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문>이 국가폭력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였다면 <공동정범>은 국가폭력을 성찰하는 다큐멘터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인간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랐다.” 이혁상 감독의 얘기다. <두 개의 문>(2011)의 후속작 <공동정범>은 2009년 1월 20일,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망루 농성을 벌이다 구속·기소된 철거민 5명(이충연·김주환·천주석·지석준·김창수)의 기억과 증언을 통해 그날의 진실을 규명하려 한다. 망루 안에서의 진실과 별개로, 김일란 감독과 이혁상 감독은 그들의 기억을 조립하는 과정에서 철거민들의 갈등을 본다. 용산지역 철거민대책위원장이었던 이충연씨와 용산에 연대 농성을 갔다가 구속된 철거민들은 출소 이후 죄책감과 원망과 의심 속에서 멀어진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논쟁적인 질문을 꾸준히 던져온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의 두 감독은 <공동정범>을 통해 질문한다. 우리가 보지 못한 것과 보려 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한편 지난해 위암 수술을 받은 김일란 감독은 다행히 수술 이후 건강한 모습으로 <공동정범>의 개봉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신마취 때문인지 김일란 감독의 기억력이 전보다 떨어진 것 같다”며 농담을 던지는 이혁상 감독이나 기자회견 사진을 검색하면서 “사진이 암환자처럼 나왔다”고 농담하는 김일란 감독이나, 걱정과 달리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지난해 김일란 감독이 위암 수술을 받았다. 이혁상 감독 역시 옆에서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
=이혁상_ 마음고생으로 살이 빠지진 않았고 일란 감독이 남긴 밥을 먹느라 살이 더 찐 것 같다. (웃음)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박종필 감독이 암으로 세상을 뜨면서 독립다큐멘터리 감독, 인권활동가들의 건강권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김일란_ 당장 제도나 장치가 생기긴 어렵겠지만, 녹색병원과 인권재단 사람이 연계해서 인권활동가들의 건강검진을 지원하는 방식들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그것 역시 최소한의 장치지만.
-<두 개의 문> 이후 7년이 훌쩍 흘렀는데, <공동정범> 개봉이 늦어진 이유가 있나.
이혁상_ <두 개의 문> 2편을 찍자는 생각은 2013년부터 했다. 만 3년 동안 제작했고, 2016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첫 공개하면서 개봉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국정이 혼란스런 상황이었고, 탄핵과 재선이 이어지면서 개봉 시점을 못 잡고 있었다. 이왕 늦어진 거 용산참사 9주기가 되는 2018년 1월 20일에 맞춰서, 새로운 정권에서 무언가가 시작되려 하는 시점에 개봉하는 것도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다.
-<두 개의 문>에 나오는 박진 활동가의 인터뷰 중에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두 부류다. 망루 안에서 잡혀갔거나 죽은 사람들. 이 사람들만 진실을 보았다”는 말이 있다. <두 개의 문> 이후 용산참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다시 만든다면 그건 망루에서 살아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여야 한다고 생각했나.
이혁상_ 2013년 1월 31일 농성자들이 특별사면으로 출소하는 순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했다.
김일란_ 용산참사 4주기 추모 영상을 준비하면서부터 혁상에게 <두 개의 문2>를 만들자고 꼬였다. 유가족을 다시 위로하는 작품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두 개의 문> 개봉을 마무리할 즈음부터 하기 시작했다. 유가족은 원해서 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유가족이 되어 있는 거잖나. 이충연씨의 부인이자 ‘용산 며느리’로 불리는 정영신씨를 지켜보면서 유가족이면서 활동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그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러한 유가족 이야기에 대한 감정적 동기가 우선 있었고, 드론 촬영을 통해 용산참사 4주기 추모 영상을, 원혼들이 수풀이 우거진 남일당 일대를 떠돌고 있는 것 같은 고스트 필름으로 찍어보자는 얘기를 나눴다. 그렇게 추모 영상을 만들고 얼마 안 있어 1월 31일 철거민들의 특별사면이 이루어졌다. 그러면서 <공동정범> 제작의 실제적 계기가 마련됐다.
-망루 안에서의 진실을 듣고자 시작했지만 시간이 흘러 목격한 건 출소한 농성자들 내부의 갈등이었다.
