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형세포를 연구하는 생물학도 재연(문근영)은 적혈구와 엽록체를 결합시키면 인간도 광합성을 할 수 있다는 가설을 내세운 미지의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그런데 학계를 상대로 한 정치나 로비에는 관심없이 오직 연구에만 몰두하던 재연은 그녀를 시기하는 동료들로부터 연구 성과를 송두리째 뺏길 위기에 처한다. 설상가상으로 믿고 의지하던 교수(서태화)도 자신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는 걸 깨달은 재연은 비밀 연구공간인 ‘유리정원’으로 들어가 독자적으로 연구를 계속한다.
한때 떠오르는 신인 작가였지만 수년째 데뷔작을 넘어서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소설가 지훈(김태훈)은 우연히 재연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녀가 세상과 단절된 유리정원에서 괴이한 ‘생체실험’에 몰두하는 현장을 목격한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점점 사회에서 도태되어 인생의 위기를 맞게 되지만, 지훈은 재연이 행하는 실험이 자신에게 인생역전을 가져다줄 소설 아이템임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재연 몰래 웹소설을 연재해 인기를 얻기 시작한 지훈은 끝내 충격적인 현실의 결말과 마주하게 된다.
<명왕성>(2012), <마돈나>(2014) 등을 연출하며 자본주의사회의 병폐를 파고 들었던 신수원 감독의 <유리정원>은 잘못된 믿음과 선택으로 파국을 맞는 과학도와 소설가의 삶을 파헤치기 위해 미스터리와 판타지 등을 결합해 장르적으로 접근한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기괴한 과학과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아주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처연한 이미지로 묘사된다. 그 이면에 담긴 것은 성공을 위해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삶의 밑바닥과는 전혀 다른 기괴한 파괴의 에너지다. 최근 드라마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영화로는 <사랑따윈 필요없어>(2006) 이후 <사도>(2014)에서 혜경궁 홍씨로 잠깐 얼굴을 비춘 게 전부였던 배우 문근영의 반가운 스크린 복귀작이라는 점도 주목하자. 맑고 순수하면서도 지독하리만치 잔인한 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페이소스 짙은 캐릭터, 재연의 어떤 표정은 <유리정원>의 단단한 성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