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포스 마주어
2018-01-10
글 : 김혜리|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포스 마주어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appelogen

<고스트 스토리>의 유령은 한 장소에 매여 있다. 아내와 살았던 집의 주인이 몇 차례 바뀌어도 그는 떠나지 못한다. 이윽고 건물도 낡고 해진다. 철거를 앞둔 집 안의 벽은 생채기투성이이고, 유령은 그중 한 틈에 숨겨진 아내의 마지막 쪽지를 꺼내려고 애타게 문설주를 긁는다. 이 장면에서 유령을 둘러싼 벽의 상처들은 캔버스를 구멍내고 베어낸 현대미술가 루초 폰타나의 작업을 생각나게 한다. 네모난 격자에 천을 팽팽히 당겨 씌운 캔버스 표면은, 현재 이곳에 속하는 정해진 크기의 평면일 뿐이지만 물감이 발리면 입체성을 얻고 과거와 미래로 열린다. 그러나 아무런 형상을 그리지 않고 캔버스를 예리하게 가른 폰타나의 칼자국은, 관람자가 화면 뒤쪽의 ‘무’(無)를 직면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찌보면 <고스트 스토리>는 그러한 직면에 이르는 여정이다. 사진 속 작품의 부제는 ‘기다림’(Waiting).



2017. 12/22



“아니, 포스가 언제 잠들었었나?”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이하 <깨어난 포스>)가 개봉한 2015년 나는 부제에 잠깐 의아해했다. 그때까지 마니아가 아닌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스타워즈> 세계에서 포스란 대략 암흑의 진영과 빛의 진영이 번갈아 우위를 점하는 불가해하고 절대적인 힘 비슷한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라이언 존슨 감독의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이하 <라스트 제다이>)는 포스를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비로소 ‘깨어난 포스’라는 표현을 납득하게 만들었다.



거슬러 올라가 보자. J. J. 에이브럼스의 <깨어난 포스>는 1977년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의 스토리 라인을 복제하되 인물들의 다양성을 확충함으로써 21세기에 <스타워즈> 신화가 발뻗을 자리를 확보했다. 사막 행성 출신 고아 루크 스카이워커(마크 해밀)의 자리를 레이(데이지 리들리)가 계승했고, 제국군에서 탈출한 스톰트루퍼 핀(존 보예가)과 농담꾼 파일럿 포 다메론(오스카 아이삭)이 한 솔로의 입지를 변형 계승했다. 레아 공주는 장군으로 변모해 루크의 쌍둥이이면서도 힘에서 배제됐던 과거를 벗어났고, 레아와 한 솔로의 아들 카일로 렌(애덤 드라이버)이 할아버지 다스 베이더를 격세유전한 어두운 인물로 배치됐다. 하지만 J. J. 에이브럼스 감독은 <슈퍼 에이트> <스타트렉: 더 비기닝> <스타트렉: 다크니스> <미션 임파서블3>에서 거듭 보여준 대로, 대중문화 고전을 훌륭히 개정 증보했을 뿐 결코 패러다임을 바꾸는 자리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 바통을 이어받은 <라스트 제다이>의 라이언 존슨 감독은 기대 이상으로 용감했다. 오리지널 3부작의 2편 <스타워즈 에피소드5: 제국의 역습>을 변주하는 대신 J. J. 에이브럼스가 끌어들인 젊고 다양한 캐릭터들을 적극 움직여, 포스의 의미와 시리즈의 세계관까지 혁신해버렸다.



