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라 여기는 영화가 이마무라 쇼헤이의 <나라야마 부시코>,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이다.” 이승원 감독에게 파격적이고 도발적이며 충격적이기까지 한 작품의 원동력을 묻자 두 영화를 예로 들었다.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연출자의 세계를 전개하는 이들 작품은 지금 영화계에서 어쩌면 멸종된 정서에 가까운 영화일 것이다. ‘이승원 감독전: 폐허의 골격 <소통과 거짓말>+<해피뻐스데이>’에서 소개되는 두 영화가 가닿는 지점이 감독이 언급한 작품들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소통과 거짓말>(2015)은 비극적 사고로 아이를 잃은 한 엄마와, 마찬가지로 아내를 잃은 한 남자가 만나 펼치는 ‘감각의 실험’이다. 장선은 짐작할 수조차 없는 아픔을 육체적 피학으로 견뎌내는, 그러지 않고서는 숨쉬고 살 수 조차 없는 여성 장선을 연기한다. 학원 원장과 슈퍼마켓 주인으로 1인2역을 하는 김선영은 장선의 그 기이한 행동을 지켜보고 윽박지르는 이 사회의 시선으로, 극의 공기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승원 감독과 부부이기도 한 김선영은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연출작 <해피뻐스데이>(2017)에 이르러 장애로 숨어사는 큰아들을 안락사시키는 가족의 모의에 함께하는 며느리를 연기한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복잡한 관계로 얽힌 가족 구성원 안에서 며느리는 홀로 고군분투한다. <소통과 거짓말>에서 ‘괴물’ 같은 연기를 보여준 장선은, 이번엔 셋째아들의 여자친구이자 게임중독자로 이 설명 불가능한 가족에 가해지는 외부자의 시선을 보여준다. 지금껏 한번도 보지 못했던 파격의 연출이자, 논란의 여지가 다분한 전개다. 김선영, 장선 두 배우는 놀라운 캐릭터 소화력으로 이승원 감독의 문제적 장면들을 소화해낸다. 이해와 소통보다 의문과 논란이 앞설 두 작품을 통해 이승원 감독과 두 배우는 영화적 소통을 지속해오고 있다. 설정과 전개만으로도 볼 때 지금의 ‘소프트’한 영화시장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든 작품을 고집하며 그들이 꿈꾸고 만들고자 하는 ‘익스트림한’ 영화는 어떤 것일까. 세 협업자와의 속깊은 대화를 통해, 아마 이 짧은 지면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할 영화에 한발 다가가본다.
-<소통과 거짓말>이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호평받으며 아시아진흥기구(NETPAC)상을 수상하고 이후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에서도 주목받은 것에 비하면, 개봉이 한참 늦었다. 결국 두 번째 장편 <해피뻐스데이>와 함께 감독전 이름하에 같은 날 개봉하는데, 영화의 파격적인 지점들이 대중에 다가서기 힘든 측면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이승원_ 독립영화 개봉은 지원사업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아니면 힘드니까. 다른 영화들도 그 절차를 따르고 있고 그렇게 우리 영화도 가겠거니 했는데, 사실 세번이나 배급지원에서 떨어졌다. 세번 떨어지니 좀 힘든 마음이 들더라.
=김선영_ 남녀 성기가 다 나오고 그러는데 개봉 허가가 쉬웠겠나.
이승원_ 내가 만들면 쉽게 통용될 수 있을 거라는 무의식적인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따져보면 내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점도 많았다. 영화제에서 상영하고 일정 호응을 얻었다고 해서 모든 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건 아니더라.