김일란_ 영화의 전체적인 문제의식이 이동하게 된 건 세월호 참사 이후였다. 당시 세월호참사와 관련해 인권활동가들이 반복적으로 이야기했던 구호가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끝까지’였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용산참사를 돌아봤을 때, 유가족뿐만 아니라 지옥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그러면서 이충연씨를 주인공으로 하려던 이야기가 지금의 5명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어느 날 김주환씨가 카메라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이충연씨에 대한 서운함을 표현하더라. “뭐가 그렇게 서운하세요?”라고 묻자 “왜 우리에 대해선 이야기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 그때는 ‘우리’가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우리, 다 용산 피해자잖아요.” “응, 용산 피해자는 맞는데, 왜 우리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지 모르겠어.” “우리가 누구예요?” “연대 온 사람들.” 그 순간 번뜩 정신이 들었다.
-그전까지는 용산과 용산에 연대 농성 온 비용산 철거민들을 나누어 생각하지 않았나.
김일란_ 그랬다. 언론이 좀더 주목하는 사람과 좀더 주목하지 않는 사람. 혹은 좀더 귀기울여 듣게 되는 목소리와 배제되는 목소리. 거기서부터 비롯되는 긴장이 있다. 김주환씨에게 ‘우리’가 강조되는 게 왜 중요하냐고 물었을 때 “우리가 더 피해를 봤으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왜 모두가 피해자인 상황에서 ‘우리가 더 피해를 봤잖아’라고 말씀을 하시는 걸까, 이 감정은 뭘까, 이 감정을 왜 우리한테 강조하고 싶은 걸까, 그 질문에 꽂혔다. 연대 농성한 철거민들의 이야기도 충연씨만큼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하게 됐다.
-<두 개의 문>에서도 경찰특공대와 농성자들의 관계를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로 규정하는 것을 경계했고, <공동정범>에서도 구속 농성자들을 국가폭력에 맞서 싸운 정의로운 피해자의 자리에만 국한시키지 않는다.
김일란_ 그런 질문을 발견하는 게 훈련이 돼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이다. 누가 어떤 공간에서 어떤 이유로 배제되고 있나. 그 사람을 배제하는 힘은 뭔가. 배제의 메커니즘은 뭔가. 소수자로서 훈련된 감각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그런 배제를 읽어내고 질문을 하는 게 익숙한 것 같다.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가해자가 있고, 특정 공간으로 들어갔을 때 논쟁이 될 수 있는 가해자가 있을 때, 이 긴장관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 특정 공간과 맥락을 살피는 것 역시 페미니즘 안에서의 문제설정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페미니즘영화인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우리 두 사람을 훈련시킨 페미니즘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질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김주환씨가 얘기하고 싶었던 것도 결국 나의 서사가 용산참사에서 빠져 있다는 거다. 자기 지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연대했던, 서로 돕고 싶었던 그 마음의 서사가 빠져 있던 것에 대한 서운함. 그걸 초반엔 우리도 잘 읽지 못했다.
-이충연씨와 비용산 농성자 네명의 의견차, 시각차가 극명하다. 사실 집안싸움은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그 대립각을 날카롭게 보여주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었을 텐데.
이혁상_ 게이로서 성소수자로서 오랫동안 살아왔고 그 과정에서 나 역시 대의명분에 밀려나는 존재라는 자각을 늘 해왔다. 그래서 용산참사 생존자 내부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구도에도 접속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진상규명이라고 하는 어찌 보면 실체 없는 목적을 위해서 구성원들 개인의 상처나 감정을 들여다보지 않는 상황이 운동 진영 내부에서 반복돼왔다. 우리가 이걸 이야기하지 않고서 <공동정범>을 만들 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순결한 유가족이자 피해자인 이충연,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진실을 찾길 바라는 이충연의 스토리로 갔다면 그것이야말로 다큐멘터리의 윤리에서 벗어나는 일이었을 거다. 정면돌파가 필요했다.
김일란_ 집안싸움이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공동정범>을 만들면서 사적 다큐멘터리를 찍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운동 진영의 내밀한 이야기, 집안 이야기를 찍고 있는 느낌. 그렇다면 ‘너의 개인적인 집안 이야기를 내가 왜 봐야 해’라는 질문이 우리 작품에도 해당된다고 생각했다. 이 갈등을 보여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이야기를 사회화해야만 하는 이유는 뭘까에 대해 치밀하게 고민해야 했다. 결론은 그거다. 이것이 개인적인 갈등이 아니라 용산참사라는 국가폭력이 해결되지 않고 축적돼온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이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영화를 시작하는 이유라는 것.
