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죄와 벌>(이하 <신과 함께>)이 공개되기 전부터 김동욱에 관한 소문이 들려왔다. 그가 맡은 캐릭터의 비중이 예상외로 크고, 훌륭한 연기를 펼쳤다는 것. 실제로 그가 연기한 수홍은 극 중 가장 감정 변화가 큰 인물이며, 어머니(예수정)와의 현몽 장면을 포함해 굵직한 감정 신이 영화의 주요 대목에 포진해 있다. 개봉 후 관객 반응은 이러한 예상치를 뛰어넘었다. <신과 함께>에서 가장 강력한 드라마를 담당한 그가 진짜 주인공이라거나 주연배우 중 가장 돋보였다고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열연에 대한 극찬뿐 아니라 오랜만에 배우가 주목받게 된 상황을 응원하는 이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김동욱은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2007)과 영화 <국가대표>(2009)로 눈도장을 찍었지만 그 이후 대중적으로 주목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재능에 비해 과소평가받고 있다는 아쉬움을 남기던 연기자가 빛을 보는 순간은 그 자체로 어떤 관객에게는 드라마가 된다. <신과 함께>가 천만 관객을 달성하기 하루 전, 배우 김동욱을 만났다.
-원래 홍보 활동에 거의 참여하지 않다가 개봉 이후에 오히려 바빠진 것 같다. 지방 무대인사까지 돌 예정이라던데, 반응이 좋은 것을 체감하고 있나.
=다른 배우보다 홍보를 늦게 시작해서 열심히 해야 한다. (웃음) 가장 실질적인 반응은 무대인사에서 관객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수홍과 어머니의 현몽 장면이 관객에게 주는 임팩트가 역시 컸다. 워낙 중요한 신이라 촬영 당시 부담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그 장면이 중요하다는 것은 시나리오를 본 모두가 공감했을 것이다. 촬영 일주일 전부터는 그 장면을 촬영하는 게 꿈에도 나오고, 촬영 전날 한두 시간밖에 못잘 만큼 예민하게 준비했다. 그날 그 신 하나만 찍는 게 아니었다. 넉넉지 않은 시간에 빨리 집중해서 몰입하고 원하는 수준의 감정을 끌어낸 후 오케이를 받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초반에는 긴장하느라 조금 경직된, 만족스럽지 않은 연기가 나왔다. 잠시 촬영을 중단한 후 방에서 따로 김용화 감독님과 긴 대화를 나눴다. 당시 내가 연기했던 감정들도 충분히 좋고 괜찮지만, 이 순간만큼은 어린 가장으로서 강인한 모습보다는 어린아이로 돌아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야기하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어머니와의 수화를 틀려도 상관없으니 감정이 올라오는 대로 편하게 해보자고도 했다. 감독님의 말에 매우 공감이 갔다. 현장으로 돌아가서 ‘그동안 연습을 했으니 자연스럽게 나오겠지’라는 마음으로 다 내려놓고 나오는 대로 연기했다. 그렇게 갔던 첫 테이크에서 오케이가 났다.
부담을 이겨냈다
-연기하기가 까다로운 장면이 많았다. 지나간 슬픔에 새로운 눈물을 흘리지 말자고 관심병사 원 일병(도경수)에게 조언을 하던 인물이 억울한 죽음 후 원귀가 되었다가 마지막엔 복수를 포기한다. 가장 감정 변화가 잦은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잠깐 보여지는 과거 장면이지만 원 일병과 함께 기타치며 노래하거나 행군할 때 모습이 연민에 젖은 감성적인 인물로 보이기보다는 쿨하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정하는 시간이 짧아질 것이고, 미련 없이 털고 떠나는 다짐이 확고하게 들 것 같았다. 어떻게 그리 쉽게 용서를 하냐고 물어보는 분도 있지만 이건 용서가 아니다. 상황과 복수의 부질없음에 대한 인정이다.
-사실 진짜 나쁜 놈은 박 중위(이준혁) 아닌가. 왜 원귀가 된 후 박 중위가 아닌 원 일병을 쫓아다닌 것 같나.
=박 중위와의 관계와 원 일병과의 관계는 좀 다르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라고 먼저 분노하게 되는 대상은 아무래도 정서적으로 거리가 가까웠던 원 일병이다. 가까웠던 만큼 분노도 더 깊어진 거다. 박 중위에 대한 감정은 아마 2부에 이에 관한 이야기가 좀더 등장할 거다.
-CG 비중이 높은 작품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며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었나.
