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겹치고 겹쳐 지금까지 왔다.” 증국상 감독은 <도둑들>(2012)에서 4인조 중국도둑 중 한명인 조니 역으로 출연하며 국내에도 이름을 알린 배우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감독을 꿈꿔왔고 아버지인 증지위 배우의 절친이자 믿음직한 멘토 진가신 감독이 제작한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2016)에서 연출을 맡아 섬세한 연출력을 세간에 인정받았다. 홍콩영화계의 미래가 여기 있다.
-여성들만의 내밀한 감정의 결을 따라가기 쉽지 않았을 텐데 비결은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는 감독들이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들을 많이 만들어왔고, 그 영화들이 내게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항상 여성이 중심이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여자들 사이의 역학관계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아버지보다는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성장했고 어머니 주변에는 항상 친한 동성친구들이 있었다. 어린 나에게 어머니, 그리고 가족과도 같았던 어머니의 친구들의 이야기가 항상 흥미롭게 다가왔었다. “남성 감독이 다루는 여성들간의 우정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하며 작품을 대하지 않았다. 감독의 필수 덕목은 모든 캐릭터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원작 소설과 가장 달라진 지점은 무엇인가.
=원작 소설은 스물몇 페이지였을 정도로 매우 짧고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이야기였다. 때문에 플래시백과 영화 속 온라인 소설의 이야기라는 형태를 활용해 이야기를 좀더 복잡한 구조로 관객에게 전달하려 했다. 칠월과 안생은 여성의 삶을 양극단의 형태로 대표한다. 세상이 여성에게 요구하는 정형화된 틀과 자신이 살아가고 싶은 삶 사이에서 선택을 통해 진짜 자신을 찾아가며 성장하는 여성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네명의 여성 작가와 협업했다고 들었다.
=그들과 함께해서 영광이다. 두명의 작가가 안생과 비슷했고, 다른 두 작가는 칠월과 비슷했다. 작품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항상 논쟁했다. (웃음) 나는 이 과정에서 양쪽을 아우르며 균형을 맞추는 안내인 역할이었다.
-배우로 출발해 연출의 길로 접어들었다. 아버지인 배우 증지위의 영향인가.
=사실 내 인생에서 연기는 완전히 의도되지 않은 일이었다. 한번도 배우가 되는 것을 계획한 적은 없었다. 스크립터로 업계에서 일을 시작했고, 나의 꿈은 언제나 연출이었다. 영화 제작 현장에서 2년 동안 일을 하니 한 감독이 내게 그의 작품에서 연기를 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왔다. 배우이자 제작자인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잡아서 업계에서 더 다양한 일들을 해보라고 북돋아주셨다. 연기가 어떤 것인지, 또 배우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궁금했었고 그래서 연기에 도전하게 되었다. 일회성이라 생각했던 연기는, 운 좋게도 두번, 세번으로 이어졌으며 현재까지 4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다. 연기 경험은 나에게 영화 제작을 이해하는 완전히 새로운 시점을 가져다줬다. 내게 그런 기회를 준 감독과 제작자들에게 감사하다.
-한국영화 현장도 경험해봤는데, 홍콩영화계와 차이가 있었나.
=최동훈 감독님을 비롯해 여러 대단한 배우들과 <도둑들>에서 함께 연기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정말 가족같이 느껴졌다. 한국영화 제작 방식이 홍콩과 제일 다른 부분은 시간인 것 같다. 홍콩영화는 제작기간이 짧기로 알려져 있다. 홍콩의 영화산업이 점점 작아지고 있는 만큼 예산도 점점 더 빠듯해지고 있다. 예산의 축소는 결국 제작 기간 또한 빠듯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은 홍콩영화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산업의 크기는 작아졌지만 국내 관객은 아직도 홍콩영화를 열성적으로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