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이 캔 스피크> 김현석 감독, "배우들을 믿고, 그 장면의 진실함을 믿고 갔다"
2017-09-21
글 : 이주현
사진 : 최성열

사랑이라는 가장 따뜻한 감정을 동력으로 삼는 인간적인 소동극. 거기에 슴슴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유머. <YMCA 야구단>(2002), <광식이 동생 광태>(2005), <스카우트>(2007),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 <쎄시봉>(2015)까지, 김현석 감독의 작품이 품고 있는 요소들이다. 김현석 감독이 <쎄시봉> 이후 2년6개월 만에 선보이는 <아이 캔 스피크>에도 김현석 감독 특유의 유머와 화법과 인간애가 담겨 있다. <아이 캔 스피크>는 시장에서 옷수선 가게를 하는 민원왕 나옥분(나문희)이 구청 공무원 박민재(이제훈)에게 악착같이 영어를 배우면서,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왔던 말을 세상에 전하는 이야기다. 알려졌다시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극영화지만, 웃으면서 (사실은 꽤 많이 울게 되지만) 아픈 과거에 접속하게 하는 휴먼 코미디다. 직접 쓴 각본은 아니지만 김현석 감독은 정공법을 피해가며 정곡을 찌르는 특별한 영화를 만들었다. <아이 캔 스피크>의 특별함에 대해 김현석 감독과 얘기를 나눴다(참고로 다음주 발간되는 <씨네21> 1124호 추석 합본호에서는 김현석 감독이 직접 쓴 <아이 캔 스피크> 제작기도 만날 수 있다).

-<쎄시봉> 이후 어떻게 지냈나.

=지난해 중국에서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사드 문제가 터지면서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그러다 지난해 겨울에 <아이 캔 스피크> 연출 제의를 받았다.

-<쎄시봉>은 화제성에 비해 성적이 좋지 않았다. 흥행 결과에 마음이 많이 쓰였나.

=안 그럴 수가 없지. 그래서 기회 있을 때 중국영화를 하려 한 것도 있다. <쎄시봉> 이후 글이 잘 안 써지기도 했고 한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웃음)

-<열한시>의 경우 직접 쓴 각본이 아니어서 현장에서 힘들었다는 얘길 한 적 있는데, <아이 캔 스피크> 역시 직접 쓴 시나리오는 아니다.

=<열한시> 때 처음으로 다른 사람이 쓴 각본을 각색해서 연출했다. 게다가 기존에 해온 장르와 거리도 너무 멀어서 영화에 깊이 못 들어간 지점이 있었다. 반면 <아이 캔 스피크>는 장르적으로 내가 해온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각색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많이 체화할 수 있었다. 이야기의 구조에도 힘이 있다고 느꼈다. 내가 만약 이런 소재로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썼다면 아마 애매한 수준으로 울리거나 웃겼을 거다. 울려도 찔끔 울리고 웃겨도 실없이 웃기는. 그런데 지금 영화에는 감정적 반응이 센 장면들이 있다. 특히 시장 사람들의 이야기가 정공법으로 감정을 건드리는데, 시장쪽의 이야기는 각색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구청 사람들 이야기는 내 식대로 많이 고쳤다. (박철민, 정연주, 이지훈이 연기하는) 공무원 ‘한심 3인방’ 캐릭터라든지 코믹 코드들은 손을 좀 봤다.

-<아이 캔 스피크>는 영화사 시선의 강지연 대표가 기획·개발한 프로젝트로 CJ문화재단이 주관하고 여성가족부가 후원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된 작품이다.

=그와 관련한 내용은 나중에 알았다. 맨 처음 명필름 심재명 대표님한테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영화에 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읽었다. 고만고만한 휴먼 코미디일 거라 예상했는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얘기라는 게 밝혀지는 뒷부분에서 뒤통수를 맞는 것 같았다.