=기술적인 부분은 얼마나 빨리 적응하느냐의 문제다. 현장에서 많은 리허설과 사전작업을 통해 충분한 기회가 주어진다. 작품에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이미 검증된 베테랑 선배들과 함께하는 가운데 수홍이라는 캐릭터가 옥에 티로 비춰지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훨씬 컸다. 자홍 역의 (차)태현이 형, 예수정 선생님이 잘 이끌어온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에 등장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는 역할이다. 수홍을 통해 세 모자의 드라마가 힘을 얻어야 한다. 다른 작품에서 받았던 과제와는 또 달랐다.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는 부담 외에 현장에서 연기를 즐기는 순간도 분명 있었을 텐데.
=서로 다른 두 감정이 계속 공존하는 것 같다. 동료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며 재미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면 쾌감이 느껴지고, 완성된 버전을 기대하게 된다. 사실 그런 장면은 2부에 많이 등장한다. 1부의 자홍에 대한 재판과는 좀 다른 그림이 나올 거다.
연기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하고 있다
-<신과 함께>를 만나기 전에 배우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한 시기가 있었다고. 최근 필모그래피를 보면 흥행성적이 아쉬워도 배우의 연기가 별로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왜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내가 연기를 못해서 흥행이 안 됐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스스로의 연기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예를 들어 <후궁: 제왕의 첩>(2012)과 드라마 <하녀들>(2014)의 연기를 비교해봤는데 내가 고민하고 잘하고 싶었던 만큼 진짜 성장을 했나 싶은거다.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다는 고민이 생겼다. 더 완벽하게 해내려면 스스로에게 가혹하고 냉정해져야 하는데 그런 것이 많이 힘들었다. 기다림은 배우로서 평생 안고 가야 할 문젠데 내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본질적인 고민도 있었다.
-그동안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최근 쏟아지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며 드는 생각은.
=<신과 함께> 개봉 후 일주일 동안은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관객수도 그렇고 무대인사할 때의 관객 반응, 이렇게 만난 기자분들이 해주는 말씀, 주변 지인들이 캡처해서 보내주는 네티즌 반응 같은 것을 보며 살짝 안도감이 생겼다. 아, 그렇게까지 걱정할 수준은 아니구나. (웃음) 아직도 지나치게 걱정을 한다는 건 좋게 봐준 분들에 대한 불신이 아니겠나. 그래서 굉장히 감사하다.
-이번에 많이 나오는 반응 중 하나가, 김동욱은 원래도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는데 좋은 기회를 못 잡다가 이제야 진가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후궁: 제왕의 첩>에서 보여준 연기를 아주 인상 깊게 봤다.
=작품을 할 때마다 후회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평가와 판단은 보는 사람의 몫이지 않나. 좋게 봐준 분들이 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내가 해온 것이 나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고 아주 조금씩은 성장해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연기에 대한 고민을 정말 정말 많이 하고 있다. 배우로서 더 발전하고 싶고 연기를 더 잘하고 싶고 연기 잘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난 언제쯤 저 정도의 내공을 갖출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런 가운데 무언가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좋은 결과물이 있었다는 게 다행이다. 하지만 원래 연기를 잘한 건 아닌 것 같다. 부끄럽다. (웃음)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가야 하지 않을까.
-사실 처음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이 11년 전 작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제대로 주목받을 기회가 늦게 찾아온 것 같다. 라이징 스타에게는 ‘스타로 성장하는 단계’ 같은 게 있지 않나. 비슷한 풍의 드라마에서 조연을 몇번 더 하고 주연 자리까지 올라가게 된다거나 하는. 그러다가 유명 감독의 기대작에도 출연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 길을 가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행보를 보면 <커피프린스 1호점> 이후 반년 넘게 시트콤을 했고, 뮤지컬 및 영화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다양한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뻤고 그냥 하고 싶은 작품을 선택했던 것 같다. 정말 작은 것에 큰 만족을 느끼며 행복했고, 그게 또 중요한 시기였다. <커피프린스 1호점> 이후에 작품을 선택할 때, 이 작품이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을 만한가에 대한 계산이 없었다. 그게 무모함일 수도, 어리석음일 수도 있는데 시행착오를 겪으며 많은 공부가 됐다. 음, 계획적이지 못해서 아쉽다. (웃음)
-계획적으로 입대 전에 입지를 다졌다면 작품 선택권이 훨씬 넓어졌을 거다. 후회는 없나.
