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ituary]
[해리 딘 스탠턴 추모] 그가 함께 있었다는 것
2017-10-06
글 : 장영엽 (편집장)

“당신을 어떻게 묘사하고 싶나요?” “그런 거 없어요. 자아라는 게 없으니까.”

“어떻게 기억되고 싶나요?” “어떻게 기억되든지 상관없어요.”

감독 데이비드 린치가 묻고 배우 해리 딘 스탠턴이 답한다. 다큐멘터리 <해리 딘 스탠턴의 초상>(2012)의 한 장면이다. 어떤 질문을 던지든 묻는 이의 호기심을 더 자극하기만 하는, 간결하고 무심한 대답이 돌아온다. 해리 딘 스탠턴은 그런 사람이었다.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개성 있는 마스크의 성격파 배우로 이름을 널리 알렸지만, 정작 딘 스탠턴은 어떤 모습으로 규정되거나 누군가에 의해 쉽게 판단되는 것을 꺼렸다. 그런 그가 지난 9월 1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91살로 숨을 거뒀다. 사인은 자연사. 담백했던 그의 인생에 어울리는 결말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보다 더 길게 일한” 배우. 미국 잡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해리 딘 스탠턴의 커리어를 이렇게 평했다. 1957년 척 코너스가 주연을 맡은 서부극 영화 <토마호크 트레일>로 데뷔한 이래, 딘 스탠턴은 200여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해왔다. 그가 곧 아메리칸 시네마의 산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가장 잘 알려진 딘 스탠턴의 출연작은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1979)과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1984)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작품에 어떤 비중으로 출연하든 그는 강렬한 존재감으로 장면을 장악했고, 맡은 역할을 관객이 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 그의 연기를 두고 <뉴욕 타임스>의 평론가 빈센트 캔비는 “해리 딘 스탠턴의 미스터리한 재능은 모든 것들을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데 있다”는 찬사를 보냈고, 로저 에버트는 “해리 딘 스탠턴과 M. 에밋 월시가 조연으로 나오는 영화는 대체로 나쁠 일이 없다”고 말했다. 모든 것들이 빠르게 소멸되고 잊혀져가는 할리우드에서 60여년간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해리 딘 스탠턴은 그걸 해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잘해냈다.

해리 딘 스탠턴은 1926년 7월 14일, 미국 켄터키주 어바인에서 태어났다. 담배농사를 짓던 그의 아버지와 미용사였던 어머니는 자주 다투었고, 어린 딘 스탠턴은 부모의 불행을 그대로 흡수하는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침례교도였던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은 금욕적인 태도와 유년 시절로부터 비롯된 멜랑콜리의 정서는 훗날 배우로서의 딘 스탠턴에게 중요한 자양분이 되어줬다. 그가 연기자로서의 삶을 꿈꾸기 시작한 건 제2차 세계대전에 해군으로 참전한 뒤의 일이다. 켄터키대학에 입학한 뒤 3년 만에 중퇴하고, 로스앤젤레스로 삶의 터전을 옮긴 그는 파사데나 플레이하우스(연극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데뷔한 뒤 첫 20여년간, 해리 딘 스탠턴에게 주어진 역할은 주로 카우보이와 악당이었다. 비쩍 마른 외모에 견고한 골격, 움푹 팬 눈과 굳세 보이는 턱. 로맨틱 코미디나 액션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을 맡기에 딘 스탠턴의 외모는 다소 거칠고 세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말론 브랜도, 잭 니콜슨과 함께 호흡을 맞춘 서부극 <미주리 브레이크>(1976), 법이 관할하는 세계를 참지 못하는 전직 범죄자로 출연한 <출옥자>(1978) 등의 영화를 거쳐 딘 스탠턴은 <에이리언>을 만나게 된다. 외딴곳에서 거대한 에일리언과 마주한 채 자신의 죽음을 감지한 해리 딘 스탠턴의 떨리는 눈빛은 보는 이들의 애간장을 타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5년 뒤,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는 뭇 상업영화의 인상적인 신스틸러로 기억되던 해리 딘 스탠턴에게 연기 잘하는 주연배우라는 인장을 확실하게 남긴 작품이다. 4년간 가족을 떠나 텍사스의 황량한 벌판을 헤매던 남자, 트래비스의 삶의 궤적을 좇는 <파리, 텍사스>에서 트래비스를 연기하는 딘 스탠턴의 공허한 표정은 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이다. <해리 딘 스탠턴의 초상>의 촬영감독 시무스 맥가비는 딘 스탠턴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는데 아마 이 말을 <파리, 텍사스> 속 그의 모습에 그대로 대입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는 유랑자와 고독한 사람을 연기하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그는 깊이와 더불어 뭇 배우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개방적인 태도를 지녔다. 그는 자신이 연기하는 모든 역할에 그 자신의 모습을 가져온다. 그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자기 자신에게 진실할 수 있다면 누구나 배우가 될 수 있다고.” <파리, 텍사스>는 딘 스탠턴 그 자신도 “이후에 다른 영화를 한편도 하지 않았다면, 나는 행복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자신의 최고작으로 꼽는 작품이다.

<파리, 텍사스> 이후 기억할 만한 딘 스탠턴의 궤적은 데이비드 린치와의 협업이다. 린치는 <광란의 사랑>(1990)과 극장판 <트윈 픽스>(1992), <스트레이트 스토리>(1999)와 <인랜드 엠파이어>(2006) 등 자신의 많은 작품에 딘 스탠턴을 출연시켰다. 최근 25년 만에 제작되어 방영한 드라마 <트윈 픽스>의 세 번째 시즌에서 딘 스탠턴은 극장판 <트윈 픽스>에서 맡았던, 트레일러 파크의 관리자로 출연하는데 마을에서 일어나는 모든 기이하고 끔찍한 것들의 목격자로 오랜 영화 동지를 다시금 선택한 데이비드 린치의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두 사람은 9월 말 북미 개봉을 앞둔 딘 스탠턴의 마지막 출연작 <러키>에서 이웃으로 등장해 함께 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얼마 전 공개된 <러키>의 트레일러에서, 딘 스탠턴은 데이비드 린치와 마주 앉아 있다. 이 영화에 90살의 무신론자로 출연하는 스탠턴은 이웃집 노인의 잃어버린 거북이에 대해 말한다. “나는 내 친구가 그리워.” 하워드가 말한다. “그가 함께 있었다는 것. 그의 개성이 그리워.” 이 장면을 보며 딘 스탠턴의 죽음을 떠올리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미국영화의 좋은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그를 오랫동안 그리워할 것이다. 그의 존재감을, 그의 개성을.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