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오우삼 / 출연 존 트래볼타, 니콜라스 케이지 / 제작연도 1997년
1997년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맨 처음 친구와 극장에서 본 영화가 1998년 <타이타닉>이었으니, 내게 영화란 집에서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야흐로 비디오의 시대였다.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여가 시간이면 집에서 영화를 보았다. 비디오 플레이어는 필수 가전이었고, 비디오테이프를 손상시키지 않고 감는다는 빨간 자동차 모양의 기계는 덤이었다. 게다가 개봉한 지 얼마 안 된 영화를 집에서 볼 수 있다는 개념은 매우 혁신적인, 당시 최고의 유희였다. 비디오는 매번 사서 볼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대여점이 성행했다. 단순히 점포를 차려놓고 손님을 기다리던 대여점은 방문해서 빌려주고 받아오는 서비스에 이르렀다. 보고 싶은 영화를 전화로 주문하면 대여점 직원이 찾아와 대여했던 비디오와 주문한 비디오를 교환하는 시스템이었다. 만원에 6편이었던가, 7편이었던가. 집에서도 영화를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매달 나오는 잡지 이름은 <으뜸과 버금>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름답고 혁신적인 이름이 아닌가 싶다.
주로 주문하는 영화는 잡지에서 상위권에 랭크된 영화였다. 하지만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가 내게 허락될 리 만무했다. 야하거나 잔인한 영화를 빼면 결국 악당을 물리치는 히어로물이나 감동 실화, 하품 나오는 동화들이었다. 그런 영화들을 보고 ‘으뜸과 버금’의 의미를 되새기며 중학 시절을 보냈다. 실상 내가 지닌 영화 세계는 그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중 중2 겨울방학 때 <페이스 오프>를 보았다. 선량한 주인공이 악당을 시원하게 물리칠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당시로는 오우삼이 할리우드에 진출해 슬로모션으로 총질을 하고 비둘기를 날리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성기의 존 트래볼타와 니콜라스 케이지가 동시에 한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다만 주인공인 트래볼타가 빨리 역경을 이겨내고 악당인 케이지를 때려눕혔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그리고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자 트래볼타가 결국 케이지를 물리치고 가정과 직장의 평화를 얻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선 기묘한 느낌이 일었다. 이것은 이분법적인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가 아니었다. 영화 속 선과 악의 대결에서 선과 악은 육체를 바꾼다. 자신이 증오하던 자가 되어버린 역겨움을 이기고 각자는 본디 나 자신의 외형을 지닌 자를 파괴하기 위해 행동한다. 그러던 둘은, 자신의 적이자 현재 자기의 모습을 비추는 양면 전신거울 앞에 마주 선다. 둘은 부숴버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카메라는 둘을 한참 동안 번갈아 비춘다. 그러곤 바뀐 얼굴로 행한 복수가 복수를 낳아 총구가 총구로 연결되고, 또 다른 이가 나타나 총구를 겨눠 일발의 격전이 벌어진다. 이 장면들은 왜 있었을까.
생각의 여운에서 나는 감독이 비단 악을 징벌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지 않았음을 알았다. 15살의 겨울, 나는 <페이스 오프>로 영화가 철학을 담을 수 있는 매체임을 처음 깨달은 것이다. 통쾌한 액션과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가장의 모습을 다룬 듯 보이는 이 영화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외형에 대한 사유와 번민을 담고 있었다. 이후 영화를 독해하는 나의 세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20년도 지난 지금 나는 영화에서 전신 성형의 흉터가 하루 만에 아무는 장면을 보면서 혀를 차는 의사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혹여 누가 내 얼굴을 뜯어가지 않을까 얼굴 가죽을 두손으로 붙들고 잠든 15살 때의 밤을 아직 기억하고, 또 선악과 그 장면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던 다른 밤도 기억한다. 두시간 남짓 동안 자신의 철학이나 진심 같은 것을 건네는 방법을 처음으로 생각해보던 밤 말이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저서로 <만약은 없다> <지독한 하루>가 있다. 영화를 매개로 여러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해 관객과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언젠가 <씨네21>에서 청탁 요청이 오는 날을 꿈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