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메소드> 방은진 감독, "가진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썼다"
2017-11-09
글 : 이화정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아이언맨이 된 것 같더라.” 방은진 감독은 <메소드>의 제작과정을 이렇게 돌아본다. “내일이면 엎어질 것 같던 영화가 어디서 팔이 하나 나타나 붙고, 다리가 하나 나타나 붙어 이렇게 완성됐다.” <메소드>는 영화감독에게 제작기회를 주는 채널CGV의 오리지널 무비 프로젝트 ‘이매진 무비’ (YMAGINE MOVIE)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첫 번째 작품이다. 연극 <언체인>에 참여한 메소드 연기로 정평난 배우 재하(박성웅)와 아이돌 스타 영우(오승훈)의 교감을 그린 작품. 베테랑 연기자와 연기를 막 알아가는 신인배우가 전개하는 배역의 몰입이, 곧 실제와 연기를 구별할 수 없는 혼돈과 파격의 사랑으로 변모해나간다. 제동을 걸 수 없는 치명적인 사랑을 통해 방은진 감독은 연기에 대한 원론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정이 일으키는 미묘한 지점을 탐구한다. <집으로 가는 길> 이후 내놓은 4년 만의 연출작이자 네 번째 장편영화다.

-<집으로 가는 길>(2013) 이후 오랜만의 차기작이다. <용의자X>(2012) 이후 바로 차기작을 만든 것에 비추어보면 이번은 준비기간이 꽤 길었다.

=2014년에 촬영 들어가려던 작품이 있었다. 까막눈 할머니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내용으로 <수퍼초딩 김을분>(가제)이라는 제목으로, 나문희 선생님이 출연하려던 가족영화였다. 세월호 이야기를 빗대어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제작 상황, 투자 문제 등으로 촬영할 초등학교 세팅까지 하다가 엎어졌다.

-전작의 흥행이 저조했던 것도 투자에 영향을 미치던가.

=사실 가족영화 시장 자체가 거의 전무해진 상황이기도 했다. 꾸렸던 팀을 해체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부터 가열차게 시나리오 두편을 새로 쓰고 있었다. 하루는 변영주 감독이 그러더라. “왜 안 된 줄 알아? 국정농단 블랙리스트 당사자잖아. 그러니 제작이 들어갈 수 있겠어.” 지금 와서 보면 그 말이 이해가 간다. 가끔 해외에 나가면 “감독님 안녕하세요” 하면서 “그 외교관 많이 야단치신 분” 이러면서 웃고 그랬다. <집으로 가는 길>을 통해 재외국민의 처우, 외교부의 슈퍼갑질 같은 문제점을 짚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억울하게 해외 수감을 한 송정연(전도연)은 결국 ‘마약 운반하다 적발된 아줌마’라는 소리를 피할 수 없었다. 제작비는 60억원이 넘는 큰 규모였지만 해외 로케이션을 진행하며 가장 불편하게 찍은 영화였다. 내 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못 맞춘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영화가 끝나고 후유증이 컸다. 마침 이번에 파업 중인 KBS에서 <집으로 가는 길>이 상영하더라. 정말 격세지감을 느꼈다.

-<메소드>는 채널CGV에서 제작하는 ‘이매진 무비’의 첫번째 주자다.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이 영화 배급에 참여한 정상진 엣나인필름 대표에게 연락이 왔다. 이런 프로젝트가 있는데 같이 해보자고. 그래서 그럼 먼저 ‘기획·개발비 좀 줘봐라’고 했다. 다음날 오전 10시58분에 입금이 되더라. (웃음) 전작을 준비할 때 제작사 ‘모베터필름’을 꾸리고 있었고, 영화가 엎어지면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정상진 대표에게 “나를 살렸다”고 했다. 그길로 정상진 대표가 여기저기 방은진 감독 캐스팅했다고 말하고 다니더라. (웃음) 3월부터 본격적으로 준비에 들어가 이렇게 개봉까지 하게 됐다.

-원래는 영화 속 재하와 영우가 연습하고 무대에 올리는 연극인 <언체인>이라는 연극 연출로 의뢰를 먼저 받은 걸로 알고 있다.

=연극 제작사 대표가 내 제자였는데, 대본을 주면서 연극 연출을 해달라고 하더라. 연극 연출은 못하겠던데 이걸 스크린으로 옮겨오면 재밌겠다 싶더라. 김태용 감독의 <만추>(2010) 각색을 하고 멜로를 주로 써 온 민예지 작가가 합류했는데, 민예지 작가가 그때 딱 결혼을 하고 아프리카로 긴 신혼여행을 떠났다. <시선 1318>(2007), <신촌좀비만화>(2014) 등에서 김태용 감독과 쭉 작업해온 식구라 밀착형 작업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서는 우리 집에서 숙식하면서 시나리오를 썼다. 그런데 우리 둘 다 상업영화에 익숙해서 그런지 초고를 끝내니 40회차 분량이 나오더라. (웃음) 한달 동안 대본 줄이는 작업을 했다. 예산에 맞게 시나리오를 고치면서, ‘내가 지금 뭐 하나’ 싶은 마음도 들더라.