-소재에서 기인한 조심성이 연출에도 영향을 끼쳤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서 위안부 문제를 다룬 기존 영화들이 정공법을 택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 그런데 <아이 캔 스피크>는 ‘위안부 소재의 영화인데 코미디야?’라고 말할 수도 있는 영화다. 하지만 전에 광주민주화운동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은 <스카우트>(2007)를 만들어봤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만들면서 점차 부담을 느꼈다. 광주민주화운동도 슬픈 역사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그것과는 또 다른 아픔과 무게가 있더라. 영화 시작하고 70분 지점까지는 코미디인데 결코 허투루 코미디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할머니들을 마음으로는 늘 응원하고 있었지만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처음으로 나눔의 집에도 가고 수요집회에도 가봤다. 옛날 자료들, 할머니들의 증언도 많이 찾아봤는데 볼 때마다 욱했다. 옥분 할머니를 지켜보는 민재의 입장이 결국 내 입장이었고, 민재에게 감정이입해서 각색하다가 추가한 게 민재의 욕이다. 청문회가 끝나면 일본 로비스트들이 옥분에게 ‘돈을 얼마나 받아먹었느냐’고 소리친다. 그러면 일탈을 모르던 얌전한 캐릭터 민재가 ‘개새끼들아~’ 하며 덤빈다. 그건 순전히 내 감정을 표현한 거다. 그나마 이제훈씨가 얌전하게 연기한 거지, 실제라면 ‘박열’처럼 했어야 했다. (웃음)

-언급한 것처럼 희극을 경유해 비극에 접근하는 화법이란 점에서 <스카우트>와 <아이 캔 스피크>는 닮았다.

=그래서 심재명 대표님이 나한테 연출을 제안했던 건지도 모른다. ‘과연 그 소재를 이렇게 다뤄도 될까요?’라는 반응들이 있었다고 한다. 오히려 난 그 지점에 끌렸다. 정공법으로 다루면 재미없지 않았을까. 물론 정공법이었다면 나한테 시나리오를 주지도 않았겠지만. (웃음)

-나옥분이라는 캐릭터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로서의 위치에 국한시키지 않고 때론 깐깐하고 때론 귀찮은 존재이기도 한 보통의 ‘할머니’로 그린 점이 인상적이었다. 위안부 피해자 캐릭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접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분이 떳떳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인터넷 댓글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 영화에서 옥분이 자주 하는 말은 ‘아임 파인 땡큐’인데, 정작 제일 ‘파인’하지 않은 사람이 ‘나는 괜찮다’고 말한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스카우트> 때도 그런 마음이 있었다. 내가 광주 출신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광주 사람을 피해자로만 묘사하는 게 싫었다. 우리는 비극적인 역사를 경험했지만 또한 평범한 일상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도 어쩌면 하나의 프레임과 시선으로 자신들의 삶이 그려지는 게 싫을 수도 있지 않을까.

-70대 할머니와 30대 청년이 주인공이란 점도 신선하다.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든 두 세대의 만남이다.

=시나리오를 초·중반까지 읽으면서 든 생각도 독특한 버디무비가 될 수 있겠다는 거였다. 요즘 <아이 캔 스피크> 같은 포스터를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들지 않나. 남자 4명 있는 포스터는 많지만. (웃음) 또 여성배우들이 연기할 만한 역할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 영화에선 77살인 나문희 선생님이 당당히 주인공이다. 소재나 주제의 의미를 차치하고서라도 편향된 한국영화 시장에서 의미 있는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나문희 선생님의 최고 흥행작이 되면 어떨까. (웃음)

=잠깐만, 그러면 (865만명이 넘게 본) <수상한 그녀>(2014)를 이겨야 하는데…. (웃음)

-<아이 캔 스피크> 역시 눈물을 흘리지 않을 도리가 없는 영화였다. 나문희 선생님의 연기 덕도 컸고.

=배우들이 정말 잘했다.

-그런데 눈물의 포인트가 되는 장면의 촬영이나 편집은 꽤 덤덤한 편이다. 무덤 신이나 청문회 연설 신의 경우도 신의 길이를 애써 늘리거나, 클로즈업을 한다거나, 음악으로 감정을 고조하지 않더라.

=방금도 인터뷰 오기 전까지 작업실에서 무덤 장면에 살짝 들어간 음악을 빼고 있었다. (웃음) 무덤 신은 숏이 단순하다. 멋있는 앵글을 만들어 찍지 않았다. 해질녘에 맞춰 찍어야 해서 카메라 트랙을 깔 여유도 없었다. 정말 나문희 선생님만 믿고 갔다. 이 작품을 찍으면서 든 생각이, 미장센이고 뭐고 배우의 연기가 좋은 게 제일이더라. 진주댁(염혜란)이 옥분을 끌어안아주는 장면도 촬영감독님이 핸드헬드로 찍은 OS(Over the shoulder shot(오버 더 솔더 숏), 한 배우의 어깨너머로 상대 배우의 얼굴이 나오게 찍는 숏)가 전부다. 거기서도 염혜란 배우가 진짜 연기를 잘했다. 덤덤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전체적으로 감정을 강요하는 신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배우들을 믿고, 그 신의 진실함을 믿고 갔다.

