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 출연 마에다 고키, 마에다 오시로, 오다기리 조, 오쓰카 네네 / 제작연도 2011년
영화가 시작되면 가고시마의 아침이 보입니다. 아이가 일어나 화산재를 털어내고 학교 갈 준비를 합니다. 카메라는 충실히 그의 등굣길을 따라갑니다. 집에서 소일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고 다정한 엄마,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 그리고 예쁜 선생님이 있는 아이의 일상은 그저 평화로울 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잔잔한 일상의 이면에는 아이의 무시무시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화산이 폭발하여 가고시마가 없어져 후쿠오카에 떨어져 살고 있는 아빠와 동생과 다시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그렇게 아이는 천재지변이라는 기적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제 기적이 필요한 아이들이 모입니다. 그림을 잘 그리게 해달라고, 좋아하는 선생님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배우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가족이 함께 모여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아이들은 기적과 같은 거창한 것을 바라며 길을 나서지만, 어느 순간 자신들이 원하는 기적이라는 것은 이기적인 바람에 지나지 않으며, 좀더 넓은 세상과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지 않으면 안된다는 깨달음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너무나 아이다운 바람을 말하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부지불식간에 어른과 같은 고독감이 오고갑니다. 아이가 수영장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가는 장면이라든지 배우가 되고 싶은 아이가 여행에서 돌아와 가만히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장면들은 아이와 어른을 따지지 않고 한 인간의 내면을 정직하게 비춥니다. 더이상 산타의 존재를 믿지 않는 아이가 된 것 같은, 성장의 씁쓸한 이면을 비춥니다. 결국 그들의 기적은 지금 가지고 있는 자신의 환경과 조건을 이해하고 이에 순응할 때 일어납니다. 어제와 똑같은 나인 것 같지만 미묘하게 성장해 있는 나와 함께 살아가는, 앞으로의 삶은 어쩌면 기적의 연속인 것입니다.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지금 3살인 딸이 10살이 되었을 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만들었습니다. 세계는 풍요롭고, 일상은 있는 그대로 아름다우며, 생명은 그 자체로 ‘기적’인 거야, 그렇게 딸에게 말을 걸 듯 만들었습니다.”(도서 <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감독은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마지막 장면을 일상의 풍경으로 채웁니다. 마치 감독의 아이라도 된 심정으로 그가 차분히 내어주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봅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마음속이 어떤 충만함으로 꽉 차 오릅니다. 영화란 무엇일까요? 영화를 통해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요? 어떨 때는 경험해보지 못한 자극이기도 할 테고요. 어떨 때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한순간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제 막 데뷔작을 내놓은 감독으로서 어쩌면 소박한 야망인지도 모르겠습니만 지금 이 일상의 관성을 잠시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는 것,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삶을 그 자체로 느끼는 것, 이것이 제가 영화를 통해 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상은 소중하고 지금 이대로 충분히 좋다, 기적 같은 것을 바라지 않아도 지금 이 자리에서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 그런 삶의 아름다움을요.
김양희 영화감독. 데뷔작 <시인의 사랑>(2017)으로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과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