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채비> 특별한 모자가 그려낸 분주한 이별 준비
2017-11-08
글 : 김보연 (객원기자)

길거리에서 작은 매점을 운영하는 애순(고두심)은 서른살 난 발달장애인 아들 인규(김성균)와 함께 어렵게 살고 있다. 인규의 엉뚱한 말과 행동 때문에 때로 곤란해질 때도 있지만 애순은 인규를 지극한 사랑으로 보살핀다. 그러나 요즘 몸이 이상하다는 걸 느낀 애순은 병원에서 뇌종양 3기 진단을 받는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애순은 슬픔 속에서 아들을 떠날 채비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들 인규 역시 영문도 모른 채 어머니 없이 살아갈 날을 열심히 준비한다.

조영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채비>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어느 어머니의 지극한 모성애와 그런 어머니의 사랑을 뒤늦게 깨닫는 아들의 슬픔을 그린 작품이다. 줄거리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채비>는 그리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은 아니다. 특히 전반부에서 계속 반복하는 상황들- 사고를 치는 아들 때문에 마음 졸이는 어머니, 아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어머니, 어머니의 진심을 모른 채 이기적인 행동을 보이는 아들-은 순간의 감동을 위해 캐릭터를 도구적으로 이용한다는 인상까지 주며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의 몇몇 장면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감독은 후반부로 접어들며 전반부의 자극적인 에피소드를 가능한 한 배제한 채 사랑하는 사람과의 갑작스러운 작별을 받아들이려는 이들의 슬픈 노력을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포착한다. 여기에 고두심, 김성균 배우의 절제된 연기까지 더해 보다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유의미한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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