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여자들>의 요조·전여빈·전소니·유이든 네 배우를 만나다
2017-08-02
글 : 이주현
사진 : 최성열
나를 닮은 그녀들의 '치열하고 솔직한' 이야기
전소니, 요조, 유이든, 전여빈(왼쪽부터).

<여자들>의 가장 큰 재미는 다양한 개성의 ‘여자들’을 만나는 데 있다. 영화를 관통하는 중심인물은 작가 시형(최시형)이지만 그가 만나는 5명의 여자들이 결국 영화를 완성한다. <여자들>은 프롤로그 ‘낮은 여름이고 밤은 가을이다’(전여빈)를 시작으로 ‘풀코스와 디저트’(채서진), ‘물고기를 잡는 분위기’(요조), ‘아름다움의 취향’(유이든), ‘이게 다예요’(전소니) 그리고 에필로그 ‘오늘의 그는 어제와 다르다’까지 총 6개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여자들>에 출연한 배우들은 모두 자신의 본명을 캐릭터의 이름으로 사용한다(요조의 본명은 신수진이다). 배우와 캐릭터의 간극이 좁고, 배우의 매력이 캐릭터의 매력으로 빛을 발하는 영화인 만큼 <여자들>을 보고 나면 우선 배우들이 궁금해진다. 요조처럼 뮤지션으로 이미 유명한 이도 있지만 전여빈, 채서진, 유이든, 전소니 등 아직은 우리가 모르는 게 더 많은 배우들 말이다. 그래서 만남을 청했다. 요조, 전여빈, 전소니, 유이든 네 배우와 이보다 더 솔직할 수 없는 수다를 떨었다(사정상 채서진은 함께하지 못했다).

-<여자들> 이전에도 서로 친분이 있었나.

=전여빈_ 친분까지는 아니고 전부터 요조 언니의 팬이다. 좋은 곡을 써주셔서 고맙다고 SNS로 쪽지를 보낸 적이 있다.

=유이든_ 나도 요조님의 음악을 원래 좋아하는데 이번에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좀 놀랐다. 연예인 보는 기분도 들고.

=요조_ 대면한 적은 없어도 여빈씨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배우로 활동하는 모습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고, 이든씨 또한 우리 회사(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에 자주 출연해서 알고 있었다.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모습이 무척 매력적이어서 다들 ‘이 배우 누구야?’ 하며 많이 궁금해한 배우다.

=전소니_ 나도 이든씨가 출연한 짙은의 <해바라기> 뮤직비디오가 너무 좋아서 (<해바라기>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이래경 감독님이 치즈의 <어떻게 생각해> 뮤직비디오를 같이 찍자고 했을 때 믿고 출연했다.

-자신이 출연하지 않는 다른 챕터에 대한 호기심, 다른 챕터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을 것 같다.

전여빈_ 내가 제일 먼저 촬영을 시작했고 이후로 하나씩 소식을 접했다. 프롤로그 촬영은 진작 끝났는데 영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으니 뭔가 부럽기도 하고, 영화 전체 내용을 몰랐기 때문에 ‘이 영화는 어떻게 흘러가는 거야?’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 참 좋았다. 특히 소니의 대사 중에 ‘치열하거나 솔직하거나’라는 말이 마음을 강하게 때렸다. 이렇게 멋있는 여자들과 함께할 수 있어 가슴 벅찼다.

-영화 전체 그림과 캐스팅 현황을 모른 채 촬영한 건가.

전소니_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마지막 챕터에 출연한 거라 캐스팅도 늦게 됐고 촬영도 마지막에 했다. 그런데도 감독님은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까지 진행된 내용은 알고 연기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감독님을 설득해보려 했는데 끝까지 “아니요, 모르셔도 됩니다” 그러시더라. (웃음) 내용도 안 가르쳐주는 마당에 누가 출연하는지 물어본들 답을 듣긴 어려울 것 같아서 캐스팅에 대해선 물어보지도 않았다.

유이든_ 처음에 여빈씨가 연기한 프롤로그 챕터 제의가 들어왔다. 그래서 여빈씨 에피소드는 알고 있었다.

전여빈_ 처음 듣는 얘기다. (웃음) 나는 <여자들>의 스탭 중에 친구가 있어서 지금 어떤 배우와 어떤 내용을 찍는다는 걸 들어 알고 있었는데, 배우들에게 그걸 비밀에 부친 줄은 몰 랐다.