-올해 3월에 착수하고, 10월에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상영작으로 초청 상영되고, 곧장 개봉까지. 장편 프로젝트로 볼 때 빠르게 진행됐다.

=빨리 찍는 데는 자신이 있었는데 막상 해놓고보니 기적이더라. 18회차 만에 촬영을 마쳤다. 지난해 12월에 프로젝트 이야기를 듣고, 1월 초에 한장짜리 시놉시스가 나왔다. 대본도 없는 상황에서 키스탭을 먼저 꾸렸다. (웃음) 캐스팅고가 5월1일에 나오고, 그즈음 박성웅 배우를 캐스팅했다. 상대역인 오승훈 배우는 오디션으로 촬영 3일 전에 캐스팅했다. 정말 3일 전에 했다! 헌팅도 시나리오 없이 시작했다. 키스탭 꾸릴 때도 “프리 프로덕션 기간을 2주밖에 못 준다”고 하니 거의 다들 도망가더라. (웃음) 이내경 미술감독이 고생이 많았다. 모든 결정의 순간마다 고민의 시간이 너무 짧았고,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늘 ‘하루만 고민해볼게’ 정도로 타협했다. 촬영 때 핸드헬드를 많이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핸드헬드를 써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애초 프로젝트 컨셉은 ‘핑크영화’였는데 지금은 15세 관람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재하와 영우의 사랑도 파격적인 컨셉과 달리 직접적인 성애 묘사는 거의 없다.

=처음 기획은 핑크영화 두편을, 나와 유지태 감독이 만드는 거였다. 그런데 중간에 유지태 감독이 사정상 빠졌고, 핑크영화 컨셉도 마찬가지로 바뀌었다. 원래 노출 수위로만 보면 처음엔 굉장히 셌는데, 중간에 톤을 조금 바꾸었다. 특별히 제작사의 가이드가 있었던 건 아니고, 나 스스로의 자각이었다. 연극 제목인 <언체인>을 제목으로 해 5월까지 쭉 진행하다 너무 제목이 연극적이다 싶어 바꾸었다. 배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싶어졌고, 제목도 <메소드>로 바꾸었다. 연기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을 두다보니 자연스럽게 수위도 조절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미스터리 스릴러적인 베이스의 멜로영화로 완성됐는데.

=서스펜스가 좀더 강해졌다. 작가도 쓰면서 그러더라. “감독님 원래 하시려던 시나리오가 이거였어요? 완전 스릴러네요”라고, 변화된 지점을 짚어주더라. 처음에는 두 배우의 심리에 중점을 뒀는데, 그러다보니 사건을 전개하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다. 사건을 중심에 두고 뜨겁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원했고 그러다보니 지금의 형태가 나온 것 같다.

-2005년 <오로라 공주>로 데뷔하면서, ‘배우’의 정체성을 지워왔다. 네 번째 장편에서 배우의 탐구 지점인 ‘메소드 연기’를 소재로 꺼내든 이유가 궁금하다.

=배우 생활을 하면서 나한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가 우타 하겐이었다. 배우이자 연기를 가르치는 그가 보여주는 산 연기가 나한테 큰 귀감이 되더라.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그 밖에 여러 극작가들의 작품을 대담하게 연출해 20세기 아방가르드 연극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던 영국 연출가 피터 브룩도 마찬가지다. <메소드>에서는 <열린 문>의 구절을 언급하지만 그의 또 다른 작품인 <빈 공간>도 마찬가지로 큰 영향을 줬다. 비록 먼저 제안받아서 개발한 이야기지만 이번에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 책들을 다시 꺼내보는 묘미가 컸다.

-메소드 연기에 천착하다 실제와 무대가 헷갈리는 배우들. 그리고 직접 그 연극을 재연해야 하는 연기였다. 캐스팅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오로라 공주>의 엄정화, <용의자X>의 류승범 등에서 보았듯이 이번 캐스팅도 의외의 지점이 엿보인다. 거친 악역 이미지 대신 섬세한 내면을 가진 배우의 역할을 한 박성웅의 이미지도 달라 보였고, 오승훈이라는 신인배우의 캐스팅도 도전이었다.

=배우 출신 감독으로서 기존 배우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워낙 발달되어 있다. 그 배우들의 뿌리를 보려고 한다. 내가 연기할 때 소신이 ‘내 안에 수천만명의 내가 있어’라는 생각을 하면서 연기했으니 다른 배우도 그럴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 역시 나와 다르지 않을 거야, 라는 생각에 지금 그 배우가 어떤 상황이고 어떤 도전을 하고 있는지 지켜보게 된다. 물론 그렇게 다른 이미지로 캐스팅하려면 소속사와 좀 싸워야 한다. (웃음) 신인인 오승훈 배우에게 큰 역을 주었다. 상업영화였다면 선뜻 하지 못했을 캐스팅이 이 진영에서는 가능했다는 점에서도 이번 작업의 의미가 더해지는 것 같다. 오승훈이 따라오지 못했다면 이 프로젝트가 불가능했을 거고 그래서 걱정도 많았는데, 정말 잘해주었다. 오승훈이 그렇게 잘해준 데는 박성웅 배우의 도움도 컸다.

