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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잡는다> 김홍선 감독 - 노인의 액션 스릴러? 호감형 캐릭터 구축이 주효했다
2017-12-07
글 : 이주현
사진 : 오계옥

“어제 산소에 가서 조상님께 기도하고 왔다.” <공모자들>(2012), <기술자들>(2014)에 이은 세 번째 영화인데도 김홍선 감독은 마치 첫 영화를 선보이는 것처럼 긴장했다. 김홍선 감독의 사무실엔 <반드시 잡는다>의 인물 관계도와 배경 헌팅 사진, 너덜너덜해질 만큼 들춰본 시나리오가 붙박이 장식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반드시 잡는다>에 쏟은 감독의 애정과 노력이 물씬 느껴지는 소품들이었다. <반드시 잡는다>는 그간 한국 장르영화에서 보기 드물었던 노인이 주인공인 스릴러영화다. 동네의 터줏대감 심덕수(백윤식)와 전직 형사 박평달(성동일)이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로, 캐릭터 코미디와 묵직한 스릴러가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다. 온고지신의 자세로 백윤식, 성동일 등 선배배우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는 김홍선 감독을 영화 개봉 전날 만났다.

-<아리동>에서 <반드시 잡는다>로 제목이 바뀌었다.

=영화 마케팅 시작하면서 바뀌었는데, 처음엔 <공모자들> <기술자들>에 이어 ‘∼들’ 시리즈로 갈까 했다. 그렇게 나온 후보 중에 <은퇴자들>도 있었다. (웃음) 웹툰의 제목을 차용한 <아리동 카우보이> <아리동 투캅스>도 있었고, 최종적으로 제작사의 전작 <끝까지 간다>와 느낌이 비슷한 <반드시 잡는다>로 결정됐다.

-시나리오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빼곡하게 메모를 해뒀더라. 시나리오가 마치 오래된 비법서처럼 보이는데.

=현장에서 까먹으면 안 되는 것들을 써뒀다. ‘우아하고 긴장감 있는 핸드헬드’, ‘관념이 아닌 본질’ 이런 글귀도 있고, ‘설정숏을 꼭 찍는다’, ‘플로팅을 잊지 않는다’ 같은 현장 십계명도 써놓았다. 이번만 그런 게 아니라 매 작품 시나리오에 이렇게 메모를 해둔다.

-제작사 AD406의 차지현 대표로부터 제피가루의 웹툰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의 영화화 제안을 받았다.

=처음엔 거절했다. 웹툰은 너무 재밌는데 상업영화로 풀기엔 캐릭터나 이야기가 좀 떠 있는 느낌이었다. 만화적 상상력, 만화적 개연성이 강하달까. 그걸 영화적으로 납득시킬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각색을 해보고 답이 나오면 할게요, 라고 했는데 각색하다 보니 승부해볼 만하다는 용기가 생겼다. 두달 만에 각색을 마쳤고, 시나리오가 나온 시점에 주연배우 캐스팅과 투자·배급이 이루어졌다. 그러면서 힘을 받아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미제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려는 두 노인이 주인공인 스릴러영화다. 그간 한국 장르영화에서 보지 못한 신선한 캐릭터고 조합이다.

=이런 작품을 기획한 제작사도, 연출을 하게 된 내게도 새로운 기회고 경험이었다. 핫한 젊은 배우가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티켓 파워가 있는 중견배우가 출연하는 것도 아닌데 시원하게 투자해준 투자·배급사도 의미 있는 결정을 했다. 그래서인지 스탭들이 이 영화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면서 헌신적으로 작업에 참여했다.

-영화의 주무대인 아리맨션의 터줏대감이자 괴팍한 노인 심덕수 그리고 예측불허 반전 캐릭터 박평달의 매력을 초반에 잘 드러내는 게 관건이었을 것 같다.

=캐릭터가 관객에게 비호감으로 보이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초반 20분 안에 덕수의 인간적인 면을 드러내려 했다. 말은 거칠게 해도 인정이 있으며, 나이는 많아도 여전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덕수의 매력을 어필하려 했다. 거기엔 캐스팅도 한몫했다. 백윤식 선배님이 호감 캐릭터이지 않나. 거기서 캐릭터의 괴팍함이 상쇄되는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전직 형사 출신의 평달도 형사로서의 예리함 같은 직업적 특징이 묘사되지만 동시에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은 느낌을 줘서 캐릭터에 훅 다가갈 수 있게 만들었다.

