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파울라> 순박한 표현주의를 추구했던 독일 화가 파울라 모데르존 베커
2017-11-08
글 : 김소미

<파울라>는 순박한 표현주의를 추구했던 독일 화가 파울라 모데르존 베커의 삶을 그린 전기영화다. 정밀성을 요구하는 19세기 말의 독일 화단에서 그의 그림은 투박하고 유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여성은 아이 말고는 그 어떤 창의적인 것도 생산해낼 수 없다”는 괄시가 만연하던 시대, 화가 오토 모데르존(알브레히트 슈흐)과의 결혼 이후 자국 환경에 환멸을 느낀 파울라(카를라 유리)는 시인 릴케의 권유로 파리행을 택한다. 20세기의 도래 앞에서 새로운 예술적 흥분으로 들끓는 파리의 기운은 영화 중반부를 새로운 활력으로 열어젖힌다. 술집에서 로댕을 원망하며 조각을 헐값에 팔아넘기는 카미유 클로델을 만나거나, 1890년대 후반에 급부상하기 시작한 세잔의 그림을 처음 접하는 순간 등 파울라의 시선으로 마주치는 당대 예술계의 풍경 또한 소소한 재미다. 이처럼 <파울라>는 지나치게 비장하고 낭만적으로 예술가의 초상을 그리는 대신 파울라의 그림처럼 격의 없는 태도로 인물 묘사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다만 많은 전기영화들이 그랬듯 뛰어난 예술가의 삶에서 주변 인물과의 로맨스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은 여전히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다. 여기엔 남성의 경제적 지원 없이는 여성 홀로 도저히 자립할 수 없는 시대의 견고한 벽이 놓여 있기도 하다. <파울라>에는 가장 자유롭다는 파리에서도 여성의 굴레 안에서 탈진하고 마는 인물들이 종종 등장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파울라 모데르존 베커라는 역사적 존재 너머에 감춰진 당대의 또 다른 여성 예술가들이 더욱 궁금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파울라를 연기한 신예 카를라 유리가 아이처럼 무해한 예측 불허의 에너지를 내뿜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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