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올리비에 다한 / 출연 마리옹 코티야르, 장 피에르 마틴, 제라르 드파르디외 / 제작연도 2007년
수능을 치르던 교실은 왜 그렇게 차가웠던지, 그 안의 난로 열기는 왜 그렇게 숨이 막혔던지. 열아홉에서 스물이라는 나이의 무게를 느끼며 ‘어른’이라는 명사를 동사로 체감해나가던 즈음에 만났던 영화들이 있다. 여전히 지금의 내게 힘이 되는 영화, 올리비에 다한 감독의 <라비앙 로즈>(2007)를 내 인생의 영화로 소개하려 한다.
<라비앙 로즈>는 전설적인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파란만장했던 삶, 그녀의 절망과 고통, 사랑과 예술, 희망의 끝을 그려낸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의 장면이 뒤섞이며 죽음을 코앞에 둔 피아프가 자신의 일생을 다시 한번 마주하고 복기한다. 잘 정리가 되지 않아 보이는 신의 배열은 영화를 즉각적으로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는데, 이 표현방식은 오히려 안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불안하고 변덕스러웠던 그녀의 생을 꼭 닮은 배열이기도 하다.
‘작은 참새’라는 뜻의 이름인 에티트 피아프는 키 142cm의 작은 체구를 가졌다. 그 ‘작은’ 거인이 관통해야만 했던 48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그녀 인생 앞에 놓인 비극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비극적이었다. 절망과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그녀는 온몸을 내던져 사랑했고 노래했다. 사랑과 노래만이 그녀 생의 유일한 구원이었으리라. 영화는 줄곧 생의 유한함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생에 대한 처절한 찬미를 부르짖는 한 여인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 담담한 관조가 오히려 잔인하게 느껴지고, 바라보는 이들을 아프게 만든다. 삶, 꼭 이래야만 하는 것일까, 라는 어지러운 마음을 가지게 될 때 즈음 그녀와의 인터뷰 장면이 나온다.
Q. 지혜롭다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A. 오, 내가 지혜롭게 살아왔지요. Q. 노래를 부를 수 없다면요? A. 그건 제가 죽었다는 뜻이에요. Q. 여성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은? A. 사랑. Q. 젊은 여성들에게는요? A. 사랑. Q. 어린이들에게는요? A. 사랑.
몇번을 거듭해도 ‘사랑’을 대답한 그녀, 단순히 연인간의 사랑이 아닌, 사랑이라는 한 단어 안에 담겨 있는 모든 것, 그 모든 것을 말하고 싶었을 거다.
오늘 지하철을 타고,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선곡하려는 순간 옆 좌석의 늙은 여인의 통화에 행동을 멈췄다. 귀는 이미 그녀의 언어를 훔쳐듣고 있었다. 작게 떨리는 음성…. “내가 잘할게. 내가 잘할게. ㅇㅇ야, 우리 다시 노력하자. 지나간 누구를 말해봤자 소용없어. 그러니 우리 다시 노력하자고 말하자. 응? 내가 잘할게.” 그녀는 누구에게 잘하고 싶었고, 무엇을 위해 그렇게 노력하고 싶었던 걸까, 그녀가 마치 작은 참새, 또 다른 에티트 피아프 같았다.
에티트 피아프의 삶을 처절하게 표현한 배우 마리옹 코티야르. 그리고 에디트 피아프의 모습이 담긴 한장의 사진에서 시작해 이 영화를 세상에 내준 올리비에 다한 감독에게도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더해진다. 말년의 그녀는 피폐해질 때로 피폐해져 더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 힘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생의 끝에서 온 힘을 다해 불렀던 노래. <Non, je ne regrette rien>의 한 대목을 여기 붙여본다.
“아뇨, 전혀요. 아뇨,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간에요. 내겐 다 똑같습니다. 아뇨, 전혀요. 아뇨,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나의 삶, 나의 기쁨은 바로 오늘 당신과 함께 시작될 테니!”
전여빈 배우. <우리 손자 베스트> <여자들> <여배우는 오늘도>에 출연했다. <죄 많은 소녀>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