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1973년, 9천만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기의 대결이 열린다
2017-11-15
글 : 송경원

여자 테니스 랭킹 1위 빌리 진 킹(에마 스톤)은 남녀 우승자의 상금이 8배나 차이 난다는 사실에 항의하며 여자테니스협회를 설립, 투어를 시작한다. 한편 은퇴한 남자 테니스 선수 보비 리그스(스티브 카렐)는 무료한 생활을 이어가다 획기적인 이벤트를 기획한다. 남녀 성 대결을 통해 세간의 주목을 되찾겠다는 것. 빌리 진 킹은 처음에는 이를 거절하지만 자신을 대신해 랭킹 1위를 차지한 마거릿 코트가 보비에게 패배하자 대결을 수락한다. 그렇게 1973년, 9천만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기의 대결이 열린다.

남녀 테니스 대결이라는 세기의 이벤트를 메인으로 하지만 경기 자체의 승패에 포커스를 맞추진 않는다. 발레리 페리스, 조너선 데이턴 감독의 관심을 끈 건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으로서의 정치적인 싸움과 성 정체성에 변화를 느끼는 개인적인 싸움을 동시에 진행해야 했던 빌리 진 킹의 부담감이었다. 이후 동성애자임을 밝힌 빌리 진 킹은 미용사 마릴린 바넷(앤드리아 라이즈버러)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깨달아간다. 문제는 여성을 대표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해질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는 보비 리그스도 마찬가지다. 남성우월주의자라는 포지셔닝은 보비에게 겜블러로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역할놀이에 가깝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연기하며 대결을 벌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아이러니한 감정들을 자아낸다. 정확히 같은 이유로, 시대상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인물의 내면에 깊숙이 파고들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다. 분명한 건 화면을 장악하는 에마 스톤, 스티브 카렐의 연기가 사소한 흠결은 덮고도 남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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