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유]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오정환 - 정서를 읽어내는 배우
2017-12-15
글 : 이화정
사진 : 백종헌

꿈꾸던 영화감독의 길은 멀고, 연애도 안 풀리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정리도 안 된다. 20대 청년 스데반의 현재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 오정환은 갑갑하고 약간은 꺼벙하기까지 한 청년 스데반을 연기한다. 시골 이발사인 아버지 모금산(기주봉)이 갑자기 자신을 주연으로 영화를 만들어달라는 청에, 귀찮은 마음으로 그는 카메라를 들었다 점점 빠져들기 시작한다. 기주봉의 모금산이 묵직한 돌처럼 영화의 중심을 잡고 있다면, 오정환이 구현하는 스데반은 그 돌 주변의 조약돌처럼 가볍고 치기어린 모습이다. 40년차 경력의 배우 기주봉과 한 프레임 안에서 덤덤한 웃음과 눈물을 만들어내는, 눈에 띄는 배우.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서 만난 임대형 감독과 단편 <정모날>(2012) 때부터 인연이 되어 장편 작업까지 함께한 배우 오정환을 만났다.

-스데반은 덤덤해 보이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런 암선고, 출생의 비밀 등으로 비극의 한가운데 놓인 인물이다.

=공연, 단편영화 등을 하면서 빨리빨리, 자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감독님 감성은 역으로 담담하게 표현하는 방식이더라. 마음이 아리고 슬프지만 아버지를 향한 표현은 서툰 인물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꾹꾹 감정을 눌러서 가는 쪽을 선택했다.

-스데반은 데면데면하지만 속깊은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되고 차츰 변화해간다.

=감독님이 인물 톤에 레퍼런스가 될 만한 영화들도 많이 추천해주셨다. 영화 전체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짐 자무시, 웨스 앤더슨 영화를 많이 찾아봤다. 최근엔 <디센던트>(2011) 같은 개봉 화제작을 찾아보곤 했는데, 이번 영화 출연으로 예전 작품들을 많이 보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계기가 됐다.

-영화 속 스데반의 어리바리한 모습과 영 반대 분위기라 좀 낯설다.

=그래서 영화에서 쓴 뿔테 안경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웃음) 안경을 안쓰면 사람들이 못 알아보더라. 안경은 감독님이 스데반을 만들면서 이미지에 어울린다고 주신 거다. 좀 풀어지고 꺼벙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머리도 각을 잡지 않고 파마를 해서 부스스하게 만들었다.

-베테랑 배우 기주봉과 호흡을 맞췄다.

=처음엔 걱정이 많았다. 술을 못하는데, 막걸리 한잔하고 얼굴 빨개져서 ‘아버지라고 부를게요’ 했다. 연기를 많이 해보셨으니 역할이 익숙하겠다고 하니, “모금산 역은 처음이잖아” 하시던 말씀이 기억난다. 촬영하면서 품고 있던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배우는 상처받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냥 다쳐라. 그렇게 가도 괜찮다”라고 위로해주시더라.

-배경이 된 금산군이 스데반의 정서를 형성하는 데 준 영향도 커 보인다.

=21회차 찍었는데 한달 반 정도 머물렀다. 금산군이 인삼 산지로 유명한데 내가 묵었던 휴호텔이 인삼약재시장 바로 맞은편에 있었다. 프리 프로덕션 때 로케이션 헌팅도 따라가고, 휴차 때도 서울 안 오고 거기서 묵었다. 구전으로만 듣던 쌍화차도 먹고, 민물생선으로 만든 도리뱅뱅도 먹고, 너무 편하고 좋았다. 촬영 후에도 머리 식힐 겸 두번 더 내려갔다.

-장편영화로는 첫 신고식인데, 연기는 어떻게 시작했나.

=중학교 2학년 때 아는 형의 권유로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연극을 했다. 반항기 가득할 때였는데, 무대에서 내 애드리브에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고 칭찬도 받으니 세상이 달라 보이더라. 연기가 하고 싶다고 하니 그 형이 계원예고를 소개해줬다. 고등학생 때 국비장학생으로 미국 올랜도에 유학도 다녀왔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한 건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가면서다. 그 뒤 무대에 매진해왔다.

=연극 <갈매기>를 시작으로 뮤지컬 <원스> 등 공연 무대에 주로 섰다. 단편영화는 닥치는 대로 찍었는데 영화제에 소개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연기는 공인된 자격증이 있는 것이 아닌 까닭에 어느 정도 연기를 해야 내가 배우로 자격이 있을까 하는 고민이 컸다. 잘하고 싶었고, 사람들이 인정하는 걸 하는 선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영화 <메소드>의 모티브가 된 연극 <언체인>(12월 15일~2018년 2월 11일)에서 무대와 현실을 혼동하는 싱어 역을 연기한다.

=바로 코앞이다. 영화는 멜로적인 측면이 부각됐다면 공연은 스릴러적인 요소들이 앞선다. 영화와는 또 다른 분위기일 테니 많이 기대하고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영화 2017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2013 단편 <두 번 줄넘기> 2012 단편 <정모날> 연극 2016 <잔치> 2013 <2013 갈매기> 2012 <진짜 셰퍼드 경위> 뮤지컬 2015 <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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