요조_ 내 코가 석자였기 때문에 다른 챕터를 크게 궁금해하진 않았고, 처음엔 영화에 출연해달라는 말이 장난인 줄 알았다. 우리 회사 소속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많이 연출한 이상덕 감독과는 만나면 주성치 얘기를 나누며 시시덕거리던 사이다. “나중에 영화 찍으면 출연해주셔야죠.” “당연하죠. 노출연기 가능.” 이런 말도 편하게 주고받았으니까. (일동 웃음) 그래서 처음엔 내가 출연하면 영화에 누가 될 텐데 싶어 고사하다가 캐릭터 얘기를 들어보니 책방 주인이기도 하고 나랑 비슷한 점이 많아서 출연하게 됐다.

전소니_ 미팅 제안을 받았다. 8개월째 찍고 있는 프로젝트라는 얘기를 듣는데, 그 긴 시간 노력하는 점이 좋았고 그 사이에 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또 당시 주인공 시형과 같은 고민을 한창 하면서 혼자 땅 파고 들어가던 때라 공감되는 지점도 있었다. 미팅을 한 3시간 했는데 미팅에서 그렇게 말을 많이 한 건 처음이었다.

전여빈_ 미팅 날 무슨 옷을 입었는지 뭘 먹었는지까지 다 기억난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빨간색 니트 스웨터에 흰 바지를 입고 갔고, 페퍼민트 차를 마셨는데 아주 따뜻하고 맛있었다. 처음 만난 분들이지만 PD님과 감독님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디션 자리였지만 누군가 나를 판단하고 재단한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가끔 오디션을 보면 혼자 소외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여자들> 때는 그렇지 않았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얘기를 나눴으니 됐어, 안 돼도 상관없어, 그런 마음이 들었다.

요조_뮤지션. 1집 《Traveler》, 2집 《나의 쓸모》 등을 발표하며 싱어송라이터로 사랑받았다. <조금만 더 가까이>(2010), <카페 느와르>(2010) 등 영화에도 간혹 출연했고 최근엔 <나는 아직도 신이 궁금하여 자다가도 일어납니다>(2016) 라는 중편 음악영화를 연출했다. 독립 서점을 운영 중이며 <여자들>의 ‘물고기를 잡는 분위기’ 챕터에서도 독립 서점 주인 수진으로 출연한다.

“모든 면이 다 나의 모습이다”

-무언가를 찾고 기다리는 작가 시형에게 영감을 주는 여자들을 연기했다. 우선 프롤로그의 여빈은 5명의 여성 캐릭터 중에서 가장 추상적이고 이미지가 강조된 인물이다.

전여빈_ 여빈은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시형이 작가인 걸 알면서도 기꺼이 자신도 글을 쓴다고 얘기하고 자기가 생각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혼자서 춤까지 춘다.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그런 행동이 가능한건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 예의가 없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세상이 분명한 사람. 또 말은 툭툭 뱉지만 생각은 있는 애라서 연기할 땐 그 생각을 채우려고 했다. 실제로 나도 두서없는 말을 잘 던지는데 그런 걸 보면 여빈과 내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다른 챕터처럼 촘촘한 드라마가 있는 건 아니어서 그런 점에선 다른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부럽기도 했다.

-‘물고기를 잡는 분위기’의 수진은 기분 나쁘지 않게 직설적인 얘기를 하는 사람이다. 실제 수진은 어떤가.

요조_ 나도 한때는 직언하는 스타일이었고 그게 솔직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책방을 하면서 조금 어른이 된 것 같다. 매사에 좀 완곡해졌다. 음악만 하던 시절엔 상대가 나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무례하게 굴면 불쾌함을 최대한 드러냈다. 최대한 기분 나쁘게, 아프게 정곡을 찔렀다. (웃음) 음악을 할 땐 대인관계에 미숙했다. 친구도 많지 않았고. 그러다 책을 팔고 사람을 상대하니 내가 정신적 수준이 어른이 아니구나 싶더라. 나한테 무례한 사람들을 보면서 예전의 나를 보게 됐다. 그들이 반면교사가 돼주었다.