-실제로 백윤식, 성동일 두 배우는 나이 차가 꽤 나는데 어떻게 이 조합을 생각했나.

=두 배우의 나이 차가 20살 정도 될 거다. 덕수 캐릭터엔 처음부터 백윤식 선배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거기에 이견은 없었다. 성동일 선배님은 나이의 밸런스 때문에 선뜻 떠올리지 못했다. 그런데 차지현 대표의 추천으로 만나보니 충분히 분장도 소화할 의사가 있으시더라. 두 배우의 색깔과 위트가 전혀 다르지만 두분이 서로 튕기기도 하고 받아내기도 하는 합이 너무 좋았다.

-스릴러영화지만 코미디 색채도 의외로 짙다. 그 때문에 영화의 잔인함이 상쇄되는 측면도 있다.

=노인이 주인공이면서 건조하고 센 청소년 관람불가의 스릴러영화를 만들면 그것 자체로 새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데 회의를 하면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만들지는 말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대신 촬영은 청소년 관람불가로 하겠다고 했다. 상상력이 제한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연쇄살인이 발생하는 현장은 잔인한 그대로 찍었다. 넘치게 찍은 다음 15세 관람가에 맞춰 편집했다. 노인 고독사, 세대 갈등 등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너무 건조하게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려면 두 캐릭터를 가지고 놀 필요가 있었다.

-노인의 속도와 호흡에 맞춘 리얼한 추격 신도 인상적이었다. 노인 액션 설계는 어떻게 했나.

=백윤식 선배님만 할 수 있는 액션이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헉헉거리고, 스태미나가 금방 떨어지고, 밤이 되면 말이 조금 느려지는 포인트들을 살렸다. 그런데 백윤식 선배님은 ‘노인 액션’이라는 표현을 보고는 ‘노인액션이라고?’ ‘느리긴 뭐가 느려?’ 그러시더라. (웃음) 그래서 대역도 못썼다. 대역이 선생님의 속도를 따라해 천천히 액션을 하면 어색하니까. 그래서 대역 없이 백윤식 선배님이 90% 이상 직접 액션을 소화했다. 성동일 선배님은 거의 100% 액션을 소화했고.

-아리동이라는 가상의 동네를 그럴싸하게 창조했다. 목포 일대에서 촬영을 진행한 것으로 아는데, 로케이션 과정은 어땠나.

=제작부, 미술팀, 소품팀이 다같이 고생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는 동네,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동네였으면 했다. 더불어 계절적 요인을 고려해 남부 지방 위주로 헌팅을 다녔고, 목포에서 영화의 주 배경이 되는 아리맨션을 발견했다. 그런데 공간은 좋은데 미술이 좋지 못해서 미술팀과 소품팀이 건물 페인트칠도 새로 하고 화단도 만드는 등 리뉴얼 공사를 했다. 그렇게 목포를 중심으로 전라도 지역 올 로케이션을 진행했다.

-뉴욕대 대학원과 뉴욕필름아카데미에서 영화 공부를 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TV드라마 조연출 일을 꽤 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너 하고 싶은 거 할 만큼 했으니 이젠 안정적인 일을 찾아라’ 하셔서 기업에 원서도 넣었다. 그러다 EBS에 입사해 청소년 드라마를 만들다가 회사를 나와서 오종록 감독님 밑에서 드라마 <스타일> <대물> 등의 조연출을 했다. <스타일>과 <대물> 사이에 쓴 시나리오가 <공모자들>이었다. <공모자들>로 청룡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받자 그제야 아버지도 내 일을 인정해주셨다.

-<반드시 잡는다>가 세 번째 영화인데 여전히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많아 신기하다고 했다.

=아직 신인 같다. 5편 정도 만들고 나면 좀 다르려나. (웃음) <공모자들>이 내가 재밌다고 생각한 것,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밀어붙여 완성한 영화라면 <기술자들>은 관객이 좋아하는 것들을 고려해 만든 기획영화였다. <반드시 잡는다>는 그 둘을 합친 것 같은 영화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만큼 관객도 영화를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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