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배리 젠킨스 / 출연 마허샬라 알리, 알렉스 R. 히버트, 나오미 해리스 / 제작연도 2016년
6년 동안 영화를 수입·배급·마케팅하는 일을 해왔다. 사실 영화에 대한 애정만으로는 버티기 힘들고 외로운 일이었다. 그래도 가끔 <문라이트> 같은 영화와 함께할 수 있었기에 행복한 순간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일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지난해는 항상 체한 것 같은 기분으로 일을 했다. <문라이트>를 처음 본 곳은 2016년 토론토국제영화제 출장에서. 혼자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고 구매를 하는 과정은 설레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외로운 시간이기도 하다. 회의도 결정도 포기도 혼자서 해야 하는 시간. 좋아하는 영화를 구매하는 일도 힘들지만 구매한 뒤에도 개봉과 마케팅에 대한 고민과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수많은 한국영화와 대형 사이즈의 외화 사이에서 좋은 예술영화를 개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이유로 연속 거절을 당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무와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아름답다.” 영화 <문라이트>를 본 지인의 말을 듣고 감사했다. 블랙홀 같은 매력의 이 영화를 이해해주고 사랑해줘서. 인생 영화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도 <문라이트>였다. 내가 수입하고 개봉한 이 영화를 망설임 없이 떠올린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약간은 민망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생 영화’라는 거대한 단어에 솔직하고 싶었고, 나의 솔직한 마음은 <문라이트>로 향했다.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흑인 아이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라는 게 이 영화의 시놉시스였다. 3개의 챕터로 구성된 영화 중 첫 번째 챕터인 ‘리틀’에서부터 바로 빨려들어갔다. 주인공인 외톨이 리틀이 후안 아저씨를 만나면서 따뜻한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을 순간. 후안 아저씨가 처음으로 리틀을 바다로 데려가 수영을 가르쳐주며 “내 손에 기대. 내가 잡아줄게. 절대 안 놔. 넌 세상 중심에 있는 거야”라는 말을 건넨 가장 아름다웠던 바다에서의 순간을 보며 황홀했다. “난 너무 많이 울어서 어쩔 땐 눈물로 변해버릴 것 같다”는 1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산다는 것은 이렇게 힘들고 외롭지만, 후안 아저씨를 만나지 않았다면 주인공 샤이론은 어떻게 버티고 살아갔을까. 산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보내는 위로.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진심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영화를 처음 본 날부터,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작품상을 받으며 충분한 사랑을 받고 개봉 후 1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문라이트>는 내게 격렬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맛보게 해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문라이트>를 처음 만났을 때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지금의 나는 그렇게 변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영화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뜨거운 영화를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김시내 영화 수입사 오드 대표. <문라이트> <홀리 모터스> <언노운 걸> <내 사랑> <나의 소녀시대> 등을 수입, 배급, 마케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