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호의 트립 투 유럽]
[트립 투 이탈리아] 볼테라, 비스콘티가 그린 데카당스의 땅
2018-01-04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죽음과 삶의 공존
영화 <뉴 문>에선 뱀파이어의 도시로 볼테라를 설정했다. 실제 촬영은 볼테라 근처 몬테풀치아노에서 진행.

이탈리아의 오래된 도시를 걷다보면(그곳이 어디든 상관없다), 어느 순간 자신이 거대한 무덤 속에 들어와 있다는 불안을 느낄 때가 있다. 나무 한 그루 없어 생명이라곤 보이지 않는 딱딱한 돌길들(길에 흙이 없어 나무를 심을 수 없다), 몇 세기를 견뎌낸 돌집들, 인적 없는 적막한 분위기는 영락없는 무덤 그 자체다. 중세도시의 밤이면 그 불안은 더욱 강해진다. 돌로 된 거대한 공간, 그 속에 혼자 있다는 격리감은 얼핏 뒷목이 서늘해지는 ‘언캐니’(낯익은 두려움)의 기묘함마저 자극한다. 사실 이런 느낌은 무명의 중세도시뿐 아니라 관광지로 유명한 피렌체, 베네치아 같은 큰 도시의 중심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단, 어둡고 인적이 드문 새벽이면 가능하다. 돌길 위의 발자국 소리만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올 때, 그곳은 이승과 저승 그 사이 어디쯤 되는 듯한 묘한 현기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탈리아에는 그만큼 옛것, 곧 죽은 것을 지금까지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 많다. 역사와 현재가, 다시 말해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대표적인 곳이 이탈리아일 것이다.

볼테라, 뱀파이어들의 패권도시

‘무덤에 왔다’는 느낌은 약간 과장하자면 단테가 산 사람으로서 처음 지옥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긴장과 비슷하다. 못 올 곳에 왔다는 옅은 공포, 하지만 도망가고 싶진 않은 흥분 같은 게 느껴져서다. 7년간 이탈리아에 체류하며, 저 멀리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에서, 또 로마 한복판의 밤길에서, 그리고 토스카나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중세도시에서 ‘언캐니’의 느낌을 반복해서 경험하곤 했다. 그런 경험 가운데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간혹 뒷목을 잡게 하는 가장 ‘서늘한’ 도시가 바로 볼테라(Volterra)다. 로마제국 이전에 토스카나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평야를 두고, 저멀리 산꼭대기에 형성된 고대도시다.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지 도시 이름 자체가 날개, 난다의 의미를 가진 볼(vol)과 땅(terra)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도시가 하늘을 나는 듯 높은 곳에 있다는 뜻이다.

볼테라에 접근하려면 토스카나의 평야를 가로질러, 산으로 올라가는 육로를 이용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토스카나 특유의 야트막한 언덕들, 포도밭들, 해바라기밭들, 그리고 양들을 방목한 평화로운 목초지 등을 지나면, 어느새 눈앞에 펼쳐지는 곳이 강고한 석성(石城)으로 둘러쳐진 볼테라다. 멀리서 보면 산꼭대기가 돌로 변해 있고, 바로 그곳에 인구 10만 명의 도시가 형성돼 있다. 저렇게 멀리, 높게 도시가 형성돼 있을 거라곤 상상하기 어려운 곳이다. 볼테라의 공간적 위계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은 셈이다. 이를테면 영국의 ‘해머 스튜디오’에서 만들던 호러영화 속의 드라큘라 성이 있다면 적격인 곳이 볼테라다. 보통 호러물에서 드라큘라의 성은 세속에서 멀리 떨어져, 그곳이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의아스런 곳에 있지 않은가.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발표되며 세상의 영화 팬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을 때,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로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두 번째 시리즈물인 <뉴 문>(2009)은 봤다. 순전히 볼테라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뱀파이어인 에드워드 컬렌(로버트 패틴슨)은 뱀파이어 사이의 패권가족인 볼투리(Volturi)의 지배를 받고 있는데, 볼투리 집안이 살고 있는 곳이 바로 볼테라다. 볼투리 집안은 세상의 뱀파이어들을 통제하는 권력을 갖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에드워드가 연인 벨라(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죽음을 막기 위해 뱀파이어로서의 삶을 스스로 끝내기로 마음먹고 볼테라로 가는데, 역으로 벨라도 에드워드를 구하기 위해 볼테라로 달려간다. 볼투리 집안이 머무는 곳으로 설정된 궁은 오래된 도시 특유의 견고한 돌집이다. 종교적인 복장의 주민들은 도시에서 뱀파이어들이 사라진 날을 축하하고 있는데, 궁 안에서는 에드워드와 벨라가 볼투리 집안 사람들과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뉴 문>은 뱀파이어들이 살 것 같은 산속의 고립된 도시 볼테라의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십분 이용한 셈이다. 원작 소설에서 뱀파이어의 패권도시로 소개된 곳이 볼테라이고 그래서 영화 속 대사에서도 주인공들이 “볼테라에 간다”고 말하지만, 사실 촬영이 진행된 곳은 토스카나의 또 다른 도시인 몬테풀치아노(Montepulciano)이다. 영화는 고대도시 볼테라의 느낌만 살린 것인데 그 느낌은 비교적 틀리지 않게 전달됐다. 하지만 볼테라를 아는 관객에겐 실망을 안긴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루키노 비스콘티의 <희미한 곰별자리>. 볼테라에서 진행되는 데카당스의 멜로드라마다.