기본적으로 <라스트 제다이>는 새로운 3부작이 입각한 다문화주의와 페미니즘을 보란 듯이 강화했다. 캐스트 편향 해소는 기본이다. <스타워즈> 배틀 장면의 관습인 전투기 편대 조종사들의 몽타주만 봐도 백인 남성 넷에 외계인 하나 정도였던 비율은 간데없고, 백인 남성 조종사가 가물에 콩 나듯 한다. 주연부터 엑스트라까지 인종과 젠더는 고르게 배치 됐다. 나아가 <라스트 제다이>의 스토리는 여성 캐릭터들이 남성 캐릭터들에게 “오버하지 말고 주변을 돌아보라”고 권하는 상황의 연속이다. 레이는 루크와 카일로 렌 사이에서 양쪽을 향해 호소하고, 레아 장군과 홀도 제독(로라 던)은 포 다메론의 경솔함을 타이르고, 로즈(켈리 마리 트랜)는 핀을 깨우친다. 한편 <라스트 제다이>에서 포스는 선택받은 소수가 독점하는 염동력과 마인드 컨트롤 능력이 아니라 무엇보다 연결하는 힘으로 제시된다. 수프림 리더 스노크의 계략이긴 하지만 레이와 카일로 렌이 거리를 초월해 정신적으로 대면하는- 그래서 싸우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시퀀스, 루크가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다른 공간에 현현하는 클라이맥스가 같은 맥락이다. 과거 <스타워즈> 영화에서 표현된 포스의 용례 가운데 라이언 존슨 감독은 은하계에 일어난 불행을 보지 않고도 감지하는 능력으로서의 포스에 주목한 듯하다. 즉 <라스트 제다이>는 포스란 그것을 갖지 못한 자의 운명을 좌우하는 ‘귀족’들의 특권이나 지지하는 정치세력을 보위하는 군사력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새롭게 규정된 포스는 혈통과 계급에 무관하게 누구나 닿을 수 있는 힘이되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계속 탐구해야 할 에너지에 가깝다. 이것이 혁명적인 결단인 까닭은 선행한 6부작을 통해 시스에서 퍼스트 오더로 이어지는 악을 막아낼 유일한 힘을 지닌 제다이 기사단의 존재 이유를 소멸시키기 때문이다. 선악을 떠나 이미 존재하는 정치권력을 호위하는 무력으로서 포스가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조지 루카스의 프리퀄이 심지어 혈중 미디클로리안 농도로 포스의 서열을 정했던 것을 상기하면 지각변동이다. (J. J. 에이브럼스가 3부작 피날레인 9편에서 <라스트 제다이>의 세계관을 뒤집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 7편의 부제에서 ‘깨어난 포스’는 그저 이번엔 제다이쪽이 서브권을 가졌다는 이정표가 아니라, 은하계의 모든 이름 없는 자들에게 잠재된 포스의 각성이 도래했다는 선언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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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라이언 존슨 감독이 시도한 포스의 민주화는 과연 <스타워즈>와 제다이를 동경해온 팬덤에 대한 배신일까? 이 현대 설화의 저작권을 조지 루카스 개인에게 전적으로 부여한다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야를 넓혀보면 원래 포스는 상속되는 사유재산이 아니다. 제다이들은 원칙상 결혼하거나 아이를 갖지 않았으므로 포스는 유전될 수 없다. 남의 힘까지 빼앗아 자신이 절대적 최강자가 되고자 욕망한 인물은 아나킨 스카이워커였고 그가 아미달라 여왕과 비밀 결혼해 레아와 루크 쌍둥이를 낳음으로써 스카이워커 집안끼리의 내분이 전쟁사를 써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특별히 높은 미디클로리안을 타고난 문제의 아나킨은 은하계의 혼돈을 꾀한 시스 로드에 의해 인위적으로 처녀수태된 존재로 설정돼 있기도 하다. 요컨대 스카이워커 가문의 시대는, 긴 은하계 역사에서 예외적 챕터일 수도 있다. 만약 이 해석에 동의한다면 <스타워즈>의 세 번째 3부작은 공화주의와 다문화주의를 명실공히 실현해 흐트러졌던 우주의 균형을 회복하는 사필귀정의 여정이 돼도 이상할 게 없다. 과연 선택받은 혈통과 액션 영웅만 좇던 전작들과 달리 <라스트 제다이>는 처음으로 다른 계급으로 시야를 확장한다. 로즈와 핀이 마스터 코드 브레이커(베니치오 델 토로)를 찾으러 간 칸토 바이트 행성 풍경은, 은하계 한쪽에는 전쟁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집단과 그 이면에 노예처럼 착취당하는 어린이와 동물들이 있음을 보여준다. 코드 브레이커 자신은 아무런 정치적 기준 없이 오직 이윤을 추구하는 상인 집단을 대표한다. 영화 마지막에 빗자루를 광선검처럼 놀리며 별을 바라보는 평범한 소년의 이미지는 타투인 행성에서 창공을 올려다보던 오래전 젊은 루크의 모습과 겹치면서, ‘스페셜 원’의 서사를 폐기하며 <스타워즈> 설화를 진화시키고자 하는 라이언 존슨과 제작진의 희망을 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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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의 레이는 지난해 <블레이드 러너 2049>의 K(라이언 고슬링)와 더불어, 선택받은 한 사람을 중심에 둔 이야기로 지탱되어온 할리우드 SF 판타지가 드디어 전환점을 맞이했음을 보여주는 캐릭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고많은 은하계의 무명씨 가운데 레이가 광선검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던 조건은 역설적으로 그가 누구와의 연도 없이 오직 자력으로 생존해온 고아로서 잃을 게 없다는 점이다. 레이는 원래 살아가는 것 외의 목적이 없었고 선택된 자의 소명의식에도 속박되지 않는 백지상태다. 전설적 존재인 루크 앞에서도 레이는 맑고 곧게 믿음에 집중한다. 여전히 다음 편에서 레이의 출생의 비밀이 드러날 거라 믿는 팬도 있겠지만, 나는 만약 그런 반전이 있다면 3부작의 자멸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루크와 레아의 전례에 비추어 레이와 카일로 렌을 숨겨진 남매로 추측하는 설은 <깨어난 포스>부터 들려왔다. 그러나 <라스트 제다이>가 두 사람을 함께 잡은 화면은 역대 <스타워즈>를 통틀어 가장 에로틱하고, 레이와 카일로 렌은 순간순간 서로에게 강력하게 이끌리는 이성애자 남녀에 가까워 보인다. (루크와 레아의 키스를 들어 반박한다면 재반박할 근거는 없다). <깨어난 포스>에서 카일로 렌은 “가면 쓴 괴물”이라는 레이의 면박에 처음으로 마스크를 벗었고 이번 영화에서도 줄곧 레이를 원하는 표정으로, 구해달라는 신호가 담긴 모호한 눈빛으로 응시한다. 카일로 렌의 마음을 돌리려는 레이의 간절한 호소에서 “나는 나쁜 남자인 당신을 바꿔놓을 수 있어”라는 로맨스 서사의 요소를 읽는 관객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암흑과 빛의 신세대 기수인 두 인물의 공통점은 과거와의 절연이다. 그러나 둘의 동기는 정반대다.



