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렸던 ‘세기의 대결’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러면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배틀 오브 더 섹스’(Battle of the Sexes)라고도 불린이 경기는 자칭 남성 우월주의자라고 주장하는 55살의 은퇴한 테니스 선수 바비 릭스와 당시 세계 1위를 기록한 29살 빌리 진 킹의 테니스 매치였다. 경기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바비 릭스는 “아무리 세계 1위를 해도 여자 테니스 선수는 은퇴한 중년 남자 선수를 이길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여자는 주방과 침실에 있어야 하고, 테니스 코트에서는 공 줍는 역할에나 적합하다”고 공공연히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렇다면 킹은 왜 이런 도전을 받아들였을까. 갬블링을 좋아하는 릭스에게 이 경기는 목돈을 쥐고, 한물간 자신의 커리어를 살릴 수 있는 일종의 ‘쇼’였다. 하지만 킹에게는 자신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동료와 이후에 오게 될 후배 여자 선수들의 미래가 걸려 있어 거절할 수 없는 중요한 매치였다. 당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여주는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이 9월 22일 북미 개봉했다.
<미스 리틀 선샤인>(2006)의 감독 조너선 데이턴과 발레리 페리스가 연출을 맡은 이 작품은 39개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가진 것은 물론 인권운동가로도 활동해온 빌리 진 킹의 영화 같은 실화를 보여준다.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에서 킹을 연기하는 건 올해 초 <라라랜드>(2016)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에마 스톤이다. 바비 릭스 역으로는 스티브 카렐이 출연하는데, 다소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 그의 연기에 일부 평론가들은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이 지나치게 안전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은 대중적인 흥행은 물론이고 아카데미상 후보작으로도 거론될 가능성이 높지만, 실제 빌리 진 킹의 치열한 삶에 대한 작품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미국에 트럼프 정권이 들어선 뒤 인권운동이 수십년 퇴보된 듯한 현시점에서는 그 아쉬움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