김선영_ <소통과 거짓말> 제작비 400만원에는 내 돈도 조금 들어갔다. 진짜 찍고 싶은 대로 한번만 찍어보고 싶다고, 도움을 달라고 하더라. 시나리오 보자마자 내가 이렇게 말했다. ‘하겠다는 여배우 있으면 하라’고. 이거 할 배우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 한 말이었다. (웃음)
노출이 있으면 문제가 노출로 귀결되는 현실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장선 배우가 좋은 연기를 보여줬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올해의 배우상(장선)을 받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캐스팅까지 어떤 과정이 따랐나. 많은 배우들에게 제안하고 거절당한 시나리오인데, 김선영 배우에게 제안은 없었나.
김선영_ 내가 29살이었으면 했을 것 같다. 이승원 감독이 몇년 전 건대 앞에서 한 백인 남자가 술에 만취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영어로 한번만 같이 섹스를 해달라고 청하고 있는 장면에서 모티브를 얻어 영화가 시작됐는데, 착상부터 영화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나도 그사이 장선 역할을 연기하기에는 나이를 많이 먹었다. (웃음)
이승원_ 김선영은 내가 늘 1순위로 염두에 두는 배우이고 제일 먼저 시나리오를 보여주는 배우다. 처음엔 이 역할도 김선영을 염두에 두었다. 그런데 다 쓰고 보니 김선영이 전면에 나서서 하는 것보다 주변 인물로 이 영화의 어떤 분위기를 채워줬으면 좋겠다는, 그런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 마침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하면서 본인도 갑자기 바빠진 시기였고.
김선영_ 장선 배우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진행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감독이 믿고 확신하는 배우가 모두 시나리오를 거절한 상태였다. 다른 이유보다 중요한 게 노출 여부였다. 노출 문제는 그만큼 여배우한테 리스크로 작용한다. ‘김선영 옷 다 벗었다. 성기 보인다’라고 하면 그게 이슈가 될 수 있다. 왜 노출을 했는지가 아니라 노출만이 이슈가 되고 그것만이 전면에 남아버리는 게 안타깝다. 배우로서는 이런 것만 이슈가 되는 게 너무 재미없는 일이다.
이승원_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면 출연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자기 일로 닥치면 아니더라. 거절을 많이 당했는데, 하겠다는 배우가 나타났고 그래서 시나리오를 전개했다. 그런데 그 배우의 입장에서는 노출을 떠나 장선이라는 캐릭터가 하는 행동이 아예 받아들여지지가 않더라. (장)선이 같은 배우는 그게 먼저 받아들여져서 가능했다. 성기에 국자, 젓가락을 넣는 이상한 여자의 행동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역할이었다.
김선영_ 배우들은 더 말이 안 되는 막장 드라마도 자신을 설득하면서 한다. 그런데 노출이 있으면 문제가 노출로 귀결된다. 노출이 일상적인 일이라면,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장애 요소가 되지 않을 거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노출 문제는, 대다수의 배우를 지배하는 판단의 잣대가 된다.
-장선 배우의 캐스팅 과정은 어땠나. 사실 감독님과 연극 <사랑한다면 이들처럼>(2012)으로 인연을 맺었고, 연극 작업을 주로 하다가 장편영화는 <소통과 거짓말>이 첫 도전이었다.
김선영_ 나보다 어린 배우에게 ‘존경한다’는 말을 처음 했다. 아이를 잃은 엄마가 걸어가는 장면이 첫촬영이었는데, 깜짝 놀랐다. 그 장면을 현장에서 보는데 눈물이 나더라. 스탭이 없던 때라 내가 마실 물을 들고 가 있었다. 울면서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영화와 또 다른 영화가 나오겠구나 싶었다. <소통과 거짓말>은 장선이 만든 영화다.
=장선_ 감독님이 전화해서 영화를 하나 찍자고 하셨다. ‘이런 영화를 찍을 거야’ 하시면서 언급한 작품이 <밀양> <님포매니악> <어둠 속의 댄서>였다. 바로 ‘그렇다면 전 안 될 거 같아요’라고 말씀드렸다. (웃음) 슬럼프에 빠져 연기를 그만둘 결심을 하던 때였는데, 읽어만 보라고 하시더라. 새벽에 시나리오를 받아 읽고 아침에 바로 문자를 보냈다. ‘잘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는데 많이 도와주세요.’ 그길로 일주일 만에 촬영 날짜 잡히고, 5회차 촬영을 마쳤다. 참 웃긴 게 그렇게 연기에 자신이 없어서 그만둘 생각을 할 때였는데, 시나리오를 보니 너무 하고 싶더라.