바람 속에 사라져가는 도시 볼테라

볼테라가 영화의 역사 속으로 들어온 건 루키노 비스콘티 덕분이다. 그의 1965년 베네치아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희미한 곰별자리>가 알려지면서다. <희미한 곰별자리>는 아이스퀼로스의 그리스 비극인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변주한 멜로드라마다. 그리스 고전은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가멤논 왕이 아내와 그의 정부에게 살해당하자 딸 엘렉트라가 동생 오레스테스와 함께 부친의 복수를 실행하는 모친 살해의 비극이다. 영화에서 산드라(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모친과 그의 정부가 공모하여, 과학자인 아버지를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에 고발했다고 생각한다. 부친은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했다. 산드라는 엘렉트라처럼 부친에 대한 사랑과 모친에 대한 증오의 감정으로, 살해의 복수심을 키운다. 그런데 오빠 잔니(잔 소렐)는 오레스테스와 달리 모친에 대한 증오심을 별로 갖고 있지 않다. 대신 오누이 산드라를 지나치게 사랑한다. 근친상간적인 이 관계가 비극을 몰고 오는게 <희미한 곰별자리>의 주요 내용이다.

친족살해, 근친상간 같은 파멸의 테마가 <희미한 곰별자리>의 전체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는데, 비스콘티는 이런 부패와 종말의 느낌이 나는 곳으로 볼테라를 선택했다. 그러면서 비스콘티의 이름 앞에 늘 따라다니는 ‘데카당스’라는 수식어는 더욱 분명하게 관객에게 전달되기도 했다. 데카당스(decadence)라는 용어는 ‘떨어지다’(decado)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는데, 이것이 미학적으로 사용되며 추락과 퇴폐의 의미를 갖게 됐다. 썩고 냄새나고 그러면서 떨어져 죽어가는 모든 병든 것에 대한 특별한 애착 같은 것이다. 비스콘티는 볼테라가 데카당스라고 해석했다.

고대도시 볼테라는 바람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영화에서 그 바람은 미래에 불어닥칠 불행의 전조로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 그 강풍 때문에 볼테라는 언젠가부터 도시의 일부 하부가 사라져가는 위기에 놓이게 된다. 이곳은 <희미한 곰별자리>에서도 상징적으로 등장한다. 비스콘티에 따르면 낭떠러지의 도시 볼테라는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그러하듯, 바람처럼 사라져갈 운명이란 것이다. 시간이 정해져 있는 도시 볼테라, 바로 그곳에서 죽음의 운명속으로 내몰리는 질곡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셈이다.

볼테라를 떠올리면 ‘무덤 같은 공간 이탈리아’라는 말이 정말 실감난다. 도시 전체가 암벽 같은 성에 둘러싸여 있고, 또 도시의 입구는 남문인 ‘아치의 문’(Porta all’ Arco), 북문인 ‘디아나의 문’(Porta Diana)에서 보듯 강직한 돌로 특징지어져 있다. 도시 전체가 돌 같다. 견고하지만 생명이 없는 사물 같은 것이다. 그 도시를 걷다보면 로마제국 전사들의 투구가, 또 르네상스 시절 패권도시 피렌체의 공격을 막아내던 볼테라 전사들의 칼과 창이 유령의 휘파람처럼 귓가를 때리는 듯한 환청을 들을 수도 있다. 현재를 살고 있다는 것은 찰나라는 허무함에 빠지기도 할 것이다. 비스콘티의 <희미한 곰별자리>는 그런 역사와 죽음의 데카당스 기운을 온전히 되살려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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