-‘아름다움의 취향’의 이든은 작가 시형의 팬이다. 시형 앞에서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데, 기존의 거침없고 센 이미지 때문인지 영화 속 밝은 모습이 좀 의외다.

유이든_ 다 내 모습이다. 어두운 면도 밝은 면도. 전엔 지금보다 가시가 더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상처받은 소녀의 이미지를 연기하고 그런 소녀소녀한 이미지가 반복되니까 팬들이 착각하더라.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그러다 내 SNS에 들어오면 자신들이 상상한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라 팔로 취소하고. (웃음) 사실 화보 작업도 일본의 모델 화보 느낌이 나게 많이 찍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이미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의 특정 배우(미즈하라 기코)와 계속 비교하는데 그 배우가 잘못하면 이상하게 내가 욕을 먹는다. 애초부터 제2의 무엇은 싫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이미지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주면 좋겠다.

-시형이 영화 내내 하는 고민은 ‘나는 왜 글을 쓰는가’이다. 수진은 그런 시형에게 글을 쓰는 이유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시형과 비슷한 고민을 다들 치열하게 할 것 같은데, ‘나는 왜 연기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다들 어떻게 답할 텐가.

요조_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숙명적으로 하는 고민일 거다. 난 음악을 왜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수도 없이 해왔다. 지금의 내가 잠정적으로 하는 생각은 질문이 곧 답이라는 거다. 나는 왜 음악을 하는가,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는 것,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계속 생각하는 것 자체가 유의미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해답이 되는 행위.

전소니_ 지금보다 어릴 땐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나아가고 있는 거라는 말을 들으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연기를 할 때 마음이 움직여서 몸이 따라오는 경우가 있고 몸이 움직여서 마음이 따라오는 경우가 있는데, 후자는 연기를 하면서 알게 됐다. 항상 마음이 먼저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는데 어떤 경우엔 몸이 움직이니까 마음이 따라갈 때도 있더라. 몸과 마음, 질문과 답, 이유와 행위 그 두개는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유를 찾겠다고 왜에만 빠져 있어도 왜에 대한 답을 못 찾고 그렇다고 하기만 하고 왜를 궁금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궁금하면 하면 되고 하다 보면 내가 이걸 왜 하는지 알게 된다. 그 과정이 순환된다는 걸 알기까지가 힘든 것 같다.

유이든_ 나는 왜 연기를 하는 거지, 뭘 위해 하는 거지, 마냥 연기가 좋아서 하는 건가, 그런 질문을 하다 보면 패닉에 빠진다. 답이 나오지 않으니까. 지금의 난 영화 속 시형처럼 딜레마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상태인 것 같다.

요조_ 그러면 이든씨, <남자들>을 찍어요. (웃음)

전여빈_ 나는 연기가 너무 하고 싶었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으려고 많이 버텼다. (울먹이다 결국 눈물을 쏟는다) 하고 싶은 걸 포기할 때만큼 절망스러운 때도 없는 것 같다. 간단히 말해서 돈이 없어서 힘든 것보다 내 마음을 버리는 게 너무 힘이 든다. 그게 용납이 안 되더라. 그래서 29살까지만 연기하고 안 되면 마음을 버리려고 했다. 이왕 고민하고 질문하고 목숨 걸고 싶으면 미련 없을 때까지 뭐라도 해보자 싶었다. 악착같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이제는 설령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 올해 29살이다. 다행히 지금은 조금씩 뭔가 잡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요조_ 그럼 이제 안 그만두는 건가?

전여빈_ 안 그만둘 것 같다. 고맙게도 CF를 찍게 됐다. (웃음)

전소니_ CF를 보는데 내가 다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웃음)

전여빈_ 한때는 용돈벌이도 못했다. 내 유일한 사치가 커피 마시는 거랑 책 사는 거였다. 그러는 동안 굳어진 내 성격 중 하나가 친구들과 비교하지 않는 거다. 그래서 철이 아직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왜’ 연기하는지 그 이유를 찾는 것보다 연기하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아서 포기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이걸 더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일을 더 사랑할 수 있을까, 그걸 더 궁리하는 것 같다.

전여빈_<최고의 감독>(2015), <우리 손자 베스트>(2016),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2016) 등 수의 독립영화에 출연했다. 최근 SK텔레콤과 갤럭시S8 큐브무비 CF에 출연해 유명해졌다. <여자들>에서 프롤로그 ‘낮은 여름이고 밤은 가을이다’에 출연해 집 나간 고양이를 찾으러 나왔다가 시형을 만나는 여빈을 연기했다.

