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에이드리언 라인 / 출연 제니퍼 빌스, 마이클 누리, 릴리아 스칼라 / 제작연도 1983년
FlashDance… What a feeling.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다. 새로운 물건들도 많이 생겨났지만 고마운 물건들이 사라져가고 있기도 하다. 어린 시절 수년간 숱하게 끼고 살았던 VHS 테이프와 재생장치인 VCR도 이제는 더이상 생산되지 않는다. 컴퓨터 보조기억장치인 플로피 디스크도, 1992년에 개발된 디지털 방식 음성기록 광자기 디스크 기록장치인 MD도 사용하는 이가 거의 없다. 아직은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디지털 정보 저장 광디스크인 ‘Compact Disc’ 즉 CD도 곧 사라지지 않을까.
오래된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이나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혹은 옛것을 사랑하는 수집가들의 진열장에나 남아 있는 노래 테이프. 나에게도 추억 때문에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음악 테이프들이 있다.
중학생 때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들을 공테이프에 녹음해서 미니카세트 플레이어에 꽂아 듣고 다녔는데 그때 만난 영화가 바로 에이드리언 라인 감독의 <플래시댄스>다.
에너지, 리듬, 감동, 눈물까지 참 맛좋은 영화를 만난 후 외사랑에 빠진 듯 음악이 귓전에 맴돌았고, 오디션 신에서 높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부드러운 햇살 속에 강렬하게 눈을 맞추며 고속과 정속으로 요리하듯 연출된 춤 장면은 진정 황홀했다. 당시는 요즘처럼 보고 싶은 영화를 인터넷으로 찾아 다운로드한 뒤 외장하드에 담아 언제든 꺼내 플레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영화음악을 듣는 것으로 대신하는 일이 많았다.
이 영화도 그런 경우라 내 방 책장의 손이 잘 닿는 자리에 미리 구입해 모셔놓은 공테이프 중에서 가장 믿음직한 테이프를 골라 등굣길 레코드사에 가져가 “<플래시댄스> O.S.T를 녹음해주세요”라고 하면서 용돈을 모아모아 마련한 거금(!) 4500원을 사장님 손에 쥐어드리며 “나머지는 사장님 추천곡으로 채워주세요”라고 외쳤다. 한곡 한곡 천천히 씹어먹으며 듣는 시간이 행복했다.
그때는 내가 영화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줄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영화와 영화음악을 즐기게 된 시작이었던 것 같다. 스토리보드 회의를 할 때 가끔 삽입곡이 결정된 상태라면 그 음악을 계속해서 들으면서 타이밍을 계산해 콘티를 짜는 일이 있는데 그런 시간에도 <플래시댄스>의 춤 장면이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그래서 아직도 즐겨 듣는다.
‘와러필링~!’
강숙 콘티작가. 영화 <장화, 홍련> <너는 내 운명>,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쌈, 마이웨이>등에 참여했다. 현재 세 번째 개인전인 ‘<텀블링하는 기억들>(Tumbling Flashbacks)’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