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결혼 시키기>에는 책을 좋아하는 부부가 갈등 끝에 서재를 합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올해 결혼한 오상진·김소영 아나운서 부부도 이 책의 저자처럼 전혀 다른 독서 취향을 가진 배우자와 책을 섞었다. 그러나 한권의 책을 오래 공들여 읽는 김소영 아나운서와 하루에 몇권씩 읽기도 한다는 오상진 아나운서는 별다른 다툼 없이 서재를 합쳤다고 전한다. 결혼 직후 부부가 합정동에 작은 책방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상대의 취향과 습관을 당연하게 존중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소영 아나운서가 운영하고 오상진 아나운서가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고 있는 당인리책발전소의 휴무일, 부부를 한자리에서 만났다.
-김소영 아나운서가 MBC를 퇴사한 후 당인동에 책방을 열었다.
=김소영_ MBC 퇴사는 회사의 복합적인 상황 때문에 결심한 것이지 책방 때문은 아니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진짜로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찾아보자고 마음먹었을 때 책방이 운명처럼 눈에 들어왔다. 결혼 전에도 3년간 각자의 SNS에 서평을 포스팅했다. 그냥 책을 좋아하니까 했던 일인데, 그런 글을 읽고 실제로 책을 고르는 데 반영하는 분들이 많더라. 그래서 오프라인 공간에서 이렇게 추천 책을 공유하자는 게 시작이었다.
-퇴사 후 일본 여행을 할 때 만난 독립서점들도 영향을 줬다고. 그곳의 책방문화는 어떠하던가.
=오상진_ 독서 문화가 보급이 잘돼 있다 보니 종류 면에서 압도적이다. 특히 잡지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루는 주제가 정말 다양하더라.
김소영_ 여행 전문 서점,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을 위한 서점, 고양이 서점 등 책방이 다양하다. 하나의 베스트셀러가 주목받는 게 아니라 책방마다 다른 책이 주목받고 있었다.
-이곳도 자체적으로 베스트셀러를 집계하고 있다. 당인리책발전소를 찾는 손님들의 성향은 어떤가.
오상진_ 요즘은 ‘나’에 관한 책이 이슈다. 또한 원래 독서 인구도 여성이 더 많고 여성 손님이 많다보니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나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같은 책이 많이 팔린다. 꾸준히 순위가 높은 건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이다.
김소영_ 책은 인터넷으로 구입할 수 있고 서점에 와야만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서 책을 읽고 싶어서 아이들을 데려가도 되냐고 문의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 홍대와 합정 부근이라 젊은이들이 많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노년층까지 다양한 손님들이 온다. 대형서점에는 책이 너무 많으니까 고르기 힘든데, 작은 서점은 한번 선별을 해준 책이 있으니 좋다고들 말씀하신다.
-선별에 신뢰감을 더하기 위해서는 큐레이션이 중요하다.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
오상진_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따>는 굉장히 좋아하는 책인데 아무도 안 살거 같아서 갖다놓지 못했다. 조지프 헬러의 <캐치-22> 역시 평소 사람들에게 많이 추천하지만 2차 세계대전 얘기라 동시대의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의미있는 책 위주로 많이 고른다.
김소영_ 이번 달에 강력 추천한 책이 <애프터 피케티>인데 사람들이 잘 안 사간다. 너무 두꺼우니까 인터넷 주문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걸까. 책방 주인은 책도 많이 읽어야 하지만 트렌드를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갈구하는 것, 부족해하는 것, 듣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반영한다. 사실은 부부만의 취향이 아닌 것이다. 절반 정도는 이 사회가 원하는 책을 갖다놓으려고 한다.
-이곳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는 사실이 책 홍보에 쓰이기도 한다. 실제로 다른 인터넷 서점에서도 순위가 오르는 것을 봤고.
김소영_ 우리가 독립 출판 서점은 아니지만 홍보나 프로모션을 자체적으로 할 수 없는 책중에서 재미있다고 느낀 책에 좀더 애착을 가지려고 하는 편이다. 좋은 책을 발굴한 것이니 기분이 좋긴 하지만 너무 쏠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책을 선정하고 책을 소개하는 책방 주인이 1명이 아니라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요즘 책을 소개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연애할 때 서로 책 빌려주면서 가까워졌다고 들었다. 맨 처음 바꾸어 읽은 책이 무엇이었나.
김소영_ 남편이 나에게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을 빌려주고, 나는 다이호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를 빌려줬다.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가 비슷해서 굉장히 놀랐다.
오상진_ 둘 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이야기인데 <인간의 조건>은 남자 작가, <사람아 아, 사람아!>는 여성 작가가 썼다. 전자는 암살 작전에 관한 소설이고 후자는 역사적 비극 속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연인의 이야기다.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접근하는 두 책을 서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며 나누게 된 거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소설을 읽다 보니 그동안 내가 너무 팍팍하게 살았나 싶었다. (웃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각자의 독서 취향이 좀 넓어지기도 했겠다.
