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쇠약을 겪는 삼수생 진석(강하늘)에게는 여러모로 완벽한 형 유석(김무열)이 있다. 그런 형이 온 가족이 새집으로 이사하던 날 정체 모를 괴한들에게 납치당한다. 19일 만에 무사히 집에 돌아온 형은 어딘가 묘하게 달라졌다. 왼쪽 다리를 절던 그가 오른쪽 다리를 절고, 급기야 멀쩡하게 걷는다. 밤중에 홀로 외출을 하고서 경찰인 줄 알았던 사람들과 은밀히 만나 수상한 대화를 나눈다. 다음날 이에 대해 조심스럽게 묻자 유석은 진석이 꿈을 꾼 거라고 발뺌한다. 심지어 동생이 자는 사이 그에게 몰래 해를 끼치려고도 한다. 그런데 형이 이상해졌다고 주장하는 진석의 말을 듣는 엄마(나영희)도 어딘가 이상하다. 아버지(문성근)는 공포심에 집을 벗어나려는 진석의 앞을 가로막는다.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가진 진석의 시점에서 알 수 없는 일이 계속되는 것을 보여주다 깜짝 반전이 등장하고, 이를 한겹 벗기고 나면 또다시 반전이 드러나는 흐름이다. 마침내 결말을 알고 난 후 완성된 큰 그림은 의외로 단순하지만 진실이 드러나기까지 관객의 호기심을 견인하는 기술은 나름 성공적이다. 그렇게 <기억의 밤>은 미스터리 스릴러로서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를 준다. 지난 수십년간 성공했던 많은 장르물의 연출과 구성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전술이 주효했다. 많은 스릴러영화와 드라마의 선례가 머리에 스치지만 알면서도 속고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셈. 여기에 강하늘이 장르에 필요한 연기를 정확하게 해내며 극을 흡인력 있게 이끌고 김무열, 나영희, 문성근이 묵직하게 그를 보조하며 영화의 균형을 잡는다. 때문에 매우 한정된 공간에서 스토리가 전개됨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장감을 자아내는 타율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반전이 드러나고 드라마가 개입하는 후반의 전개는 설정이 과도한 느낌이 강한데, 이 역시 일부 장르물이 가졌던 고질적인 문제와 겹친다는 점이 아쉽다. 한국의 어떤 사건에서 비롯된 황량한 정서를 굳이 설명적으로 제시한 패착이나 중간중간 드러나는 설정상의 오류도 자꾸 눈에 밟힌다. <라이터를 켜라>(2002), <불어라 봄바람>(2003) 이후 오랜만에 장편영화 연출작으로 돌아온 장항준 감독의 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