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복수는 나의 것> O.S.T
2002-04-11
글 :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복수는 나의 것>은 조금 의도적인 영화다. 감독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 처절한 비극의 원인이 썩어빠진 자본의 세상이라 생각하도록 의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비극의 원인은, 더 정확히 말해 그 동인은, 실은 영화 자체이다. 카메라는 낭자한 피를 끔찍하게 잡아내는 하드보일드한 눈과 처연하게 비를 맞고 있는 착잡한 달동네의 풍경를 단번에 훑어내려는 야심찬 현실적 조망의 눈 사이에서, 사실상 방황하고 있다. 그 방황 자체로 인해 이 영화는 문제작이 된다. 아직, 역사적 문제의식이 있는 영화작가들의 의도는 더 영화 속에 녹아 들어가거나, 아니면 더 현실로 나오기 위해 영화적 스타일이라는 것 자체를 일시적으로 망각하거나 해야 한다.

영화의 음악을 맡은 어어부프로젝트는 이미 <반칙왕>을 통해 음악을 영화에 붙이는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바 있다. 어어부프로젝트의 음악은 한마디로 슬픔과 우스꽝스러움의 결합이다. 이 결합은 한국 록 음악사에서 어어부프로젝트를 통해 거의 처음 제시된 것이기도 하다. 소리를 통한 일종의 해프닝을 기획하는 아방가르드와 톰 웨이츠풍의 처연함으로 재처리된 30촉짜리 뽕짝이 깨진 거울을 씹는 것과도 같은 어떤 반추를 통해 비벼진다. 그렇게 어어부의 겹주름 위에서 생성된 음악은 ‘의도적으로 망친 가수의 기획된 쇼’인 그들의 무대 위에 쓰디쓴 위산 냄새를 풍기며 게워진다. 어느 지점에 가서는 ‘슬픈 우스꽝스러움’, 혹은 ‘우스꽝스러운 슬픔’이 되어버리는 그 토사물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다른 어떤 음악보다도 스펙터클한 거짓/자기고백이다. 어어부 음악의 이런 스펙터클함은 영화와 잘 결합될 가능성이 있다.

<복수는 나의 것>에 쓰인 어어부프로젝트의 음악은 세 갈래 정도로 따내어질 수 있다. 하나는 오프닝 타이틀에 흐르는 서정적인 멜로디. 장영규의 것으로 보이는 그 멜로디는 언뜻 단순해보이나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한다. 광기와 서정성이 합쳐져 약간 스멀거리기까지 하는 것이 어딘지 슈만을 연상시킨다. 두번째는 어어부 특유의 뽕짝이다. 생소리와 3류 일렉트로니카를 버무린 편곡에 의해 재생되는 이 뽕짝은 백현진의 것이다. 낭자한 슬픔의 우스꽝스러움. 세번째의 것은 신경증적인 프리 연주이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이 연주는 주인공들의 도착적인 심리상태를 끔찍하게 묘사해준다. 피리나 색소폰 같은 리드 악기들과 해금 등의 현악기들이 내는 뒤틀린 배음들이 잘 구사되어 있다.

어어부 프로젝트의 음악은 해프닝적이다. 따라서 상황적이고 일회적이다. 이 음악은 자꾸 반복되면 조금 지겨워질 수가 있는데, 이번 영화에서 약간 그랬다. 새로운 상황을 스스로 구성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 이런 스타일의 음악의 팔자다. 진맥해보건대 이번 영화에 등장한 그 ‘프리’가 앞으로의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영화 속에서는 끔찍한 느낌을 표현하지만, 음악 자체로만 들으면 사운드의 구성이 상당히 시원한 연주다. ‘잘 연주된 프리’라는 말은 말 자체가 조금은 어불성설이나 ‘잘 연주된 프리’가 존재하는 게 사실인데, 이 O.S.T의 프리한 연주는 분명 잘 연주된 프리이다. 방황하는 카메라의 눈도 그렇지만, 이들의 음악은 가능성을 찾아 솔직하게 방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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