이승원_ 그전에 하도 거절을 당한 터였는데, 안 하더라도 이 친구는 시나리오를 어떻게 볼까 궁금했다. 그런데 오케이 문자가 온 거다.
김선영_ 그 아침이 지금도 생각난다. 뭐라고? 한다고? 감독님이 문자를 읽어주는데 침대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장선_ 노출에 대한 부분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를 잃고 피폐해져가는 여자의 마음을 내가 표현할 수 있을까, 그게 나한테는 가장 큰 걱정이었다. 그걸 말하는 데 있어서 노출 없이는 이 여자를 설명할 수가 없다. 정말 필요한 행동이었고, 만약 조금이라도 ‘이 영화에 노출이 왜 필요하지’라는 의심이 들었다면 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영화를 하면서 또 하나는, 김선영 배우와 함께한다는 흥분이었다. 연극 하실 때부터 엄청난 팬이라서, 무대 뒤에 가도 인사를 못하고 숨어 있었다. 너무 좋고 떨렸다.
김선영_ 장선은 특별한 배우다. 배우로서 기본기,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배울 수 없는, 타고나야 하는 것들이 있다. 이 친구에겐 그 특별함, ‘똘기’가 있다. 배우를 족히 100여명은 가르쳐봤고 현장에서도 많은 배우를 만나지만, 장선처럼 보석 같은 배우는 처음이다. 장선의 특별함에 대해서만 3박4일은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게, 실현되지 않을 것 같았던 첫 장편을 하게 됐는데, 시행착오도 컸겠다. 흑백, 1:1 화면, 핸드헬드 등 이 영화가 택한 형식이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구축하는 연출방식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제작여건을 고려한 선택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승원_ “흑백에 음악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1:1 비율로만 찍을 거다.” 김상수 PD한테 계획을 말했더니, 대뜸 “그러면 가능하겠네” 하더라. 난 그전까지 공연만 하던 사람이고 영화 현장 경험도 없었다. 배우들과 함께 공연 만들던 생각만 했으니 사실 영화 찍기를 만만하게 본 것도 있는 것 같다. 사이즈를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생각대로 말한 건데, PD 입장에서는 이게 돈 안 드는 경제적인 선택이라고 본 거다. (웃음) 그렇게 시작됐다.
김선영이 할 수 있는 것, 장선이 할 수 있는 것
-영화의 시작을 여는 10분여의 롱테이크 장면. 학원 원장(김선영)이 학원 남자들과 이상한 섹스를 한다는 소문이 도는 직원 장선(장선)을 다그치는 장면이 가진 파워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연출력과 김선영이라는 배우의 흡인력 있는 연기, 반응숏은 보이지 않는데도 시종 뒷모습에서 그 사람을 연기하는 장선의 연기 합이 불러일으킨 마술 같은 장면이었다.
이승원_ 이 장면의 대사 분량이 영화 전체 대사의 1/3이었다. 배우들이 전하고자 하는 것이 관객에게 온전히 전해지는 것에 신경을 다했다. 김선영이라는 배우의 역량을 믿었기 때문에 이 장면의 설계가 가능했다.
김선영_ 다시 말하지만 장선이 정말 다 했다. 원래 대본에는 내가 장선을 향해, 버럭 소리지르는 게 없다. 나는 동물적으로 받아치는 스타일인데. 얘가 완전히 캐릭터에 빙의되어서 왔는지, 말 그대로 ‘미친’ 연기를 하더라. 나만 그 연기를 본 게 아깝다. 그 장면 가지고 내 연기가 좋다고들 하는데, 나는 정말 반응만 한 거지 내가 한 게 뭐가 있나 싶다.
