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규명된 진실만이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공동정범>은 말한다
2018-02-01
글 : 송형국 (영화평론가)
명령에 의해 행한 일

차라리 경찰의 진압 작전이 성공했더라면. 경찰이 며칠 만이라도 농성 상황을 지켜보고 협상을 시도했더라면. 최소한의 현장 정보를 확보한 뒤 작전을 짰더라면. 투입될 특공대원들에게 작전 지점을 그린 예상 도면이 쥐여졌더라면. 퇴로를 사전에 확보해놓았더라면. 당초 계획대로 크레인 2대를 동원해 효율적인 작전을 폈더라면. 경찰 수뇌부에 유증기로 인한 화재를 걱정한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었더라면.

가정은 없다. 2009년 1월 20일 경찰은 용산 철거민들이 망루 농성을 시작한 지 25시간 만에 진압 작전을 실시했다. 2006년 오산 세교지구만 해도 54일간의 농성 이후 진압이 시작됐다. 크레인이 1대만 도착했는데 작전은 강행됐다. 특공대원들에게 현장 상황을 브리핑할 시간은 없었다. 토끼몰이식 진압은 농성자들을 망루 내부 꼭대기층까지 몰아갔다. 그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화재. 망루 안에 몰려 있던 농성자 5명과 경찰 1명이 숨졌고 24명이 다쳤다.

상식을 저버린 야만의 날

가정을 당위로 바꿔보자. 경찰은 작전 수행시 현장 지형지물을 비롯한 정보를 충분히 입수한 뒤 이동경로를 포함한 세부 계획을 수립, 이를 바탕으로 적절한 인력과 장비를 가동하는 한편 대원들에게 상황을 숙지시킴으로써 실패 확률을 최소화하고 폭발물·인화물 등 위험 물질의 존재 여부와 수량을 확인해 인명 피해가 없도록 안전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것이 상식이다. 모든 것은 상식을 저버린 작전에서 비롯됐다.

도대체 왜. 당시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신임 경찰청장으로 내정돼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2008년 촛불집회 이후 ‘법질서 훼손 세력’에는 불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며 날을 세우던 때였다. 이런 가운데 인사를 앞둔 김석기 청장이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화염병 시위를 하루도 놔둘 수 없어 무리한 진압을 명령했다는 합리적 의심이 제기됐다. 검찰은 묵살했다. 검찰 수사기록 가운데 3천쪽 분량은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2010년 11월 11일 대법원 2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용산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이충연씨 등 7명에게 징역 4∼5년의 실형을, 다른 2명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경찰은 무혐의 처분됐다. 김석기 청장은 이후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거쳐 현재 국회의원이 돼 있다. 양승태 당시 대법관은 이후 대법원장 재임 시절 일선 판사들의 성향을 분석해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판사 블랙리스트’ 관련 의혹이 속속 불거지고 있다.

사건으로 참사를 덮어라

그렇다면 언론은. 참사 당시 나는 군포 여성 실종 사건을 담당하는 팀에서 일하고 있었다(필자는 KBS 보도국 기자다.-편집자). 용산참사 5일 뒤 검거된 살해 용의자 강호순은 경찰 조사 5일 만에 여성 7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한다. 보도국에선 용산참사를 담당하는 사건팀 기자 7명을 포함한 대규모 취재 인력을 희대의 연쇄살인사건에 투입한다. 당일 KBS 〈뉴스9〉은 톱뉴스부터 15꼭지에 걸쳐 강호순 관련 리포트로 도배했다. 용산참사 뉴스는 검찰 출입기자가 제작한 1꼭지가 전부였다. 자백 이튿날인 1월 31일, 그러니까 희생자들의 시신을 찾는 등 범죄 성립을 위한 증거를 확보하기 전, 경찰은 강호순의 얼굴을 전격 공개한다. 당일 톱뉴스부터 8꼭지가 관련 보도로 채워졌다. 용산참사 관련 뉴스는 역시 1꼭지. 보도국 내부에서 ‘연쇄살인으로 용산참사를 덮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없지 않았으나 지휘권에 비해 저항하는 힘은 미약했다.