=후회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내가 멋모르고 그랬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공부가 많이 됐다. 요즘은 나에게 기회가 다시 오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커피프린스 1호점> 이후 11년이나 지났다. 작품 선택에 있어 그때보다 신중해진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 아주 다양한 현장을 경험한 것이 분명히 배우로서 어떤 자산이 됐을 텐데.
=그렇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얻은 것은 배우로서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는 법이었다. 여러 작품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이 쌓였고, 예상치 못한 환경과 상황에 대해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됐다. 그 시간들이 날 그렇게 만들었다.
선택들
-그동안 뮤지컬 무대도 여러 번 섰는데 어떤 경험이었나.
=나에게 정말 큰 도전이었다. (<복면가왕>을 보니 노래를 꽤 잘하던데?) 노래를 잘하는 것은 뮤지컬에서 기본이지 장점이나 무기가 아니다. 노래를 소화하면서 연기까지 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더라. 당시에 치열하게 싸우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해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무대에 서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배우로서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실패로 인해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마음가짐으로만 작품을 해서는 안 되겠더라. 실패로부터 무언가를 얻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지만 결과물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가진 전부를 작품에 온전히 쏟아내어 확실히 잘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무모하게 도전하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됐다. 정말 많은 사람이 연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내가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한다는 건 오만한 생각이다.
-제대 후 가장 고민된 건 무엇이었나. 완전히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을 텐데.
=입대 전의 내가 배우로서 그렇게 주목받거나 이슈가 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제대 후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적었다. (웃음) 대신 가장 큰 고민은 이런 거였다. 내가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을 만큼의 기회가 다시 주어질까? 20대에는 20대 배우라는 희소성과 어드밴티지가 있었지만 제대 후에는 30대다. 30~40대에는 쟁쟁한 선배들밖에 없다. 이제는 온전히 실력으로만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그만큼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제대 후 1년 반 정도가 지난 2016년 1월 장인엔터테인먼트에서 키이스트로 이적했다. 배우에게 소속사를 옮기는 건 중요한 변화다.
=예전 소속사에 진선규 형, 오대환 형, (김)고은이 등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 동문이 많았다. 역시 같은 학교 출신인 대표님은 후배들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처음 배우를 시작할 때부터 10년 이상 함께한 분이었다. 소속사와 헤어질 당시 그런 이야기를 진지하고 깊게 나눴다. 내가 회사에, 회사가 나에게 지금까지 쉬지 않고 최선을 다했지만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시너지 효과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조금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 헤어진다 해도 영원한 이별은 아니니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헤어지는 시기가 있다면 더 늦기 전이 아닌 지금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다른 소속사를 생각하게 됐고, 그 무렵 감독님에게 <신과 함께> 제안도 받았다.
-그렇게 <신과 함께>라는 큰 프로젝트에 합류하고 소속사도 옮긴 시기를 거친 후, 지난 2017년을 돌이켜보면 어떤 시간이었나.
=인간 김동욱으로서 참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이었다. 내가 <신과 함께>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의문이 들 만큼. 이 캐릭터를 제안받은 2016년부터 가장 큰 목표이자 중요한 과제는 김수홍을 연기하는 것이 됐다. 다른 고민 때문에 시간을 빼앗기거나 흔들리는 것은 너무 위험하고 무책임했다. 어떻게든 버티며 강해질 수밖에 없었고, <신과 함께> 뒤에 찍은 작품도 그 힘으로 해나갈 수 있었다. <신과 함께> 때문에 다시 한번 단단해진 것 같다.
-올해는 어떤 작품에서 만날 수 있나. 이미 촬영한 작품도 있다고.
=<신과 함께 2>에 등장한다. 해원맥(주지훈), 덕춘(김향기), 성주신(마동석)이 이승의 이야기를 담당하고 수홍과 강림(하정우)은 저승의 이야기를 맡는데 사실 이게 맞물려 있다. 드라마가 풍성한 작품이 될 것 같다. 정우성, 하정우, 이정재 선배가 기획·제작한 영화 <트레이드 러브>에도 출연한다. <신과 함께> 끝난 후 (하)정우 형이 제안해줬다. 신인감독들에게 좋은 기회를 주고 열심히 좋은 작품을 만들자는 취지라더라. 취지도 너무 좋고 나에게 그런 제안을 해준 것도 감사해서 선뜻 참여한다고 했다. 또 <탐정2>(가제)에 우정출연한다. 분명히 우정출연으로 시작했는데 우정출연이라기에는 분량이 좀 많다. 마치 <신과 함께>의 염라대왕(이정재)처럼.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