장선_ 감독님이 “장면이 굉장히 길어서 웬만하면 한번만 가고 싶다. 이상해도 이거 쓸 거다” 하셨다. 그래서 잔뜩 부담을 안고 출발했는데 오히려 롱테이크로 가니까 그 상황에 같이 묻어가면서 몰입하게 되더라.
이승원_ 롱테이크 장면 찍을 때마다 그 이야기를 했다. 한번만 찍을 거라고. 롱테이크로 갈 경우 간혹 첫 테이크보다 더 좋은 게 나올 수도 있지만, 나는 처음 한게 가장 좋다는 믿음이 있다. 한번 맛보았던 감정을 반복적으로 느낄수 없고, 긴 장면이라 수십번 가는 것도 힘들다. 배우들에게는 한번만 간다는 요구가 부담이 될 수 있지만, 그래서 순간적인 집중력은 더 생길 수 있다고 본다. 게다가 나에겐 롱테이크가 잘 사는 연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테이크가 길지 않으면, 잘개 쪼개서 180도 다 찍으면 된다. 영화적 기법을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배우의 연기가 쪼개지지 않을 때 발생되는 것이 있고, 그게 영화의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해피뻐스데이>는 원래 <소통과 거짓말>보다 먼저 찍으려고 계획했던 작품인데 제작이 쉽지 않아, 결과적으로 연극으로 먼저 올리고 영화로는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 됐다. 첫 작품의 10배(4천만원)의 제작비에, 인물 구성도 다양하다. <소통과 거짓말>의 미니멀한 세팅과 달리 고려해야 할 상황이 많았던 현장이었는데.
이승원_ <소통과 거짓말>을 찍을 때는 마술에 걸린 것처럼 자연스럽게 잘 풀리니까 나 스스로 그 상황에 취해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 촬영날도 감정적, 감성적이었다. 김 선생 역을 한 김권후 배우가 마지막 장면에 몰두하기 위해 3주 전부터 먹지를 않았는데, 마침 뙤약볕 아래서 찍는 촬영이라 저러다 쓰러지겠네 싶을 정도였다. 연극만 해도 한두달 연습을 하는데, 그 에너지를 5일 만에 뭉쳐서 내는 연기였다. 나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고, 마지막 디렉션은 눈물이 나서 주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해피뻐스데이> 때는 현실적으로 변하더라. 첫 작품에서는 감독도 아닌데 영화를 한번 찍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갔다면, 이제는 제대로 된 감독의 입장에서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다. 마술도 없었고,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런데 오히려 스탭들은 내가 <소통과 거짓말> 때 느꼈던 감정을 맛보았다고 이야기를 해주더라. 이번 참여가 의미 있게 다가왔다고 말해주는 거다. 이 열악한 환경에서 묵묵하게 일한 게 이런 마음이었구나. 영화가 잘 나오고 못 나오고를 떠나서 이거면 나도 족하다 하고 생각했다.
-김선영 배우는 <소통과 거짓말> 때는 학원원장과 슈퍼마켓 주인으로 1인2역을 하면서 인물이 처한 배경을 설명해줬었다. <해피뻐스데이>는 ‘괴물’같은 아들을 죽이려는 모의에 가담한 며느리 역을 맡았는데, 이상한 구성원들 사이에서 가장 평범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승원 감독의 ‘이상한 캐릭터’들 사이에서 늘 평범한 역할을 얻게 되는데.
김선영_ 나도 <소통과 거짓말>의 장선처럼 좀 그런 캐릭터를 주지, 하는 생각도 있다. (웃음) 이승원 감독이 워낙 센 캐릭터를 쓰는 작가이자 배우의 개성을 살리는 데 기가 막힌 연출가라는 점에서는, 내 역할이 좀 재미가 덜하긴 하다. 하지만 영화 전체에서는 중요한 역할이다. <해피뻐스데이>에서 며느리도 이 이상한 가족 사이에서 평범한 일반 관객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이다. 사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선우 엄마’로 다소 코믹하고 개성 있는 이미지를 메이킹해왔지만, 연극에서는 오랫동안 내 역할이 주로 지금과 비슷했다.
