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임대형 감독 -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
2017-12-14
글 : 이화정
사진 : 백종헌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총 5개의 챕터로, 한 남자의 인생 마지막을 그린다. 챕터1에서 제시된 시골 이발사 모금산(기주봉)의 반복적 일상은, 갑작스런 암선고로 인해 흔들린다. 선고에 미동도 없던 그는, 이내 배우가 되고자 했던 젊은 날의 꿈을 소환한다. 그 ‘계획’(챕터2)을 실행하자면 영화감독 지망생인 아들 스데반(오정환)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새로운 것에 열광하지만 지나간 것은 굳이 되돌아보지 않는 속력의 시대. 임대형 감독은 모금산의 결심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조금은 뒤처진 속도에 발맞추어볼 것을 권유한다. 빛바랜 흑백 화면 속, 남아 있는 모든 낡은 것들, 서로를 위한 속깊은 온정. 마치 아키 카우리스마키 영화처럼 덤덤한 인상과 풍경 속에 감춰진 미세한 웃음들이 당면한 비극을 그나마 견딜 수 있게, 내일을 희망하게 해준다. <만일의 세계>(2014)로 서울독립영화제 우수작품상,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임대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짧은 무성영화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가 완성되기까지, 그 과정을 따라가는 독특한 영화다. 어떻게 시작했나.

=원래 모금산이라는 캐릭터가 나오는 다른 단편 시나리오를 썼는데 만들지 못하게 됐다. 그런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은 놓지 못하겠더라. 그래서 모금산을 메인 캐릭터로 가져와서 발전시켜보자 마음먹었다. 당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찰리 채플린 회고전을 열었다. 극장에서는 처음 봤는데, 그때 무성영화에 모금산 캐릭터를 넣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모금산’, 독특한 이름의 캐릭터다. 영화 배경인 충남 금산군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모’는 아무개를 지칭하는 모였다. 마지막 글자 ‘산’은 황현산 선생님을 좋아해서 넣었다. 고향이 금산이니 그렇게 가운데 글자도 넣었다. 처음에는 정말 이렇게 별 뜻 없이 조합한 건데 이름을 곱씹어보니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지더라. 이 이름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파생된 것 같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짐 자무시, 웨스 앤더슨 영화 등에서 본 블랙코미디적인 정서를 기본으로 하지만 기본 플롯은 모금산의 암선고, 출생의 비밀 등이 얽힌 센 설정이다. 어떻게 조화를 꾀했나.

=‘이 많은 클리셰를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아무래도 신인감독의 패기였던 것 같다. 이런 상투적인 이야기로도 내가 성공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영화감독으로 계속 일해도 되겠구나 싶었다. 결국 단초는 내 만용이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너무 난감하더라. 어느 순간에 ‘사건’을 개입해야 할까. 시나리오 초반에 넣었다가 중반에 넣었다가 계속 수정을 거듭했다. 단순하게 넘어가되 쿨하지 않게, 그 중간지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채플린의 말처럼 비극의 한가운데에서도 한 템포 쉬고 웃게 되는 코믹 코드는 끝까지 유지한다.

=영화에 클로즈업숏이 두번 나온다. 미디엄숏 이상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데, 이게 코미디영화의 원칙이라 생각했다. 비극적인 상황에서는 카메라를 뒤로 빠지게 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영화의 노동자들, 이주민들의 이미지를 좋아하고 그런 톤을 배우고 닮고 싶었다. 커트 보니것 같은 미국 작가들의 블랙코미디적인 톤도 상당히 좋아한다. 내 성향도 진지한 코미디쪽이다. 그 자리에서는 못 느끼다가 집에 가서 이불 속에서 키득키득 웃게 되는. 집에서 그러다 동생한테 많이 혼났다. (웃음)

-모금산 역은 왜 기주봉 배우여야 했나. 죽음 앞에서 마지막 희망, 아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모금산 캐릭터. 한 중년 남자가 가진 회한이 배우 기주봉의 담담한 연기로 100% 발현된다.

