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아비 없는 놈들!”이라는 산적들의 욕에 동생이 화를 내자, 형이 잠자코 타이른다. “사실이잖아, 참아.” 그리고 “왜 그동안 편지를 안했니?”라는 엄마의 야단에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엄마 글자 못 읽잖아요.” “수도사가 애를 봐주고 있는데, 아이가 방귀를 계속 뀌어서 정말 미안해요”라고 고해성사하는 부모를 안심시키려고 신부로 위장해서는 온화하게 다독여준다. “괜찮습니다. 천사들도 방귀를 뀐답니다.” 이상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최고 흥행 시리즈라 할 수 있는 <내 이름은 튜니티>(1971) 시리즈에서 못 말리는 형제 튜니티(테렌스 힐)와 밤비노(버드 스펜서)의 ‘아무 말’ 대화 중 일부다. 이들은 장난처럼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기도 하는데, 특히 건달보다 더 건달 같은 괴력의 보안관이자 거구의 형인 밤비노를 연기한 버드 스펜서의 매력에 흠뻑 빠졌었다. 베니스 출신의 테렌스 힐과 나폴리 출신의 버드 스펜서, 게다가 외모도 전혀 닮지 않았는데 언제나 형제로 나왔던 둘은 <튜니티> 시리즈를 열편 넘게 성공시켰다. 1980년대까지는 이탈리아 최다 관객 동원 영화로 기록된, 이탈리아영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시리즈였다.
뜬금없이 버드 스펜서 얘기를 꺼낸 이유는, 이번호 커버를 장식한 배우 마동석을 봤을 때 즉각적으로 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동석은 2017년 말 이런저런 영화상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지는 못했지만, 실은 <범죄도시> 등을 통해 인기상이나 특별상을 수상하고도 남을 인기를 누렸다. 명백히 <베테랑>(2015)의 ‘아트박스 사장’에서 이어지는 구수하고도 능청스런 언변과, 영화 속에서 팔꿈치에 연고도 바르지 못할 정도로 팔다리 두툼한 몸집의 매력은, 앞서 등장한 충무로의 이런저런 감초배우들과는 달리 주연급인, 전혀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특히 솥뚜껑만 한 손바닥으로 싸대기를 후려치며 범죄자들을 요리하는 그 모습은, <튜니티> 시리즈에서 버드 스펜서가 바위 같은 큰 주먹으로 “맞은 데 또 맞으면 제정신으로 돌아와”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와 함께 악당들의 머리를 쾅 쾅 내려치던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버드 스펜서뿐만 아니라 마동석은 과거 한국 배우들 중 장동휘를 떠올리게도 했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놈들을 언제나 ‘한 주먹’으로 요리했던 그는 특별히 잘생기지도 않았고, 오히려 묵직하고 둔해 보였지만 믿음직한 큰형 이미지로 오래도록 사랑받아왔다. 특히 장동휘와 마동석은 어딘가 깔끔하지 않지만, 그래서 묘하게 선해 보이는 그 눈매와 눈빛이 너무나도 닮았다. 아무튼 좀 늦었지만, 마동석 또한 ‘2017년의 배우’로 선정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에 김성훈 기자가 <챔피언> 촬영현장을 크랭크업 전 단독으로 다녀왔다. 그와의 인터뷰와 현장 분위기는 이번호 <챔피언> 현장취재기를 참조해주길 바란다.
한편, 발간 일정상 앞서 송년호와 신년호도 만들었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12월 28일이야말로 송년 기분이 들어 만감이 교차한다. 문득 <튜니티> 시리즈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고백하고, 6월 민주항쟁을 침 튀기며 얘기했던 87학번 고 신해철과의 인터뷰가 괜히 <1987> 개봉 즈음 생각나, 당시 인터뷰 내용을 살짝 인용하며 마칠까 한다. “난 웨스턴 장르를 좋아했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아니라 <내 이름은 튜니티>쪽이었다. 6연발 총을 쏘아대던 테렌스 힐과 악당들 머리를 쾅 쾅 내려치던 버드 스펜서, 하하하 정말 골 때리는 영화였다. 그러니 어느 모로 보나 나는 깊이가 없는 세대였다. 그런데 또 그런 뎁스(depth) 없는 세대가 대학교에서는 가장 격렬한 운동권이기도 했다. 87학번이라 386으로 치면 ‘꼴번’인데, 어울리지 않게 발레하던 친구들도 돌 던지고, 막 제대한 복학생들이 개구리 교련복 입고 와서 수류탄 투척자세 가르쳐주던 세대였다. 그렇게 세상은 큼지막하게 변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