-연대 농성을 했던 사람들이 죄까지 연대해서 물게 된 상황에 주목하면서 제목도 <공동정범>으로 지었다. 공동정범이라는 법적 개념을 통해 더 논의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
이혁상_ 공동정범은 이전부터 많은 조직 사건에 쓰였다. 특히 공안 사건이나 운동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활용된 법이다. 철거민 운동 조직을 뿌리뽑으려고한 국가의 시도를 공동정범이란 개념을 통해서 환기시켰으면 했다.
김일란_ 공동정범이 조직 사건에서 어떻게 정치적으로 적용되는가가 문제인 거지, 공동정범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조직을 와해시키거나 압박 기소를 하거나 사건을 키우기 위해서 검찰이 과잉 기소를 할 때는 문제가 되는데, 그렇다면 용산참사는 공동정범으로 기소할 사건인가에 대해선 법적 논쟁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당시 검찰의 기소 과정에 여러가지 문제가 많았다. 용산참사 담당 부장검사였던 정병두는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유가족 동의도 없이 부검을 했고, 수사기록 3천쪽도 내놓지 않았다. 공동정범이란 개념을 통해서 사건의 기소 당시부터 문제제기를 다시 하면 좋겠다는 야심이 있었다. 그런데 공동정범을 검색하면 자꾸 박근혜, 최순실이 연관 검색어로 뜨고 있다. (웃음)
-<두 개의 문>에선 경찰특공대의 출동 재연 영상이 스릴러영화의 푸티지 같은 느낌을 줬는데, <공동정범>은 비밀 혹은 반전을 숨기고 있는 스토리텔링 자체가 장르영화의 방식 같았다. 주인공들의 비밀이 무엇인지, 기억의 공백이 무엇인지 계속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 구조다.
이혁상_ 둘 다 어려서부터 할리우드 장르영화에 대한 매혹을 가지고 있다. 일란 감독은 워낙 수사물이나 탐정물을 좋아하고. 실제로 이충연씨를 만나고 주인공들을 만나는 과정이 우리에겐 일종의 수사 과정 같았다. 이충연씨는 한동안 자기의 비밀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았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을 이야기하지 않는 걸까, 어떤 조각을 놓치고 있는 걸까, 정말 비밀이 있는 걸까, 생각했다. 그 과정 자체가 이야기 구조에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 같다.
-영화의 절정은 아마도 이충연씨가 ‘내가 제일 먼저 망루를 빠져나왔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일 것이다. 언젠가는 그 고백을 듣게 될 거라고 예상했나.
이혁상_ 이야기를 듣게 되길 기대하면서도 그 기다림의 시간이 두렵기도 했다. 혹시나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고백이 나오면 어떡하나, 운동권 전체가 감당하지 못할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떡하나 싶어서. 만약 그런 고백이 나오면 우리는 이 작품을 묻자. 제작지원받은 돈 다 토해내고 접자. 그런 각오까지 했다. (웃음)
김일란_ 세월호 유가족 어머니들의 죄책감도 아주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곤 했다. 그날 아침 화를 냈던 게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다는 얘기처럼, 그렇게 사소한 것이 언제나 유가족에겐 큰 죄책감이고 비밀이었다. 용산참사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마음도 그와 비슷했다.
-그런 고백을 들을 수 있었던 건 취재 대상과의 깊은 신뢰가 형성됐기 때문일 거다.
이혁상_ 2009년부터 용산 현장에 있었던 연분홍치마, 특히 김일란 감독에 대한 신뢰가 컸다. 그들이 선뜻 <공동정범>을 만드는 데 주인공이 되겠다고 승낙한 것도 <두 개의 문>의 힘이었다.
김일란_ <두 개의 문> 개봉 당시 지석준씨의 3심 재판이 있었는데, <두 개의 문> 관객이 쓴 탄원서가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는 데 유용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2013년 1월 31일의 특별사면이 꼭 <두 개의 문> 때문에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특별사면 자격심사가 이루어지는 데 조금은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주인공들은, <두 개의 문>을 만든 감독들이 용산참사를 알리기 위해 다시 무언가를 한다고 하니 믿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호의적 답변을 줬다.
-용산참사와 관련해 아직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김일란_ 최근 경찰, 검찰 개혁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 않나. 이명박 전 대통령, 김석기 전 경찰청장, 원세훈 전 행정안전부 장관까지 용산을 둘러싼 그들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해주면 좋겠다.
이혁상_ 철거민 투쟁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꼭 나왔으면 좋겠다. 내가 만들겠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