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 출연 제임스 스튜어트, 존 달 / 제작연도 1948년
언제부터 영화에 중독되기 시작하는 걸까? 부모님이 영화를 금하셨던 것도, 스스로 영화를 기피했던 것도 아니지만 어린 시절 내게 영화는 딱히 호기심이 생기거나 더 알고 싶은 존재는 아니었다. 요즘도 ‘내 인생의 영화’ 코너에서 어린 시절 제목도 모르고 본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이 원체험으로 남았다는 유의 글을 읽을 때면 희미한 결핍과 불안을 느낄 때가 있다. 내겐 앎 이전의 본능적인 감각에서 우러난 매혹이 없었던 것 같은데.
대학에 가도록 영화 애호가가 될 조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던 내가 학내 영화 동아리에 발을 들이게 된 것도 순전히 친구의 강권 때문이었다. 그나마도 처음엔 가입만 해놓고 마음 없이 겉돈 터라 그곳에서 처음 본 영화가 무엇이었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첫 경험’만은 확실하다. 그건 <로프>였다.
1948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에게는 일종의 실험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실시간으로, 편집 없이 전개되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카메라에 장착할 수 있는 필름의 길이에는 한계가 있었고, 필름을 교체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화면이 멈추어야 했다. 이에 히치콕은 필름이 다할 때마다 배우의 등 뒤로 다가가 화면을 어둡게 만들고 필름을 교체한 뒤 다시 카메라를 돌리는 기법을 사용했다…. 이것이 <로프>를 소개할 때 흔히 나오는 이야기다.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던 선배도 상영 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다. “화면이 몇번이나 끊기는지 직접 세어보세요.” 카메라가 배우의 등 뒤로 숨을 때마다 내가 손가락을 꼽아가며 횟수를 셌던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날 <로프>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건 아니다. 중요한 일은 영화가 끝난 뒤에 일어났다. 영화를 보고 나와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데 옆에 회장 선배가 와서 섰다. 아는 사람끼리 소변기 앞에 나란히 섰을 때 특유의 어색함을 피하고 싶었던 건지, 선배가 한마디 던졌다. “컷이 참 없지?” 대충 고개를 주억거렸다. 손을 씻고 나오면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그걸 컷이라고 하는구나.
나는 그때까지 열여덟해를 살며 각종 영상물을 보는 동안 숏이나 컷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화면이 끊기거나 다른 화면으로 연결된다는 의식조차 없었다. 모른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화장실에서 선배가 던진 심상한 한마디 덕분에 그 완강한 무지가 처음 흔들렸다. 그걸 가리키는 이름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충격을 느꼈다고 포장하지는 않겠다. 그냥 그런 것도 있구나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분명 그게 균열의 시작이었다. 극을 전달하는 시청각 매체 정도로만 여겼던 영화의 위치와 성격에 대한 갖가지 의문이 그 균열에서 솟아났다. 그 의문들이 가리키는 방향에서는 영화가 플롯 바깥에서도 말을 걸고 있으며,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 자체가 또 하나의 이야기를 빚어낼 수 있다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형상, 색채, 소리들에 서서히 눈과 귀가 트였고, 낯선 감정들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게 내 영화적 원체험은 머리가 굵어진 다음, 앎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본능을 갖추지 못했지만, 앎이 내 감각을 자라게 해주었고 새로운 감각들에 중독되게 했다. 그걸로 만족한다.
유년기 중독 증상을 놓친 여러분,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홍지로 번역가. <슈퍼맨 액션 코믹스 Vol.1> <살인자의 보수> <킹의 몸값> <살인하는 돌> 등 다수의 장르소설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