-청문회 연설 장면은 미국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미국 친구들은 <씨네21> 안 보겠지? (웃음) 미국에서 제일 중요한 장면을 찍어야 했는데, 주어진 촬영기간은 5일이었고 예산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 프로덕션의 일의 속도나 역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쎄시봉> 때 처음 미국 로케이션을 경험했는데 그때와는 너무 달랐다. 그래도 장소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버지니아주의 리치먼드 시의회에서 찍었는데, 200년 정도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었다. 미국까지 가서 찍을 만한 가치가 있는 공간이었다.

-배우들 덕을 많이 봤다고 했는데, 나옥분은 나문희 선생님의 맞춤 캐릭터였다.

=시나리오 보자마자 떠올린 배우가 나문희 선생님이었다. 이를테면 김혜자 선생님이나 윤여정 선생님이랑은 다르게 나문희 선생님의 표정만이 주는 페이소스가 있다. 그래서 연기와 관련해선 별다른 디렉션도 하지 않았다. R발음과 F발음까지 정확할 만큼 영어 발음도 무척 좋으셨다.

-이제훈 배우는 캐릭터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영화에서 자신이 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 같았다.

=일단 원칙주의자 공무원 이미지에 딱 맞았다. 술도 잘 안 먹고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실제로 민재 같은 모습이 있다. <박열>(2017) 크랭크업하고 얼마 안 돼서 미팅을 했는데, 박열과는 극과 극의 캐릭터라서 이 작품을 하려고 하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제훈씨의 영어 발음이 정말 좋다. 단기간에 연습해서 나올 수 있는 발음이 아니다. 영어 발음 자랑하려고 이 작품을 택했나 싶더라. (웃음) 사실 나문희 선생님 칭찬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제훈씨한테 고맙다. 요새 남자배우들이 할 만한 작품이 얼마나 많나. 남자주인공 4명 중에 1명 하면 되는데 제훈씨는 속칭 ‘알탕 영화’라 불리는 영화에 안 나온다. 그의 행보는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다. 또 제훈씨는 자기만의 논리가 있는 배우다. 중간에 시나리오가 바뀐 적이 있다. 그때 제훈씨가 그러더라. 이렇게 이야기가 바뀌면 자기가 세워둔 연기의 논리를 허물어야 한다고. 처음엔 ‘이게 뭔 소리야’ 싶었는데 나중에 촬영을 하면서 ‘얘가 진짜 논리를 세워놓고 연기하는 건가’ 싶었다. (웃음) 제훈씨는 영화 전체를 본다. 한 신에 목숨 걸지 않는다. 요즘은 배우들이 개인기로 한 신을 책임지는 게 유행처럼 돼버렸다. 언젠가부터 젊은 친구들이 오디션을 보러 오면 애드리브인 듯 아닌듯 자연스러운 연기, 이를테면 초창기 송강호 선배나 김윤석 선배처럼 연기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물론 그것도 재능이지만, 스타일은 있는데 자기 해석이 없다는 인상을 받는다. 반면 제훈씨는 그런 연기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클래식하다.

-<아이 캔 스피크> 이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준비했던 중국영화는 완전히 중단된 건가.

=공식적으로는 한·중 양국 관계가 정상화되면 재개한다고 얘기하는데 지금으로선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전에도 <시라노; 연애조작단>의 중국 리메이크 얘기가 있었다.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호기심과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중국영화 시장은 많이 커졌고 우리 영화 시장은 정체되어 있다고 느껴서 중국영화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연출하고 싶은 마음도 크지 않나.

=그렇긴 한데 요즘은 글쓰기가 너무 힘들다.

-글이 안 써지는 이유가 있나.

=부지런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매일 일정 분량의 글을 정해놓고 써야 하는데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다. 부양가족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고. 강아지 사료야 한달에 5만원이면 되니까, 욕심을 덜 내게 되는 걸지도.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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