여자로, 배우 혹은 뮤지션으로 살아가는 일

-데뷔 시절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얼마나 달라진 것 같나.

유이든_ 데뷔하고 바뀐 건 주변에서 바꾸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아진 거? 가령 SNS에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사진 올리지 마라, 이미지 관리해라,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 자신은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이런 내 모습이 좋다.

전소니_ 어릴 때부터 남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걸 기쁘게 생각했다. 그런데 연기를 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날카로워지기 시작한 것 같다. 나는 진심인데 다른 사람들은 내 진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도 있고, 좋아서 좋다고 말한 것뿐인데 ‘넌 뭐든 좋아하잖아’ 하는 식의 반응이 돌아오기도 하고. 내가 어느 정도 날카롭지 않으면 나를 지킬 수 있는 게 없어질 것 같더라. 그래서 나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고 있다. 어떤 부분에선 날카로워지고 어떤 부분에선 좀더 열린 마음을 갖게 되고. 지금은 스스로가 변해가는 시기인 것 같다.

요조_ 내가 예언을 하나 하자면, 10년이 지나 30대가 되면 소니씨도 나처럼 될 거다. (웃음) 왜냐면 20대 때의 내가 딱 소니씨 같았거든. 사람들이 나를 너무 만만하게 보니까 그게 싫어서 가시를 세웠다. 그러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과거의 어른스럽지 못했던 나를 본다. 아마 소니씨도 시간이 지나면 변하지 않을까. 그래도 만만한 사람인 채로 쭉 사는 거랑 산전수전 다 겪은 다음에 부드러워지는 건 차이가 크니까 그런 과정도 필요한 것 같다.

전여빈_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데 최근엔 갑자기 너무 많은 사람을 알게 되면서 사람들한테 많이 데었다. 그러니 벽을 세우고 방패를 들게 되더라. 타인을 적당히 알려고 하고 나만의 성을 짓는 나 자신이 너무 싫으면서도 상처받기 싫어서 그대로 놔뒀다. 그런데 다시 변하고 싶다. 사람을 궁금해 하고 좋아하는 사람으로. 더 말랑말랑한 마음을 갖고 싶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가시와 방패와 갑옷 얘기가 나오는 게 한편으론 씁쓸하다. 이건 배우가 아니라 여배우, 배우가 아니라 연예인이길 바라는 시선이 불편하고 버겁기 때문이기도 할까.

전소니_ 배우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여자로 살면서 그랬던 적이 많은 것 같다. 어느 순간 그 불편함을 깨달았을 땐 다 버리고 나 자신으로만 남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유이든_ 배우가 그런 공격을 더 많이 받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과거와 현재의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는데, 10대 때는 예쁘게 화장하는 게 좋았고 신발도 하이힐만 신었다. 그런데 스무살이 되니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싶더라. 자아성찰을 하고 힐을 버리고 여성스러운 옷도 버리고 타투도 했다. 그러자 공격을 엄청 받았다. 여자애가 그러면 안 된다, 너 배우 안 할 거냐. (웃음) 부끄러워하면 안 될 것 같다.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건 부당하다고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대중 앞에 얼굴을 내비치는 배우니까 그런 역할 또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조씨도 뮤지션이 아닌 홍대 여신이란 타이틀이 앞서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

요조_ 불편한 정도가 아니었다. 어떻게 해도 음악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자괴감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그런데 또 대놓고 불만을 토로하지도 못하는 게, 너 예쁘다고 칭찬해주는 건데 왜 그러냐, 배부른 소리 하고 있는 거라고 하니까.

유이든_ 교묘해~.

전소니_ 됐다고 그래~.

요조_ 하다못해 좀 쉬면 그 수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싶어서 5년을 쉬고 2집을 들고 나왔다. 그런데 그때 나온 말이 ‘원조’ 여신이었다. 그때부터는 체념했다. 10년간 혼자 겪으면서 쌓인 울화가 진짜…. (웃음) 어쨌든 최근 몇년 사이에 페미니즘이 이슈가 되면서 상황이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다. 갈 길은 멀지만 이든씨나 여빈씨, 소니씨 모두 비슷한 생각으로 일해주고 있으니까 든든하다.

