(傳記)를 남기기도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하층민 지역을 중심으로 태동한 탱고에 당시 노동자와 이민자, 그리고 도축업자들의 고통과 향수가 짙게 배어 있다면(<해피 투게더>에서 양조위가 부에노스아 이레스의 도축장에서 일하던 모습도 문득 떠오른다), 뉴욕에 도착해 옥자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인간들의 공동묘지를 지나 도축실험실로 향할 때 흘러나오는 그 음악은 그야말로 탁월한 선곡이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는 방송인 닥터 조니가 실험실에서 어울리지 않는 반바지를 입고, 역시 어울리지 않는 한국산 초록색병 소주에 취해 있는 그 모습은 봉준호 감독 특유의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이라는 미학을 극대화한다.
지하상가에서 듣는 <Annie’s Song>도 꽤 의미심장하다. 이 곡은 실제로 대한민국 지하상가, 지하철 안에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송 000곡’의 단골 아이템 아니던가. 옥자나 미자라는 이름의 촌스러운 작명법을 듣고는 미국쪽 제작진이 마거릿, 매기 같은 이름을 떠올린 것처럼 ‘애니’도 그에 못지않게 흔한 이름이다. 존 덴버가 실제 아내 애니를 위해 10분 만에 써내려간 노래가 바로 <Annie’s Song>이다. 지금 인터넷에는 <옥자>의 귓속말 내용이 무엇인지 점치는 글들이 많은데, 추측하건대 미자가 옥자에게 전하는 ‘옥자 송’이랄까, 바로 봉준호 감독이 <Annie’s Song>의 사랑의 가사로 대체한 것은 아닐까 싶다. “내 소망이 그대 마음에 가득 차게 하세요. 숲속의 밤을 좋아하게 하고, 봄의 산들을 좋아하게 하고, 벌판에 몰아치는 폭풍우를 좋아하게 하고, 잔잔한 푸른 태양을 좋아하게 하세요. 그대 옆에서 잠자게 하고, 언제까지 그대와 함께 있게 해주세요.” 물론 이후 ‘산으로 돌아가겠다’는 미자의 얘기를 케이(스티븐 연)가 제대로 통역하지 않아 시간이 한참 걸리긴 했지만, <Annie’s Song>과 함께 펼쳐지던 레인보우 우산이 더욱 그런 확신을 갖게 했다.
이번호는 <옥자> 특집호다. 개봉 전 인터뷰를 가졌던 김혜리 기자가 만나기 싫다는 봉준호 감독을 한번 더 만났고, 프랑스 파리에서 김나희 평론가는 무려 다리우스 콘지 촬영감독을 독점 인터뷰했다. 처음에는 간소한 영화 개봉 인터뷰로 생각했는데, ‘다리형’(봉준호 감독이 그를 부르는 애칭)이 ‘대한민국 영화미디어의 표준’ <씨네21>을 어떻게 잘 봐주셨는지 무려 6페이지에 이르는, <옥자>에 대한 꼼꼼한 해설은 물론 그의 유년기부터 작업 스타일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정재일 음악감독, 최세연 의상감독, 양진모 편집감독, 이재혁 개퍼(촬영) 등 만남을 청했던 스탭들의 도움에도 감사드린다. 프랑스 현지 <옥자> 리포트를 보내온 김나희 평론가가 만난 관객의 반응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되는 것 같다. 넷플릭스에서 만들건 어디서 만들건, TV로도 동시에 볼 수 있건 어쨌건, 우리는 그냥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