이승원_ <응답하라 1988>로 떠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으니 김선영이 나한테는 굉장히 큰 무기다. 어떻게든 좋게 ‘써먹고’ 싶은 마음이 있다. (웃음) 사실 <해피뻐스데이>의 며느리 같은 배역이 중요한 역할을 해줘야 한다. 다른 인물들이 명확히 캐릭터화되어 갈 때 며느리는 더 깊이 있는 연기로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안 그러면 이도저도 아닌 게 되어버린다. 김선영 배우는 가족이자 동료로 가장 길고 깊게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다. 그래서 다른 배우에게 맡기기 힘든 역할은 항상 김선영 배우에게 부탁한다.
김선영_ 크게 선호하지는 않지만, 늘 나한테 맡기는 거다. (웃음)
-<소통과 거짓말>의 장선의 연기를 본 사람들이라면 <해피뻐스데이>의 게임광 정복이가 같은 인물이라는 데 충격을 느낄 수도 있을 거다. 한 배우의 스펙트럼이 각각의 작품에서 얼마나 넓어질 수 있는지 새삼 절감하게 되는 연기이자 배우 디렉팅이었다.
장선_ 감독님이 여자배우로서 만나기 힘든 역할을 많이 쓴다. 셋째아들의 여자친구로 이 집에 들른 정복이는 이 가족에게 희한한 존재이자 정복이가 이 가족을 관조하면서 즐기기도 하는 여성이다.
이승원_ <소통과 거짓말> 때는 인물에 대해서 특별히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그 연기는 디테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진행하는 거였다. 그런데 정복이 같은 경우는 좀 캐릭터적인 인물이 나와줘야 했다. 다른 배우들에게는 스타일 이야기를 별로 안 했는데, 정복의 경우는 입고 있는 속옷까지도 디테일하게 의논했다. 집안을 잘 아는 며느리 입장과 정반대에서, 말도 안 되는 이 집에 하룻동안 들어와서, 더 큰 흙탕물을 일으키는 정복이란 여성도 중요했다. 며느리와 정복이의 배치와 거기서 오는 시너지가 영화의 전체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센 캐릭터인데, 그렇다고 에너지를 표출하는 데 능한 배우가 하면 자칫 과장된 캐릭터에 그치고 말았을 거다. 좀더 깊은 감정을 가진 배우가 본인 스스로와 충돌했을 때의 효과를 보고 싶었다.
로버트 알트먼의 제니퍼 제이슨 리
-이 자리에 함께하지 않았지만, <소통과 거짓말>의 김권후 배우 역시 <해피뻐스데이>에 출연한다. 반신불수로, 화면에 잡히지도 않는데 혼신의 연기를 하는 게 느껴진다. 전작에서부터 함께했던 배우들과 계속 유대를 갖는 스타일이다.
이승원_ 함께 고생한 배우들과 최대한 지속적으로 작업하고 싶다. 다른 배우들이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 배우가 제대로 그 인물이 되어주어야 했기에, 내가 믿는 배우에게 역할을 주었다. 영화를 하면서 내가 영향을 많이 받은 감독이 로버트 알트먼이고, 그의 영화들 속 제니퍼 제이슨 리를 제일 좋아한다. 최근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헤이트풀 8>에도 나왔다. 나 역시 두 감독이 보여준 형식의 영화를 지금 하고 싶다. 이야기의 구조에 따라 흘러가는 게 아니라, 이야기는 존재하는데 사람과 사람의 부딪힘으로 흘러가는 영화에 매력을 느낀다. 내가 워낙 인물에 집착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느 장면에서 어떤 인물은 기능적으로 가야 하는데, 항상 이 장면의 주인공은 그 인물이 되어버린다. 지금은 그래도 좀 훈련이 되어가는 것 같다.
