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현재를 영화로 만난다. 자국에서 주목받은 신작들이 초청된다. 스웨덴영화제(주최 주한스웨덴대사관, 스웨덴대외홍보처, 스웨덴영화진흥원)가 올해로 6회를 맞았다. 올해는 ‘다르지만 괜찮아-We are family’를 주제로 다민족 공동체, 대안가족, 확대가족에 대한 주제를 담은 작품들을 선보인다. 개막작인 <미나의 선택>은 마약 판매상으로 전락한 미나가 갱단과 경찰의 추격을 피해 컨테이너촌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통해 스웨덴 밑바닥 계층의 피폐함을 그린 영화. 바닥을 치는 생활 한가운데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미나의 선택이 배우 말린 레바논의 절실한 연기에 힘을 얻는다. 안드레아스 외만 감독의 <이터널 섬머>는 입양아인 소녀 엠이 운명의 상대 아이삭을 만나게 되고, 둘이 함께 떠나는 로드무비 형식의 영화. 청춘의 방황과 비극적 최후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와 <델마와 루이스>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각각 다른 두 영화의 배우와 감독을 한자리에서 만나, 지금 스웨덴영화계의 현재에 대해 물었다. 스웨덴영화제는 11월 1일부터 서울 아트하우스 모모, 3일부터 부산 영화의전당, 5일부터 광주의 광주극장에서 각각 1주일간 개최된다.
-양일간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한국 관객과는 첫 만남인데, 영화가 그리는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다른 반응이 있던가.
=안드레아스 외만_ 관객과의 대화에서 문신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이 있었다. 사실 스웨덴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라 딱히 연출 의도는 없었다. 참여하기 전 스웨덴대사관에서 한국 관객이 아주 구체적으로 질문하니까 준비를 많이 하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더라. (웃음) 스웨덴 관객이 스토리 위주로 묻는 것과 달리 장면 하나하나를 세심히 분석해서 질문을 하니 나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미나의 선택> <이터널 섬머> 모두 상업영화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의 영화다. 스웨덴은 독립영화 제작지원 정책이 잘 구축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촬영 과정은 어땠나.
=말린 레바논_ 스웨덴영화진흥원(SFI)에서 영화 제작을 위한 펀딩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미나의 선택> 같은 경우도 제작 과정에서 크게 어렵지는 않았고, 배급 지원도 이루어져 자본금을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상업영화에 출연 중인데, 언제든 독립영화를 선택하는 데 크게 고민하지 않고 참여하게 된다. 독립영화를 만드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다양한 지원제도가 숨통이 되어줄 수 있다.
안드레아스 외만_ 스웨덴은 인구 1천만명의, 워낙 작은 나라니까. 아주 큰돈을 들여 영화를 만드는 건 어렵겠지만 적은 돈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지원은 잘 이루어지고 있다.
-10대들의 일탈을 그린 <이터널 섬머>는 가까운 친구의 죽음이 모티브가 되어 만들어졌다고 들었다. 주로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확장하는 편인가.
안드레아스 외만_ 함께 살던 친구가 갑자기 자살을 했다. 그때 받은 충격이 상당히 컸고, <이터널 섬머>는 그 이야기에서 확장해 스웨덴 청년들의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물론 완전히 내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준비하는 영화는 9살 때 누나를 잃었던 내 경험을 확장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고 있다. 현실과 달리 영화에서는 누나가 살고 내가 죽는 이야기로 전개하고 있다.
-<미나의 선택>에서 마약 판매상에 쫓기는 처지의 미나의 피폐함을 연기해 스웨덴을 대표하는 굴드바게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미나의 움직임을 통해 극 전체를 이끌어나가는 힘든 연기였는데.
말린 레바논_ 미나의 생활, 미나가 겪는 사건들을 이해하기 위해 준비를 많이 했다. 당시는 출산 직후였는데, 아기 낳고 8일 만에 나가서 두달 동안 촬영했다. 임신으로 90kg 가까이 살이 쪘다가, 30kg을 단번에 빼야 해서 애를 많이 먹었다. 거리를 전전하는 미나의 몸의 움직임을 표현해야해서 필요한 과정이었다. 절박한 상황에 몰린 미나의 외형에도 신경을 많이 썼는데, 임플란트한 치아 하나를 반쯤 갈아서 치아가 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했다. 촬영 전에 실제 감옥에서 일주일간 지내기도 했고 마약 판매상이라 주사 놓는 법도 연습을 많이 했다. 고생도 많이 했는데, 촬영한지 한참 돼서 그때 고통은 이제 잊었다. (웃음)
-올해 스웨덴영화제 상영작들을 보면 혈연이 아닌 가족간의 화합에 주목한다.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함께 공존하는 문제는 최근 유럽영화의 주요 화두가 되었다.
말린 레바논_ 최근은 이민자 문제가 주를 이루는데, 여배우의 입장에서 보자면 백인 민족에 대한 차별도 만만치 않다. 러시아 여성은 창녀 역에 타입 캐스팅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다.
안드레아스 외만_ 각 영화로 가면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시리아 문제는 유럽 전 지역의 이슈다. 미국인의 경우는, 완벽해야 하고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울해하는 작품이 많은데 이런 시선 자체가 다른 사회를 배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행 폭로로 할리우드에서 각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스웨덴도 예외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웨덴영화계를 여배우로서 평가하면 어떤가.
말린 레바논_ 왜 그런 일이 없었겠나. 자신의 섹슈얼 판타지로 내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빨리 성공하고 싶으면 ‘Suck a dick’하라(내 성기를 빨아라)” 이런 이야기까지 들었다고! ‘Suck a dick’은 그대로 써달라. 정말 그런 표현을 들으며, 그걸 다 물리치고 헤쳐온 길이다. 하지만 배우로 길게 생명을 이어가려면 흔들려선 안 된다. 그 중심을 가지고 오기까지 힘든 일이 많았다.
안드레아스 외만_ 영화사 100년 동안 여배우를 향한 성희롱은 끊임없이 존재해왔다. 지금 막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하려 하는데, 이 상황을 2∼3년은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짜 변화가 올 수 있게, 이런 일이 다시 없게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스웨덴은 영화 스탭 고용에 있어서 50:50이라는 쿼터가 있다. 감독의 경우도 여성의 비율이 맞춰지고, 스탭도 그에 맞게 평등해진다. 또 여성이 메인 캐릭터인 영화도 많다. 이런 것들도 여성에 대한 성희롱에서 벗어나는 조건이라고 본다.
-두분 모두 스웨덴영화계를 대표하는데, 앞으로 함께 작업할 계획도 있는지.
말린 레바논_ 스웨덴영화계는 워낙 작아서. 파티에서 늘 만나는 사이였기에 같이 작업할 생각은 못했다. (웃음)
안드레아스 외만_ 이번 스웨덴영화제에 함께 초청되고 같이 다니는 동안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됐다. 이제부터 함께할 작업도 생각해봐야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