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판매원 서영(장리우)은 손님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항의를 받는다. 화를 내는 것도 지친 상사 앞에 서영은 기계적으로 무릎을 꿇는다. 서영은 몰래 마트 창고에 숨어들어 영양제를 훔친 뒤 병원에 입원 중인 엄마에게 간다. 병원에 당도하자마자 밀린 병원비 독촉을 받은 서영은 고이자 대출로 병원비를 갚는 데 무력하게 동의한다. 병실의 엄마는 다른 환자들과 음악을 틀어놓고 에어로빅에 한창이다. 엄마 자리에 방치된 음식을 몽땅 쓰레기통에 버린 서영은 마치 선고라도 하듯 엄마에게 사라져달라고 말한다. 지체장애를 지닌 서영의 오빠는 강박적으로 채소를 다듬고 재봉을 한다. 엄마의 실종 소식을 들은 오빠는 서영이 언젠가 자신도 버릴 거라 여긴다.
‘병든 엄마와 장애를 가진 오빠를 부양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하는 여자’, 서영이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장에서 흔히 상상되는 표현이 캐릭터에게서 몽땅 거세되어 있다. 서영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과묵함을 넘어 감정의 갑옷을 입은 무사처럼 보인다. 상황에 그대로 몸을 맡겨버리는 서영의 태도는 엉뚱하고 순수하면서도 때로는 말할 수 없이 잔혹하다. 흡사 미술관의 퍼포먼스를 벌이는 예술가처럼 서영은 공간의 리얼리티를 이동시키며 상황에 거리를 두도록 유도한다. 꼭 필요할 때만 걸음을 떼는 신중한 카메라가 적절히 보조를 맞춘다. 전작 <달을 쏘다>(2013)에 이어 노동자들의 관계를 그리는 감독 특유의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41회 서울독립영화제 우수작품상, 17회 장애인영화제 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