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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없는 집> 김현정 감독 - 나의 이야기에서 시작했다
2017-07-27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제16회 미쟝센단편영화제 대상작

올해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는 무려 5년 만에 대상작이 나왔다. 심사위원 만장일치여야만 대상작을 뽑는다는 영화제의 깐깐한 내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굳세게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나만 없는 집>(2017)의 김현정 감독이다. 심사위원 중 한명인 엄태화 감독은 “모든 심사위원이 지지를 넘어 눈에 하트가 보일 정도”였다며 호평했다. 심지어 이 부문에서 대상작이 나온 건 영화제 역사상 처음이다. 1998년 봄, 초등학교 4학년 세영(김민서)은 걸스카우트인 언니와 달리 어째서 자신은 걸스카우트 단원 가입 신청서를 낼 수 없는가를 두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바쁜 부모, 쌀쌀맞은 언니로부터 멀리 떨어져 세영은 늘 혼자다. 외롭고 쓸쓸하고 화가 나며 서럽기까지 하다.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최동훈 감독은 “평범한 가족의 소담한 이야기에 우리 모두가 깊이 빨려들어갔다”며 이 어린 소녀의 마음이 불러일으키는 강렬한 힘에 지지를 보냈다.

-영화제 대상뿐 아니라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최우수상과 세영 역의 김민서 배우의 심사위원 특별상 연기부문 공동 수상까지 무려 3관왕이다.

=호명을 받고 너무 놀라 어리둥절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내가 되게 큰 상을 받았구나 실감이 된다. 심사위원분들이 영화의 이야기에 공감을 많이 해주신 것 같아 감사하다. 폐막식을 마치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해 어린아이처럼 자랑을 했다. 사실 자전적 이야기에서 출발한 작품이라 아직 부모님께도 언니에게도 영화를 보여드리지 못했다. 혹여나 마음 아파하실까 싶어서.

-과거의 어떤 기억을 끄집어내 영화화하게 된 건가.

=독특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강박이 있었다.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써봤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감정이입할 수 있는 소재를 찾는 게 좋겠다 싶어 내 얘기부터 해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셔서 대체로 혼자 집에 있어야 했다. 또 세영처럼 언니가 하는 걸스카우트를 나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세영처럼 학교에서 내가 직접 걸스카우트 지원서에 사인을 한 후 엄마의 허락을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두명이나 걸스카우트를 하는 게 부담스러운 상황으로) 걸스카우트는 하지 못했고 지원서만 찢어버렸던 기억이 강렬히 남아 있다. 그 이야기를 적어가기 시작했다.

-가족이 악의적으로 세영에게 상처를 주려 했다기보다는 서로의 처지나 ‘가족이니까’에서 오는 무심함 때문에 세영은 마음을 다친다.

=나이를 먹고 보니 어머니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더라. 바쁜 부모님은 자기 상황 안에서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느낄 법한 감정들, 아이 역시도 아프고 외로울 수 있다는 점을 등한시하지 않기를 바랐다.

-세영은 늘 집에 혼자 있거나 함께 있어도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가족과 떨어진 외로운 섬처럼 보인다. 그것과 반대로 제목은 <나만 없는 집>이 됐다.

=아이러니한 제목으로 짓고 싶었다. ‘나만 있는 집’이라고 하기에는 세영은 이 집에서의 실제적 존재감이 없다. 세영 스스로가 가족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최동훈 감독은 김민서 배우를 두고 “타고난 배우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순박하면서도 과단성 있어 보이는 얼굴이다.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민서를 보자마자 꼭 이 친구랑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눈을 보는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눈의 힘도 좋았다. 다만 세영은 경상도 사투리를 써야 하는데 민서 고향이 서울이라 걱정했다. 대구가 고향인 내가 대사를 녹음해주면 민서가 연습해서 녹음한 뒤 내게 보내주는 과정을 반복했다. 또 세영이 극중 먹는 장면이 많고, 또 잘 먹었으면 했다. 민서가 삼겹살을 구워 먹는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서 보내줬는데 보기만 해도 식욕이 돌 정도로 정말 맛있게 먹더라. (웃음)

-연출 경험이 많은 감독들도 아역배우와의 작업을 어려워하는데 어떻게 만들어갔나.

=결국 성인배우에게 디렉팅하듯이 할 수밖에 없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이해가 잘되도록 유사 경험을 끄집어내는 방식의 설명을 하는 것도 있겠다. 하지만 그때조차도 시나리오에 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말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써야 하는 건 물론이고 프리프로덕션 때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즉흥적 진행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영화 연출을 하게 된 계기는 뭔가.

=올해 33살이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관련 직장을 다녔는데 너무 답답했다. 지독하게 사춘기를 보내며 글쓰기를 하곤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스토리텔링을 다시 해보고 싶었다. 29살에 영화를 시작했다. 대구 토박이로 지역의 영화 동호회를 찾아가 단편영화 스탭을 했다. 오성호 감독의 단편 <소나기>(2014)의 스크립터가 시작이었다. 이후 단편 <은하비디오>(2015)를 찍었고 2016년 대구다양성영화제작지원을 받아서 <나만 없는 집>을 완성했다.

-영화 관련 공부를 따로 한 건 아닌데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연출의 방법론을 익혀나갔나.

=영화를 시작할 때만 해도 영화 학교에 가고 싶어 시도했는데 잘 안 됐다. 지금은 오히려 학교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하니 빨리 영화를 찍고 싶다. 대구, 서울 지역의 영화 워크숍에 참여했고 무엇보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영화를 많이 본다.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고전 작품들, 정지우 감독의 <4등>(2015), 오승욱 감독의 <킬리만자로>(2000)와 <무뢰한>(2014),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2006)과 <만추>(2010) 등을 좋아한다.

-영화의 숏을 보면 단순하지만 뭘 찍고 싶은지가 명확해 보인다.

=레퍼런스를 많이 찾아보려 했다. 롱숏은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2010), 타이트숏이나 미술은 김보라 감독의 <리코더 시험>(2011), 걸스카우트 아이들이 운동장에 모여 있는 장면은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2003) 등을 참고했다.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다는) 내 안의 불안 때문에 더 많이 찾아본다.

-하고 싶은 이야기, 만들고 싶은 영화가 궁금하다.

=<나만 없는 집> 이전부터 찍고 싶었던 단편이 있었고 장편 시나리오도 준비 중이다. 드라마 장르로 여성들의 이야기다. 이번에 받은 상금의 일부도 다음 작품을 만드는 데 쓰겠지만 동시에 제작지원에도 열심히 내볼 생각이다. 계속해서 검증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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