다스 베이더의 혈통에서 자신이 특별하다는 근거를 찾는 카일로 렌에게는 권위로부터의 인정이 중요하고, 궁극적으로는 ‘아버지’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앞 세대를 제거할 수 있다. 반면 레이는 과거가 없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자유롭다. 레이에게는 모델이 아니라 선생님이 필요할 뿐이다. 외부에 의지하지 않는 단단한 중심을 가진 레이는 불안하지 않기에, 로즈의 대사처럼 대립하는 대상을 없애지 않고 필요한 바를 취할 수 있으며, 사랑하는 것을 지키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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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도 <라스트 제다이>를 혹평하는 목소리가 높다. <라스트 제다이>에 실망을 표하는 관객은 대략 세 그룹일 터다. 우선 각종 출판물과 외전을 통해 그렸던 전개에서 <라스트 제다이>가 이탈한 데에 거부감을 갖는 골수팬들.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1999) 개봉 당시 대니얼 월레스의 연표 등을 참조해서 썼던 ‘<스타워즈> 연표’를 찾아보니, 한 솔로와 레아는 쌍둥이 제이슨과 제이나, 셋째 아나킨을 낳았고 루크는 제다이 아카데미의 교장이 된다고 정리돼 있다. 하지만 집착할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도 아닌 성싶다. 둘째, 여성과 비백인이 주요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반감을 갖는 수구 취향의 관객이 있을 것이다. 충성스런 팬이라서 화가 났다고 믿지만 실은 백인 남성 중심 서사에 깊게 동일시해 온 교집합도 있겠다. 끝으로 다른 모든 영화에 대해 그렇듯 완성도와 재미에 문제를 느끼는 경우다. 여기에 대해서는 충분히 표를 던질 수 있다. <라스트 제다이>는 기본적으로 세 갈래로 나뉜 인물들이 전부 패배하고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는 이야기다. 쾌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세 파트가 교차편집된 구조도, 물 흐르듯 플롯이 축적돼 클라이맥스에서 폭발하는 <깨어난 포스>에 비하면 다분히 설명적이다. 때로는 보조를 맞추기 위해 개별 에피소드가 늘어지는 인상도 든다. “모조리 없애버려라!”라는 헉스 장군(도널 글리슨)의 엄포는 하도 여러 번 반복돼 나중에는 별로 무섭지 않다. 하지만 이 결함들은 두 번째 관람에서는 훨씬 미미하게 느껴졌다. 작은 불만들에도 불구하고 <라스트 제다이>는 <스타워즈>가 박물관에 속한 프로젝트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관객은 궁금증을 되돌려받았고, 시리즈는 미지의 미래를 선물받았다.



<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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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1990년대 초반 <적과의 동침>의 조셉 루벤 감독은 연기하다 자주 눈물을 터뜨리는 줄리아 로버츠를 가리켜 “세상에서 피부가 가장 얇은 인간”이라고 불렀다. 지극히 미국적인 활달한 미인이면서도, 감정적으로 다치기 쉬워 보인다는 점은 로버츠를 고전적 스크린 스타로 만든 큰 요인이기도 하다. 영화 속 캐릭터가 격앙될 때면 줄리아 로버츠의 이마에는 핏대 두줄이 도드라지고 코끝이 붉어진다. 그리고 관객도 그녀에게 동조할 태세가 돼버린다. <원더>의 이자벨(줄리아 로버츠)은 유전적 문제로 27번의 수술을 받고 겨우 살아난 어기(제이콥 트램블레이)의 엄마다. 처음 취학하는 어린이의 부모라면 모두 떨리겠지만, 남들과 다른 얼굴을 가진 아들을 홀로 학교에 보내게 된 이자벨은 도살장에 양을 데려가는 마음이다. 어느 날 교문 앞에서 얼굴 가릴 헬멧을 들고 어기를 기다리던 이자벨은, 처음으로 생긴 친구와 나란히 걸어오는 아들을 본다. 놀라움에서 호기심으로 다시 환희를 거쳐 울먹임으로, 단 몇초 동안 줄리아 로버츠의 얼굴은 한 단락 분량의 대사를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