유이든_단편 <고열>(2013), <헤르츠>(2016)와 뮤직비디오 옥상달빛의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짙은의 <해바라기> 등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20살 때부터 바텐더로 일하며 세상과 인생을 배웠다고 말하는 솔직하고 거침없는 배우. <여자들>에선 시형의 팬을 자처하는 웃음 많은 이든으로 출연한다.

어디로든 자유롭게 향할 수 있다면

-자신의 연기를 대중에게 더 많이 보여주고픈 욕심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커리어의 중심이 꼭 상업영화여야 할 이유는 없다. 독립영화 진영에서도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을 테고, 요조씨가 음악과 영화를 넘나드는 것처럼 다른 분야에 도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각자 배우로서 어떻게 커리어를 개척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전소니_ 한두 작품의 이미지일 뿐인데 그 이미지가 나와 잘 어울리면 그 방향으로만 끌고 가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머리를 잘랐다. 머리가 뭐라고. 머리가 긴 사람이 다 새침데기인 것도 아니고, 머리가 짧다고 다 귀엽거나 털털한 것도 아닌데 신기하게도 머리를 자른 뒤 제의받는 영화의 종류가 완전히 달라졌다. 머리가 길 땐 가벼운 멜로물이 대부분이었다. 선배를 짝사랑한다거나 남자의 구애에 무심한 새침한 캐릭터라거나. 그런데 난 가족영화가 됐건 학교영화가 됐건 등장인물이 여러 명이어서 요란하게 다른 배우들과 부딪히며 연기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더라. 그래서 1년을 고민하다 머리를 잘랐고 결과적으로 다양한 기회가 생겼다. 상업영화 진영에서는 특히나 증명된 것만 보여주려는 경향이 있지 않나. 그게 안전하니까. 그런데 난 한 방향으로만 가는 건 원치 않는다. 대박날 것 같은 영화나 캐릭터를 맡고 싶은 마음보다 한곳에서 맴돌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그러면 어디로든 향할 수 있을 테니까.

전여빈_ 물음표나 느낌표가 생기는 인물들을 계속 만나고 싶다.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그게 중요한 것 같진 않다. 내가 그 이야기 속의 한점이어도 좋다. 그 이야기가 나한테 물음표나 느낌표를 준다면, 그 안에서 내가 멋지게 어울릴 수 있다면 점이어도 상관없다.

유이든_ 이제 시작하는 거라 어떤 길이 있고 그 길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른다. 다만 내가 배우라는 직업에 사명감을 가지고 임할 수 있게끔 좋은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손쉽게 흥행만 노리는 작품이 계속 나온다면 이 일에 실망할 것 같다. 그러려면 배우뿐만 아니라 연출자, 투자자, 대중 모두 노력해야 한다. 그런 시대를 누리게 된다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은.

요조_ 서울에서 운영하던 책방을 제주도로 이전할 계획이다. 제주도 책방공사가 한창이다. 가을쯤 제주도에서 책방을 오픈하는 게 목표고, 오픈한 다음엔 다시 열심히 책장수의 삶으로 돌아가서 책도 더 열심히 보고 사람들도 더 만나게 될 것 같다.

전여빈_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과정 작품 <죄 많은 소녀>를 소니씨와 함께 찍었는데 이 작품으로 곧 인사드릴 것 같다.

전소니_ 지금 네달째 <악질경찰>을 찍고 있다. 8월쯤 촬영이 끝나면 좀 쉬면서 여행도 다녀오고 싶다.

유이든_ <여자들> 이후 최시형 감독님이 연출한 장편 <안녕 내 사랑>(가제)을 찍었고, 연출하는 친한 친구들과 아마 네덜란드가 배경인 단편영화를 찍을 것 같다.

전소니_단편영화 <사진>(2014)으로 데뷔했고, 치즈의 뮤직비디오 <어떻게 생각해>, 웹드라마 <72초 드라마> 등에 출연해 청량한 아름다움을 뽐냈다. <여자들>에선 시형이 오키나와에서 만나는 무심한 듯 시크한 소니를 연기했다. <여자들>의 여배우 중 유일하게 해외 로케이션을 진행해 다른 배우들의 부러움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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