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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 그림은 세계에 대한 감각의 표현이다
2018-02-01
글 : 송경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일본 애니메이션의 외형적인 규모는 성장하는 듯 보이지만 내실은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이 있다. 일부 사실이다. 70, 80년대 전세계 서브컬처를 뒤흔든 아니메의 파괴력은 이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동시에 산업적으로는 실사영화의 흥행 순위를 가볍게 뛰어넘을 만큼 안정적이기도 하다. 만약 일본 애니메이션에 여전한 저력이 있다면 방점은 규모가 아닌 다양성에 찍힐 것이다. TV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극장판이 흥행하는 가운데 오리지널 극장판도 꾸준히 제작되고 있으며 개중에는 독특한 개성으로 표현의 영토를 넓히는 작품도 적지 않다. 유아사 마사아키는 굳이 구분하자면 작가주의 경향의 최전선에 있는 감독이다. 2004년 장편 데뷔작인 <마인드 게임>은 독특한 곡선, 강렬한 색채, 움직임을 중시한 감각적인 이미지 등으로 전세계 애니메이터들에게 유아사 마사아키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후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2010), <핑퐁 더 애니메이션>(2014) 등을 통해 독특한 세계관을 확립시켜나가는 그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섣불리 달기도 했다. 미야자키 이후 작가 감독에 대한 갈증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성급했다. 시간이 흘러 2017년, 이제는 유아사 마사아키를 두고 포스트 미야자키라고 불러도 그리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그의 신작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2017)는 2017년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동시에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2017)가 일본 애니메이션 중 최초로 오타와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장편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수상 여부를 떠나 유아사 마사아키의 세계는 조금 달라졌다. 이건 확장인가 변화인가.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유아사 마사아키로부터 긴 이야기를 들었다.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의 국내 개봉을 앞두고 그때 미처 싣지 못한 이야기를 이제야 전한다.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가 지난해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1993년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 1995년 다카하타 이사오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이후 20여년만이다. 게다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가 오타와국제애니메이션 장편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왜 이제야 받았냐고 질문해달라. (웃음) 물론 수상을 목표로 작품을 만든 적은 없다. 내 영화는 늘 관객을 향해 있다. 다만 그동안은 내가 재미있으면 다른 이들도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영화가 개봉하고 관객의 반응을 접하면서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고, 지금은 그 접점을 맞춰가고 있는 중이다. 영화제 수상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이뤄진 결과가 아닌 것처럼 마침표도 아닐 것이다.

-<마인드 게임>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최근 선보인 두 작품이 확실히 달라졌다고 느낄 것 같다.

=몇 가지 요소만 놓고 비교하긴 어렵고, 전체적인 방향성이 달라졌다고 보는 편이 적절할 것 같다. <마인드 게임> 개봉 이후 사실 충격을 좀 받았다. 당연히 관객이 재미있게 봐줄 거라고 믿었는데 오히려 깊게 파고드는 일부 마니아층이 생기고 반응하는 걸 보고 이른바 말하는 대중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실험적, 예술적인 작품을 만든다고 의식한 적은 한번도 없다. 다만 내가 사물을 감각하는 방식이 평범하진 않는 것 같긴 하다. 예를 들어 나에게 그림이란 주관적인 감각의 표현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모든 배경을 자세히 바라보고 의식하지 않은 것처럼 내 작품 속 그림들은 인물이 세계에 감각하는 순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배경을 단순화 하거나 움직임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의식이 집중된 부분은 선명하고 나머지는 흐릿하게 하는 거다. 사진처럼 그림 한장에 모든 디테일을 담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림이라면 좀더 추상적이고 즉흥적인 순간들을 담아내도 좋지 않나.

-이미지의 개성이 워낙 강하기도 하고 단순화된 선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어서 일견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작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방이 불가능할 것 같은 독특한 느낌이 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 그 부분이 내 개성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는 걸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충 그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컷들은 철저한 계산의 결과물이다. 함께 일해왔던 스탭들은 내가 지나치게 디테일에 매달린다고 피곤해하기도 한다. (웃음) 다만 기존의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정형화된 스타일과는 다르기 때문에 낯설게 혹은 자유롭게 받아들인다고 본다. 그렇다고 피카소의 그림을 두고 추상적이니 대충 그렸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내 작업도 치밀한 기획의 산물이다. 작가주의라는 말은 곧잘 ‘자기 마음대로’라는 표현으로 등치되곤 하는데 엄연히 차이가 있다.

-일각에서는 포스트 미야자키라고 불리기도 한다. <마인드 게임>의 경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제치고 2004년 일본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애니메이션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그런 주변의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일본에는 포스트 미야자키가 너무 많다. (웃음) 굳이 한명을 정해야 한다면 차라리 곤 사토시쪽이 가깝지 않을까? 나도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1979)을 보고 애니메이터를 꿈꿨던 사람이고 여러 의미에서 그의 발자취를 존경한다. 어쨌든 나는 내 그림을 그리고 내 감각을 전하는 데 익숙하다. 아마도 그런 자의식이 묻어난 표현들이 개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모든 애니메이터의 기본이자 당연한 출발이다. 만약 미야자키로 대표되는 어떤 상징이 있다고 하면 대중과의 소통이라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믿는 바를 그리되 대중이 즐거워하는 것을 안다. 아니, 대중을 학습시켰다고 해야 할까. 장편 데뷔 이후 그 부분을 꾸준히 고민해왔고 지금은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가 내 나름의 그에 대한 답이다.

-장편 데뷔작은 <마인드 게임>이지만 사실 80년대부터 애니메이터를 시작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신진 작가가 아니라는 건가? (웃음) <마루코는 아홉살>이나 <짱구는 못말려> 등의 원화나 동화를 그려왔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애니메이션을 직업으로 선택하긴 쉽지 않은 환경이었기 때문에 대학 때는 파인아트를 전공했다. 이후 바로 업계에 뛰어들었는데 기본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즐겁다.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는 이제까지 다뤘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이고 익숙한 서사 공식들을 따르고 있다. 갈등 구조나 기승전결도 분명하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그림으로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 그림을 보고 따라 하기 쉬워 보이는데 막상 해보면 정말 어렵다고 하더라. (웃음) 개성이란 그런 게 아닐까. 친절한 가이드를 따라가되 나만 할 수 있는 감각들을 전달하려 했다. 같은 일을 오래 할수록 오히려 모르는 것이 점점 늘어가는 것 같다. 매 작품이 공부다. 제일 흥미로운 대상은 다름 아닌 관객인 것 같다.

-독특한 리듬이 있다. 화면이 갑자기 멈추기도 하고 갑자기 빨라지기도 한다. 디즈니식의 뮤지컬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마치 음악을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영화다.

=적어도 감정에 관한 한 청각은 시각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한 작품 동안 관객을 끌고 가는 것도 결국은 사운드라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는 한편의 영화는 하나의 앨범과도 같다. 뒤죽박죽 엉망진창인 듯 보이는 의식의 흐름을 하나의 서사로 잡아주는 것도 결국 음악이다. 그 부분에서 귀에 감기는 익숙한 멜로디를 반복하는 걸로 뼈대를 삼고 싶었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가 하룻밤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리듬과 템포를 활용해 확장해나간다면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는 제목 그대로 루의 노래가 관객을 친절히 안내할 수 있길 바랐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만족한다. 관객, 대중의 호흡을 배워나가고 있다. 그것이 언젠가는 내 안의 리듬과 합주하여 즐거운 하모니를 낼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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