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 <겟 아웃>(2017)을 보고 힐시티(Hillcity)란 제목의 건축 프로젝트를 떠올렸다. 그 이유는 둘 다 ‘이종교배’를 통해서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0년 프랑스의 지방도시 그르노블에서 진행된 한 공모전에 네덜란드 건축가 3명이 한팀을 만들어 건축계획안을 제출했다. ‘2000년을 위한 주거형식’이라는 공모전 주제에 대응한 이들의 안은 ‘힐시티’(Hillcity)라는 다소 평범한 제목을 갖고 있었다. 디자인의 측면에서 보면 고루하다고 할 수도 있는 양식의 주택들(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집장사’ 집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주택)을 언덕 위에 배치한 계획이다. 이들의 계획안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그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계획 속의 언덕은 콘크리트를 사용해서 만든 인공 구조물이다. 자연을 인공적인 형태로 바꾸는 데 거리낌이 없는 나라의 이 건축가들은, 도시 안에 작은 ‘산’을 건설하기를 제안한다.
영화의 서사를 공간적으로 설명한다면
우리는 쉽게 간과하고 있지만, 현대 도시에는 인공적인 환경으로 유지되는 공간들이 적지 않다. 창문을 계획하지 않는 대부분의 마트들과 백화점, 햇빛을 차단하고 싶어 하는 클럽들, 주로 지하에 위치한 주차장같이 현대 도시를 위해 필수적인 공간들은, 에어컨과 인공조명으로 유지되는 세계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새롭게 생겨난 이 창문 없는 건물들에 대한 건축가들의 대응은, 이 새로운 종에 대한 진정한 해석 없이, 대부분 입면을 어떻게 계획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반면에, ‘힐시티’가 사용한 방법은 입면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다. 빛과 전망이 필요 없는 시설들은 쌓아올려 ‘인공산’을 만들고, 산 위에 도로가 필요 없는 이상적인 경사지주택을 제시하고 있다. 이 인공산 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주차를 하고, 마트에 들러 쇼핑을 한 후, 바로 계단을 올라가면 자신의 집에 도착한다. 오래된 양식(장르)인 ‘언덕 위 주택’과 새로운 형식 ‘주차장, 마트, 클럽’을 교배해서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고 있다. 즉 이종교배이다.
힐시티에 계획된 주택들은, 지방도시 그르노블의 부동산 정보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주택들의 외형과 평면을 차용한 것이다. 힐시티의 건축가들은 힐시티의 계획에서 중요한 것은 디자인 된 주택보다는, ‘언덕 위 주택’과 ‘인공환경 공간’, 두 양식의 결합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힐시티 프로젝트는 이종결합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결합의 전제조건은 도시에서 인공적인 자연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에 있다.
<겟 아웃>은 영화 <초대받지 않은 손님>(1967)을 연상하게 하는 흑백 인종문제를 다루는 전반부와 호러영화 스타일의 후반부가 합쳐진 형태이다. 이러한 형식은 공포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평화로운 전반부와 피와 살이 튀는 후반부의 호러영화를 연상하기 쉽지만, <겟 아웃>의 경우는 이러한 결합방식 자체가 영화의 서사를 작동하게 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도시에 살고 있는 로즈(앨리슨 윌리엄스)는 흑인 남자친구 크리스(대니얼 칼루야)를 자신의 부모 집으로 초대한다. 로즈 부모의 집은 앨라배마주 한적한 시골에 위치하고 있다. 앨라배마는 ‘블랙벨트’라 명명되는, 흑인을 노예로 이용했던 남부의 주들 중 한 곳이다. 크리스가 앨라배마에 살고 있는 백인 여자친구의 부모를 만나러 가는 초반부는, 예상할 수 있는 전형적인 과정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이는 후반부의 지하실 감금, 그리고 탈출과 살인 장면들에서도 마찬가지다. ‘힐시티’와 마찬가지로 <겟 아웃>의 힘은 다른 두 전형적인 장르가 만나는 중간지대에 있다.
크리스가 찾아간 로즈 부모의 집은 남부 ‘플랜테이션’ 시대의 저택을 연상시키는 모습을 하고 있다. 본채와 분리된 별채의 존재나 흑인 가정부와 정원사가 백인 가정을 보조하는 모습은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흑인 노예시대의 역사를 환기시킨다. 특히 주변 이웃들을 초대하는 로즈 집안의 연례 행사에서, 초대받은 백인들 사이에 홀로 서 있는 흑인 크리스의 모습은, 미국 남부의 인종적인 역사와 문화가 만들어내는 공간감을 극대화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 속 크리스와 영화 밖 관객은 무언가 이상하고 낯선 점들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지만 영화의 결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겟 아웃>은 이 지점에서 현대적인 의미의 예술적 표현, 애매함, 모호함, 낯섦을 듣도 보도 못한 방식으로 영화에 끼워넣는다.
<겟 아웃>의 플롯이 영리한 점은 장르의 이종교배를 영화 스토리에도 동기화했다는 점이다. 흑인의 몸에 백인의 뇌를 이식시키는 수술을 통해 만들어진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관객이 이해할 수 없는 낯선 모습으로 나타난다. 주먹인사를 악수로 받는 행동이나 제시 오언스 때문에 베를린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 로즈의 할아버지가 흑인의 몸으로 밤늦게 달리기를 하는 장면은 낯설면서 흥미롭다.
영화의 서사를 공간적으로 설명한다면, <겟 아웃>의 주인공 크리스는 도시에서 시골로, 그리고 숲속의 외딴 저택, 백인들 사이, 숨겨진 지하 수술실 등 점점 빠져나올 수 없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와 대응해서, 로즈 엄마의 최면에 빠진 크리스의 마음도 점점 심연(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숨겨진 지하 수술실과 최면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은 의자 솜털을 사용한 작은 귀마개를 통해서다. 가장 가벼운 것을 통해서 크리스는 위험에서 벗어난다.
욕망과 공포 사이
영화의 결말에 대한 호불호가 있지만, 나는 ‘힐시티’의 건축가와 마찬가지로 <겟 아웃>의 감독은 진지한 결말보다는, <겟 아웃>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두 양식의 ‘흑백결합’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겟 아웃>은 이종결합 자체만으로도 원하는 결과, 흑백 인종문제와 공포감을 동시에 만들어내고 있다.
예술가들은 ‘이종교배’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다. 두 가지 다른 것이 만나서 새로운 것이 생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개별적인 장르에서 새로운 것이 나오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건축가들도 프로그램의 이종교배라는 주제를 자주 이야기하지만 ‘힐시티’만큼 건축계획으로 잘 구현해낸 것을 본 적은 없다. 그리고 영화에서 그것은 <겟 아웃>이다.
나는 어떤 영화는 건축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건물을 주제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구조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겟 아웃>이 바로 그런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