-무대 밖에서 사랑에 빠져 스캔들을 일으킨 재하와 영우가, 무대에서 월터와 싱어가 되어 혼돈스러운 상황을 연출하는 연극 장면은, 이 영화의 분위기를 압축하는 중요한 장면이었다.

=촬영기법에 신경을 많이 썼다. 카메라를 묘하게 좌우로 흔들면서 찍었다. 처음엔 연극이니 좀 객관적으로 보는 방향을 설정했는데, 김형석 촬영감독이 그러면 관객에게 감정이 잘 전달되지 않고 분리될 것 같다고 의견을 주었다. 좌우로 흔들리는 카메라워크가 그런 면에서 재하와 영우가 감정적인 줄다리기를 하는 데 굉장히 큰 역할을 했다. 영화를 보면 그전에는 클로즈업 컷이 거의 없는데 일부러 연극 무대에서 클로즈업을 통해 긴장감을 극대화하려고 아껴뒀었다. 끊임없이 자극주는 방식을 고민하고 장면을 설계했다. 오는 12월에 이 무대를 진짜 연극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 연출과 배우는 모두 바뀐다.

-저예산 프로덕션을 경험해봤는데, 어떤 점이 가장 걸림돌이 되던가.

=소위 말하는 상업영화에 있는 완충지대가 없더라. 상업영화를 만들면 감독 편집본이 나오고 이후 파이널 전에 블라인드 시사도 하면서 영화를 객관적으로 점검하게 되는데, 이번엔 제작사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걸 모두 내 판단으로 하다보니 고통스럽더라. 영화를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이 ‘재하와 영우의 키스 신이 너무 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1초만 줄일까, 늘릴까 이런 것도 혼자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조감독한테 “나 편집실 다시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감독님 어차피 이 영화는 불편한 영화고, 불편함이 없는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라는 답변을 주더라. 감독으로 이런 질문을 했던 게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부산국제영화제 가기 전에 정말 이런저런 생각에 고통의 시간을 보냈는데, 영화가 공개되고 박성웅 배우를 비롯해 다들 환호를 해주어서 일단은 안심했다. 아직은 개봉 관객도 안 만났고 불안감은 물론 크다.

-네 번째 장편을 연출했다. 지난 작품들을 보면 항상 ‘여성감독’, ‘배우 출신 감독’이라는 수식어에서 벗어난 길을 택해 왔다.

=상업영화 입봉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데뷔를 포기할까 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버텨왔고, 그때 경험했던 필사의 노력들이 이후 작품들에 영향을 끼쳤다. 나한테 따라올 수 있는 편견의 수식들에서 벗어나려 했다. 여성감독이라는 문제도 그렇다. 나도 벗어나고 싶지만 여성감독은 이 시장에서 여성감독이다. 한국영화계에서 세편 이상 장편을 만든 여성감독이 나를 비롯해 임순례, 홍지영 감독 정도밖에 없더라. 굳이 여성감독이란 타이틀을 벗을 생각은 없지만 다만 함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여성감독이라고 여성의 심리를 잘 알 거라는 짐작은 착각이다. 남성인지 여성인지, 누가 만든 영화인지 그런 것들이 지워지는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 ‘여성’이 투자 결정에 영향은 있을 수 있지만, 어떤 이야기를 투자할지 결정하는 잣대로 작용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지금 시점에서는 주로 어떤 이야기들을 고민하고 있나.

=보편타당한 이야기를 찾아서 개발하려 한다. 처음 영화를 할 때부터 그랬다. 소소한 이야기, 현미경을 들이대고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걸 지루해한다. 너무 자전적인 이야기나 너무 일상에서 확장된 이야기는 나 스스로 영화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여지지가 않더라. 영화는 남의 돈을 많이 들여 만드는 작업이고, 그런 면에서 대중에게 어필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가운데에도 감독의 색깔이 보일 수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가 있나.

=많다. 어떤 걸 먼저 만들어야 할지 몰라 유보 중이다. 지금은 정말 도저히 못하겠고 조금만 쉬고 싶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내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다 쓴 것 같다. 지금 심정은 센 불에 올라간 양은 냄비가 된 기분이다. 감독이자 제작사 대표로 마케팅 회의도 하나하나 들어가다보니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개봉의 메커니즘을 깨닫게 되더라. 정말 많은 스탭들의 고생 덕분에 이렇게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덧붙여서, 이건 지면이 허락하면 꼭 좀 써달라. (웃음) 강유선 스크립터가 한 역할이 1인5역쯤 됐다. ‘정신없는 감독’을 묵묵히 옆에서 챙겨준 박진성 조감독, 그리고 김성은 PD, 둘밖에 없는 우리 연출부, 또 주례 서주고 제작부장으로 섭외한 이재승 제작부장. 다들 내 가까이에서 너무 고생한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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