오상진_ 예전에는 <이기적 유전자> <21세기 자본> <유러피언 드림> 같은 책을 좋아했다. 그런데 소영씨를 만나고 나서 소설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는 김영하나 무라카미 하루키 정도만 읽었는데 요즘은 읽는 책의 90%가 소설이다. 사회과학 서적만 읽다보니 내 생각을 긍정하는 책만 읽게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학도 세상에 대한 인식을 담으면서, 직진이 아니라 돌아서 가기 때문에 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면이 있더라.
-인스타그램에 <나쁜 페미니스트>를 소개한 글을 보고 혹시 부인의 영향일까 생각했다.
오상진_ 예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유머가 요즘엔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은 등 시대가 바뀌었다. 특히나 기득권의 위치에 선 남자들은 젠더 감수성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막연히 생각했던 부분, 특히 일에서 느끼는 불안감이 소영씨와 대화하며 많이 와닿게 됐다. 같은 필드에서 다른 입장으로 일하는 상황이다 보니 감정이입이 확 된다. 예전에는 이런 사회 이슈에 대해 혼자 찾아보고 생각하고 나 잘난 맛에 살고 그랬는데(웃음), 소영씨와 함께 이런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훨씬 더 좋더라.
김소영_ 남편이 나를 만나서 여성의 입장을 느꼈다면 난 요즘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또래 남성들의 힘든 점을 생각할 때가 있다. 남편 같은 경우는 안정적으로 자신의 일을 하고 있으니 일방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나. 정말 앞이 보이지 않는 젊은 남자들도 있다.
-얼마 전 tvN <신혼일기2-가족의 탄생>(이하 <신혼일기2>) 출연이 화제가 됐다.
김소영_ 사실은 방송 자체를 할지 말지 굉장히 고민하고 있었고 남편이랑 같이 하게 될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지 못했다. 부부가 함께 인터뷰를 하는 것도 <씨네21>이 처음이다. 매체에서까지 엮이는 걸 서로 바라지는 않는 편이다. <신혼일기2> 제작진의 설득이 와닿았던 거 같다. 나영석·이우형 PD가 “절대 짜고 치지 않고 대본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서점을 준비 중이라 방송을 할지 안 할지도 생각 안 해봤다고 솔직히 말씀드리니 오히려 그런 상황인 사람들을 찾으신다고 하더라.
-그렇게 부부의 일상을 그대로 담는 <신혼일기2>가 방송된 후 얻은 게 있다면.
김소영_ 앞으로 개선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를 비추는 조명이 너무 강하다. 앵커의 카리스마를 높이기 위함이기도 하겠지만 모든 주름과 미세한 표정을 감출 정도다. 그에 맞서기 위해 강한 화장을 해야 한다. 예전에 여자 앵커의 눈이 처진 것이 뉴스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적인 기사를 읽고 눈화장을 세게 바꿨다. 그런데 <뉴스데스크>를 1년 반 정도 진행했는데도 평소 모습과 너무 다르니까 사람들이 날 못 알아보더라. 화보를 찍으면 동그란 얼굴을 브이라인으로, 눈은 굉장히 크게 보정을 받았다.
오상진_ 선의라고 한 행동인데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이미지를 만드는 거다.
김소영_ <신혼일기2>에서 나의 맨 얼굴을 공개했다. 요즘 서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데, 화장을 하지 않은 상태여도 부담스럽지 않다. 예전의 나였다면 못했을 일이다. 앞서 언급한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를 굉장히 빠져들어 읽었다. 여성이 멋을 부리고 예뻐지기를 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최근 MBC 파업이 끝나고 회사가 정상화 단계를 밟고 있다.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다. 아쉬움은 없나.
오상진_ 시청자 입장에서 우선 기쁘다. 결국 모든 작업이 원만하게 잡음 없이 흘러가기 위해서는 많은 부분이 바뀌어나갈 텐데,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응원하게 된다.
김소영_ 퇴사를 결심한 게 아쉽거나 하지는 않다. 오히려 가족처럼 생각했던 동료들이 행복해하니까 기쁘다. 내 선택의 옳고 그름을 떠나 지나간 일에 대해 돌아보며 후회를 하는 성격이 아니다. 서점 일도 진지하게 할 거고 그간 보여드리지 못했던 모습도 방송에서 보여드리고 싶다. 어떤 분야에서 진행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신중하게 판단하고,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고 한다. 우선은 남성 패션 뷰티 프로그램 <남자다움, 그게 뭔데?>에 출연한다.
당인리책발전소
“남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온전히 내 퇴직금을 털어서 열었다.” 당인리책발전소는 김소영 아나운서가 주도적으로 준비하고 서적 관리 등 운영 전반을 맡고 있다. 아르바이트생인 오상진 아나운서는 커피와 음악을 담당한다. 주인장의 큐레이션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아르바이트의 취향은 ‘오상진의 북스타그램’ 코너에 따로 소개되어 있다. 주소는 서울 마포구 독막로8길 15(합정동 355-24). 운영시간은 화~목, 일요일 오후 12시부터 밤 9시까지 금·토요일 오후 12시부터 밤 10시까지다. 월요일은 휴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