김선영_ 영화로는 두 작품을 이승원 감독과 같이 했는데. 모든 걸 다 배제하고 배우로 판단한다면 나는 이승원 작가, 연출가가 쓰는 모든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 이 정도의 입체감 있는 인물을 작품에서 만나고 연기한다는 건 배우로서 굉장히 행복한 일이다. 물론 이승원 감독이 영화를 만들 기회가 자주 없지만, 기회가 있고 작은 역할이라도 주어진다면 무조건 한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눈물이 나려고 한다. 써둔 시나리오 많다. (웃음)
장선_ 두편의 영화 출연이 내겐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감독님이 쓴 인물들은 항상 처음엔 이해가 힘들다가 결국은 왜 그랬는지 깨닫게 된다. 실제로 우리 삶도 누구를 만나면 내 생각이 앞서고 이해가 안 되거나 오해가 생기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나. 소통하기 힘들던 인물들을 이해하게 되는 그런 찰나를 경험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소통과 거짓말> 상영 시관객이 중간에 안 나갔으면 좋겠다.
이승원_ 전주국제영화제 때 <해삐버스데이>의 관객과의 대화(GV)를 하는데, 한 관객이 “왜 이런 소외받는 장애인을 우습게 그렸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하더라. 어떻게 성폭행당한 사람이 아니라 성폭행한 사람을 위로하는 영화를 하느냐고. 성폭행당한 소녀를 의붓딸로 데려와서 키우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 난 그런 사람들도 이렇게 인생을 살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 역시 그런 군상과 다르지 않은데, 왜 우리가 선을 긋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려고 하나. 결코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용서하자는 것이 아니다. 왜 장애인인 큰오빠를 ‘괴물’이라고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괴물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마치 장애인들을 다 괴물이라고 인식하는 걸로 받아들여져서 그게 마음이 아프다. 화장실에서의 여학생 성폭행 장면에 대한 질문도 많다. 이 사회에서 계속 벌어지는 일인데, 그 문제를 숨긴다고 없어질까 하는 마음이 앞섰다. 표현을 통해서 이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
<세 자매>에서 다시 만나요
-세 사람의 협업은 다음 작품에서도 이어지는 건가.
이승원_ 내년에 <세 자매>를 찍으려고 한다. 가족 이야기고, 세 자매가 겪는 일상적인 이야기다. 엄마와 딸, 가족끼리 볼 수 있는 따뜻하고 먹먹한 이야기를 하려한다.
장선_ 감독님이 제안하면 언제든 같이 하고 싶다. 감독님의 연기 코멘트는 몇 마디 안 하셔도 큰 자극이 된다. 배우를 믿어주신다. 네가 이 인물을 잘 아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주신다. 그 믿음이 전해져 배우로 감사하고 행복한 현장이다.
김선영_ 이승원 감독은 세팅을 많이 하지 않는, 상황에 맞춰서 하는 감독이다. 그러니 장선 같은 잘하는 배우가 꼭 필요한 거다. 나야 시켜주면 고맙다. 나는 영화라면, 내가 출연하는 게 한 장면이어도 무조건 한다고 소속사에도 이야기했다. 그만큼 영화가 좋다. 이승원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는 건 순수히 배우로서만 판단할 수 없다. 남편 영화라 메이드되기만 하면 무조건 한다. (웃음) 같은 이유로 내가 빠져야 하면 빠진다. 이 사람이 영화 찍는 게 내겐 가장 중요한 전제다. 물론 남편이라 평소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므로 그만큼 신뢰가 구축된 감독과의 작업은 배우에게 좋은 작업 환경이 된다. 평생 이승원의 작품을 하고 싶다. 그러면 돈을 못 벌겠지만.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