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국 배우의 의미 있는 하차설이 할리우드를 흔들고 있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과 영화 <데드풀>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 영국 배우 에드 스크레인이 지난 8월 28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영화 “<헬보이> 리부트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다가 하차를 결정했다”면서 장문의 글을 올렸다. 그가 어렵사리 배역을 따낸 영화에서 하차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자신이 연기할, 원작 그래픽노블에 등장하는 벤 다이미오라는 캐릭터가 일본계 혼혈 미국인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에드 스크레인은 “다양한 인종을 문화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 책임을 소홀히 하면 자꾸만 소수 사람들의 이야기와 목소리를 가리려 할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지적했다. 할리우드에서 배우가 직접 나서 이런 문제를 SNS에 공론화한 사례는 일찍이 없었다. 그의 하차 발언에 <헬보이>의 원작자 마이크 미뇰라가 감사를 표하고 에드 스크레인 계정의 팔로워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등 대중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할리우드의 화이트워싱 논란은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닥터 스트레인지>부터 원작 소설의 한국계 미국인 캐릭터를 백인 여성으로 설정을 바꾼 <마션>, 악역을 전부 유색인종에 맡긴 <라스트 에어벤더> 등을 거쳐 멀게는 무성영화 시절 더글러스 페어뱅크스나 루돌프 발렌티노 같은 당대 스타 백인 배우들이 아랍인을 연기하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에는 흥행을 위해 스타 배우를 전면에 내세울 목적으로 화이트워싱의 유혹에 빠져들었다면, 최근의 할리우드는 아이디어 고갈로 아시아 콘텐츠에 눈을 돌리는 과정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아이언 피스트>나 리메이크영화 <데스노트>는 아시아 문화에 대한 몰이해가 작품성을 떨어뜨리고 흥행에도 실패했다. 변화한 여론을 의식한 때문인지 가이 리치 감독은 <알라딘> 실사영화의 캐스팅을 두고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과연 화이트워싱 같은 문화적 퇴행이 돈을 벌어들일 수 없는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