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 컬처 쇼크를 몰고왔던 애니메이션 <아키라>가 재개봉한다. <아키라>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 불법복제 비디오테이프로 암암리에 유통되던 전설적 사이버펑크 SF로, 1990년대의 재패니메이션 르네상스의 전초 역할을 했던 작품이다. 사실적 작화로 일본 망가의 흐름을 바꾸어놓았던 만화가 오토모 가쓰히로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본 버블경제 황혼기에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부어 만들어 현재의 수준과 비교해도 상당한 고퀄리티를 자부하는 수작이다. 한국에서 1991년 <폭풍소년>이라는 홍콩 애니로 대량 삭제된 채 속임수 개봉 되었던 서글픈 전력도 있다.
알 수 없는 폭발로 도쿄가 폐허가 된 지 31년이 지난 2019년의 일본. 신도시 네오도쿄는 정치와 자본의 결탁으로 첨단의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이면에서는 퇴폐, 약물, 폭력, 광신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반정부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고아이자 직업학교 출신 폭주족인 카네다 패거리는 오토바이로 거리를 누비며 아슬아슬한 심야의 레이싱을 즐긴다. 그중 한명인 테츠오는 자신에게 통제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내재해 있음을 알고는 세상에 복수하듯 그 힘을 남용하기 시작한다. 과학자들은 진화된 인간에 도달하기 위해 아이들을 대상으로 능력을 각성시킬 실험을 자행하는데, 30년 전의 도쿄 폭발은 실험대상 중 ‘아키라’라는 미지의 아이와 연관되어 있다. 자존감이 낮은 소심한 소년에게 통제 불능의 힘이 주어졌을 때 일어난 파국을 인류의 탐욕과 연관지었던 <아키라>를 폭력과 테러리즘과 창궐하는 혐오의 시대에 다시 만나니 동시대적 함의가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