=일단 무성영화에서 채플린 연기를 하는 캐릭터라 키 작은 배우가 필요했다. 모금산은 한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년 아저씨와는 달랐다. 권위의식이 거의 없는 사람이고, 그래서 비범한 사람이 필요했다. 실제 같이 작업해보니 기주봉 배우도 그런 면에서 모금산과 닮았더라. 처음엔 ‘선배님’이라고 불렀는데, 영화 끝나고 나서는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촬영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신인감독이라 기주봉 배우 캐스팅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고전적인 수를 썼다. 손편지를 쓰고, 단편들 DVD를 가지고 연극할 때 여러 번 간 후에 보여드렸다. 그렇게 술자리를 가졌는데, 술김이어선지 좋다고 하시더라. 그전에 사무실로 보낸 시나리오를 보신 후였는데, 어쨌든 그날 하신다고 할 때 확답을 그 자리에서 녹음했다. (웃음)

-모금산이 사는 오래된 마을, 금산군의 정취, 그곳 사람들의 면면이 캐릭터와 스토리의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라져가는 공간의 가치를 깊이 새기고 작업한 흔적이 보인다.

=19살 때 대학 진학하면서 금산을 떠났다. 기억 속 공간과 달리 다시 고향에 가보니 확실히 등산복 매장이 많더라. (웃음) 곳곳이 택지개발지구들로 변경됐다. 영화가 보여주려 한 것이 상실되어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이었고, 금산에서 그걸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발소, 다방, 터미널, 오래된 치킨집을 주요 배경으로 삼았다. 치킨집은 리뉴얼을 한다고 하길래 잠깐만 촬영 좀 하자고 부탁드렸다. 모금산이 사는 아파트도 내가 초등학생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아직 그곳에 사는 친구가 있어서 빌려서 촬영했다. 군청쪽 도움도 많이 받았다. 참고로 아버지가 군수님과 친구라 영향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웃음)

-영화 속 흑백 무성영화뿐만 아니라 그 바깥도 모두 흑백으로 구성했다. 오히려 영화 속 영화와 구별하는 것이 일반적일 텐데 그 반대의 선택으로 보인다.

=흑백이 내겐 당위처럼 보였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공간들이 너무 많이 개발되었고, 그로 인한 색의 충돌이 이 영화의 정서와 맞지 않아서였다. 또 흑백 화면에서 배우들의 마스크가 더 아름답게 전달되더라. 컬러보다 패턴, 음영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작업이었다. 배경이랑 소품의 색이 겹쳐서도 안 되다보니 촬영, 미술, 조명팀 모두 품이 너무 많이 들어가더라. 현장에서 후회한 적도 많았다. (웃음)

-영화를 하려다 좌절한 모금산의 아들 스데반이 모금산의 부탁으로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깨달음을 보면서 영화 만들기의 어려움, 신인감독 임대형의 고민으로도 읽힌다.

=지금까지 열심히 버텨왔다. 경제적인 부분은 지금도 아르바이트로 충당하고 있지만 그래도 다양한 지원을 받아 잘 지내온 것 같다. 원래는 사회학과에 다니다 법대에 편입하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편입했다. 연출이 아니라 연기를 하려고 간 건데 내 길이 아니더라. 그래서 연출을 해보자 한 거다. 첫 단편을 필름으로 찍었는데 그때 학교에서 대여해준 고가의 렌즈를 깼다. 이후 나 때문에 선배들이 단렌즈로만 작업을 했었다. 그게 내겐 트라우마였다. 휴학하고 방황을 하다 영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연히 낸 공모전에서 이정향 감독이 특별언급을 해주셨는데, 덕분에 다시 한번 해볼까 하는 용기가 생기더라. 큰힘이 됐다. 그렇게 다시 연출을 결심하게 됐다.

-차기작 계획은 뭔가.

=한·일 합작으로 엄마와 딸의 로드무비를 찍을 계획이다. 평범한 소시민들,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화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온기를 가진 영화로 만들어나가고 싶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