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진 중 제일 많이 알려진 이미지는 아마도 미국 LA의 ‘슈탈 주택’(Stahl House) 사진일 것이다. 사진에는 끝없이 펼쳐진 LA 야경을 배경으로, 유리와 철골로 지어진 ‘현대적인’ 건물이 절벽 끝에 매달려 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온통 투명한 유리로 계획된 주택 안에서 멋진 드레스 차림의 두 여인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나는 사진 속 두 여인이 도시가 바라보는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진작가 줄리어스 슐만이 찍은 이 사진은 슈탈 주택을 건축에서 ‘스타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1959년에 완공된 슈탈 주택은, 벅 슈탈과 그의 아내 카를로타 슈탈이 1954년 눈부신 전망을 갖고 있지만 집을 짓기에는 경사가 급한 LA 할리우드 언덕의 땅을 구입하면서 시작되었다. 벅과 카를로타는 주말마다 공사 현장에 버려진 콘크리트 블록을 캐딜락 자동차 트렁크에 담아 현장으로 운반했다. 2년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집을 꿈꾸며 직접 대지를 조성했다.
슈탈 부부가 직접 주택 모형까지 만들며 꿈꿔온 언덕 위의 집은 재능 있는 젊은 건축가 피에르 코에니그를 만나면서 현실화된다. 슈탈 주택의 디자인이 건축주와 건축가 누구로부터 왔는가 하는 것은 한동안 논쟁거리였다. 그래픽 디자이너 벅 슈탈이 직접 만든 모형은 이미 L자 형태의 배치와 캔틸레버 코너, 전망을 보장하는 전면 유리창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 문제들을 해결해서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어낸 것은, 건축가 피에르 코에니그임은 명백하다. 모든 일이 그런 것처럼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슈탈 주택을 독창적인 디자인 언어를 갖고 있는 건축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피에르 코에니그의 건축언어는 미스 반 데 로에의 판스워스 주택(Farnsworth House)과 바르셀로나 파빌리온(Barcelona Pavillion)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 미스 반 데 로에의 트레이드마크인 철골 구조와 개방적인 유리의 사용이 특히 그렇다. 하지만 피에르 코에니그의 건축은 미국 서부의 값싼 창고를 연상하게 하며, 결정적으로 미스 반 데 로에와 유사한 건축언어를 사용하여 대지의 조건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계획을 만들어냈다. 독창적인 디자인 언어가 없어도 특정한 장소의 매력이 드러나는, 잘 조율된 계획은 언제나 특별하다.
피에르 코에니그의 슈탈 주택은 잡지 <아트 앤드 아키텍처>가 후원한 36개의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 프로그램(Case Study House Program) 중 하나다. 50, 60년대 미국 현대 주택건축의 이정표가 되는 이 프로그램은 건축도 다른 모든 현대적인 삶과 같이 ‘미디어’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상징한다.
흥미롭게도 이 슈탈 주택은 줄리어스 슐만이 사진을 찍기 전까지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슐만의 사진은 1950년대라는 낙관적인 시대, LA의 빛나는 삶과 피에르 코에니그의 현대적인 건축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한순간에 잡아내고 있다. 열정적인 노력과 그만큼의 우연이 겹쳐지면서 슈탈 주택은 ‘스타’가 되었다.
벅과 카를로타 그리고 그들의 세 자녀는 건물이 완공된 후 ‘캘리포니아 언덕 위의 삶’이란 제목으로 1962년 잡지 <라이프>에 나왔고, 피에르 코에니그는 USC의 건축과 교수가 되었다. 하지만 정말 큰 유명세를 갖게 된 것은 슈탈 주택 자체였다. 수많은 할리우드영화들의 로케이션 장소로 사용되었고, 특히나 LA 도심이 보이는 수영장은 패션 잡지들의 단골 장소였다. 슈탈 주택은 ‘LA 할리우드 언덕 위의 삶’에 대한 아이콘이 되었다. 너무나 유명해진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벅과 카를로타의 아들 부르스는 “우리는 화이트칼라 집의 블루칼라 가족이었다. 아무도 여기서 유명인이 된 사람은 없었다”라고 회상한다.
LA라는 도시의 특징
LA의 도시적인 특징은 단독주택들로 이루어진 대도시라는 점이다. 중심이 발달한 시카고나 뉴욕을 대도시의 전형으로 상상한다면 낯선 형식이다. 단독주택지가 도시 전체에 넓게, 끝없이 펼쳐져 있고, 정리되지 않은 상업지역들이 그 사이에 흩어져 있다. 1970년 ‘센터들’(Centers)이라는 이름의 도시계획을 통해서, LA를 다수의 중심공간들과 대중교통으로 작동하는 도시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성공적인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라라랜드>의 오프닝 장면 속 고가도로는 LA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넓게 펼쳐진 단독주택들은 도시를 자동차 의존적으로 만들었으니, 20세기의 해결 방법은 입체 고가도로였다. 자가용이 아니면 돌아다닐 수 없는 LA의 도시 상황은 <라라랜드>에 유난히 자동차 장면이 많이 나오는 이유일 것이다.
바다로 열린 분지 형태의 평원에 건설된 LA는 중심지보다는 바닷가와 산등성이가 고급 주거지역으로 분류된다. 그중에서도 LA에서 높은 지역에 해당하는 할리우드 언덕과 베벌리힐스 주변 주거지역은 특별하다. 셀럽들과 부자들의 이 주거지는 언덕 위 ‘할리우드 사인’처럼 나머지 사람들에게 다른 세계를 꿈꾸게 한다.
<라라랜드>는 비교적 간단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배우의 꿈을 갖고 있는 여자와 자신의 재즈 바를 여는 꿈을 갖고 있는 남자가 반복해서 마주치고,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처럼 티격태격하다 서로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꿈을 향해 가는 어려운 길은 사랑도 지치게 하고, 자신들의 꿈을 좇는 길이 갈라질 때 그들의 사랑도 멀어지게 된다. 시간이 지나고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가 된 여자는 남편과 함께 우연히 찾아간 재즈 바에서 남자를 발견하고, 남자의 연주를 들으며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상념에 잠긴다. 연주가 끝나고 바를 떠나려던 여자는 남자와 눈이 마주치고 그들은 서로에게 짧은 미소를 보낸다.
영화의 로맨틱한 장면 속 노래만큼 현실의 나를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것은 없다. 나는 이상하게 영화 속 노래 장면에 속절없이 빠져든다. <시네마 천국>의 키스 장면처럼 내가 좋아하는 영화 속 노래 장면들을 모아볼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곧 그것이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블루 발렌타인>에서 딘(라이언 고슬링)이 부르는 <You Always Hurt the One You Love>가 로맨스가 식어버린 이후의 이야기 없이 존재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영화 속 노래가 더 좋은 이유는 그것이 이야기와 제스처와 표정과 교감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라라랜드>의 단순한 이야기는 노래와 춤(몸짓)과 합쳐져서 빛을 발한다. 주인공이 배우와 연주자라는 점은 노래와 춤을 자연스럽게 하고, 배우들의 로맨틱한 감정은 환상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라라랜드>는 오프닝 장면의 군무를 조율해내는 감독의 능력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영화다. 완벽하게 조율된 것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지극히 행복한 순간 후에는 슬픔이 찾아온다. 행복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행복은 꿈이 아니라 꿈꾸는 순간들에 있다. 미아(에마 스톤)와 세바스천(라이언 고슬링)의 마지막 미소가 의미 있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