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에게도 진심이라는 게 있을까. 적도 아군도 없이 서로를 속고 속이는 영화 <꾼>에서 겉 다르고 속 다른 동상이몽 로맨스를 담당한 커플이 있다. 사기꾼만 골라 속이는 사기꾼 지성(현빈)은 희대의 사기꾼 장두칠을 잡기 위해 사기꾼들의 협력을 빌린다. 각자의 개성과 역할로 판을 짜는 사기꾼 중에서도 단연 이목을 사로잡는 건 빼어난 미모로 상대를 홀리는 춘자(나나)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유혹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그녀에게 떨어진 미션은 잠적한 장두칠의 오른팔 곽승건(박성웅)에게 접근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배우의 타고난 매력이 동반되어야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 역할인데 그런 의미에서 춘자 역을 맡은 배우 나나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캐스팅이다. “춘자는 미모에 굉장한 자신감을 가지고 그걸 무기로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미모로 현혹시키고 빠른 손놀림으로 임무를 완수한다.”
드라마 <굿 와이프>에서 로펌의 조사원 김단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바 있는 나나는 “영화와 드라마 현장이 많이 다르다는 걸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현장”이라고 겸손하게 운을 뗀다. 하지만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이어갈수록 영화 속 춘자처럼 “귀여우면서도 당당한 한편 조금은 수줍기도 한” 다양한 표정들을 보여줬다. “<굿 와이프> 끝날 무렵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전혀 색다른 캐릭터라는 점이 마음이 끌렸다. 김단이 감정을 절제하는 프로페셔널이라면 춘자는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발랄함이 있다. 그런데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조차 일종의 연기라는 이중적인 지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사기꾼이지만 나름대로는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다.” 나나 배우는 무엇보다 이번 영화에 출연을 결심한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이었다고 밝혔다.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할 수 있다고 해서 기쁘면서도 긴장됐다. 그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춘자가 유혹해야 할 대상은 장두칠과 유일하게 선이 닿아 있는 곽승건이다. 겉보기에는 건실한 사업가지만 실상은 수백억원대의 사기를 실행하는 범죄자다. 동시에 이번 영화에서 가장 순수해 보이는 아이러니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박성웅의 표현을 빌리자면 “돈세탁을 하지만 여자를 존중할 줄 아는 순수 마초”인데 “유혹에 거침없이 넘어갈 것 같지만 의외로 철벽을 치는 부분이 있는” 복잡다단한 일면이 있다. 철두철미한 사기꾼의 얼굴과 순박해 보일 정도로 숫기 없는 남자의 얼굴을 동시에 연기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했을 것 같지만 의외로 박성웅 배우는 그래서 연기하기가 한결 편했다고 고백했다. “굳이 두 가지를 하나의 톤으로 연결시키려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시나리오가 워낙 짜임새 있다. 완전 다른 모습들을 하나로 묶는 건 감독의 몫이고 그 부분에 대해선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덕분에 주어진 장면에만 집중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거대한 사기의 판에서 곽승건과 춘자는 기묘한 로맨스를 꽃피운다.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되 슬쩍 내비치는 얼굴들은 사기꾼의 계획된 표정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반응에 가깝다. 이런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필수적이었던 건 무엇보다 박성웅과 나나의 호흡이었다. 박성웅 배우가 먼저 “나나는 영화가 처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발력이 좋다. 촬영 전에는 긴장하는 것 같다가도 카메라가 돌아가면 애드리브도 자연스럽게 받아친다. 귀엽고 당돌한, 춘자라는 배역 그 자체”라고 칭찬하자 나나는 손사래치면서도 이내 진중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직 모든게 낯설어서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 촬영현장에선 늘 초긴장 상태였다. 게다가 <신세계>의 이중구(박성웅)와 호흡을 맞춰야 한다고 하니…. (웃음) 그런데 만났을 때부터 내 긴장을 풀어주려고 최선을 다하셨다. 자기를 하고 싶은 대로 막 다루라고. 덕분에 영화의 호흡을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박성웅 배우는 쑥스러워하며 그 공을 “다양한 배우들이 출연하는 만큼 배우들마다 각자 다른 연기를 이끌어낸” 장창원 감독에게 돌렸다. 마지막으로 영화에 대한 소개를 부탁하자 “아무 정보 없이 유쾌하게 보면 통쾌하게 뒤집어질 수 있는 영화”(박성웅)라는 멘트가 끝나자마자 “테트리스 같은 영화입니다. 끼워 맞추는 재미가 쏠쏠하고 마지막에 다 끼워 맞춰졌을 때 통쾌함을 느낄 수 있을 것”(나나)이라고 이어받는다. 이 동상이몽 커플의 케미스트리, 심상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