옳지 못한 일은 종종 맡은 일에 열심인 자에 의해 실행된다. 나는 연일 강호순의 현장검증, 희생자 시신 발굴 현장 등을 쫓아다니며 끔찍한 영상을 전파를 통해 실어날랐다. 경기 서남부 지역에 강력 사건이 빈발하는 이유, 현대 과학수사 기법 분석 등 기획 보도도 빼놓지 않았다. 내가 맡은 일이었다. 여기서 공영방송 기자의 ‘맡은 일’은 <두 개의 문>(2012)에 등장한 경찰특공대원들의 법정 증언과 겹친다. 작전이 무리한 것 아니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대원들은 “명령에 의해서 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지시에 따르는 부속품들은 그렇게 가해자가 됐다. 저항하지 못한 기자들은 그렇게 ‘기레기’가 되어갔다. 청와대가 경찰청에 공문을 보내 “용산참사로 빚어진 경찰의 부정적 프레임을 연쇄살인사건 해결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니 “계속 기삿거리를 제공”하라고 주문한 사실이 폭로된 건 참사가 있은지 20일 뒤였다.

공동정범과 공범자들

사건은 일부의 문제지만 사건 이후는 전체의 문제다. 일부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전체는 그 진상을 밝히고 가해자에게 합당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동시에 피해를 입은 이들이 치유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사회는 도리어 가해에 가해를 보탰다. 쌍용차가 그랬고 세월호가 그랬다. 집행기관은 사람의 생명보다 윗사람을 중시했고 수사기관은 진실을 비켜갔으며 언론은 물을 탄 다음 고개를 돌렸다. 용산참사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 제작된 <두 개의 문>에 이어 <공동정범>이 나와야 했던 배경이다. 실형을 받고 복역한 철거민들의 출소 이후에도 국가폭력은 계속 됐다. 김창수씨는 출소 후 암에 걸린 아내에게 “소신 때문에 가족을 내팽개쳤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아내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김주환씨는 귀에 벌레가 있다는 환각에 시달리며 고막에 살충제를 뿌려댄다. 천주석씨는 자신의 아픔을 얘기할 사람이 없어 더 큰 감옥에 산다고 여긴다. 참사 당시 옥상에서 떨어진 지석준씨는 지금도 왼쪽 다리에 철심을 여럿 박은 채 산다. 참사로 아버지를 잃은 이충연씨는 동지들보다 먼저 불구덩이에서 빠져나왔다는 자책감에 괴롭다.

검찰은 철거민들을 ‘공동정범’으로 기소했다. 형법에서 공동정범이란 하나의 범죄를 각자가 분담했지만 각자는 범죄 전체에 대해 형사책임을 진다는 개념이다. 검찰이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혔다면 주범(主犯)과 종범(從犯)을 가려 기소했을 터다. 무엇 때문에 불이 났는지 밝히는 것이 검찰이 할 일인데 할 일을 못하게 되자 피고 전체를 한통쳐버린 것이다. 용산 철거민과 전국철거민연합 소속 연대 회원들은 공동정범으로 묶이면서 반목하게 된다. 반목은 출소 후 외면으로, 외면은 오해로 이어졌다. 국가가 폭력을 은폐하기 위해 더하고 더한 새로운 폭력이 이들의 관계에 금을 그었다.

<공동정범>은 관계를 복원하는 힘이 연대와 진상 규명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철거민들은 어려운 만남을 이어가며 자신의 기억을 죄책감으로 바꿀 필요가 없음을 알아간다. 차마 다시 보기 힘든 참사 영상을 되짚으며 서로에 대한 기억이 왜곡됐을 수 있다는 점도 깨닫는다. 아비규환 속에 형성된 기억이 온전히 규명된 진실과 만나야 금이 간 관계를 접합할 수 있다고 <공동정범>은 알리고 있다. 검찰이 했어야 할 경과 조사와 원인 파악을, 지금 시민단체와 당사자들이 하는 중이다. 국가폭력을 밝히는 일은 국가의 몫이다. 정부는 최근 용산참사, 쌍용차 파업 진압과 강정마을 집회, 밀양 송전탑 반대 집회,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을 5대 경찰 적폐 사건으로 지정하고 재조사 방침을 밝혔다. 재조사할 적폐 사건이 남아 있다는 것은 사건 당시 언론이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경찰과 검찰과 사법부와 공영방송은 지금이라도 제 할 일을 해야 공공의 폭력이라는 공동정범의 혐의를 벗을 것이다.

이 영화를 비평할 자격이 없어 사실을 정리하고 반성문을 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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