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말을 종종 듣지만 그게 칭찬인지 독인지는 모르겠다. 유아사 마사아키를 누군가의 그림자 밑에 가두기엔 너무 아쉽다. 유아사 마사아키는 언제나 유일한 무언가를 보여준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도 부정형의 생물처럼 자유롭게 형태를 바꾸고 확장 중이다. 그래서 유아사 마사아키는 그저 유아사 마사아키라는 이름으로 정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2017)가 나오기까지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간단히 알아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짱구는 못말려>, 베테랑 애니메이터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이 아니다. 유아사 마사아키의 장편 연출은 파격적이었지만 그는 80년대에 이미 업계에 발을 디딘 베테랑 애니메이터다. 워낙 동안이라 오해를 받을 법도 하지만 1965년생으로 규슈산업대학 미술과 졸업 후 애니메이션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애니메이션 지망이었던 그는 유화를 비롯한 순수미술을 경험함으로써 다채로운 표현의 기반을 다진 셈이다. 이후 <마루코는 아홉살> <짱구는 못말려> TV판 및 극장판, <도라에몽> 극장판 등의 작화를 맡았다. 특히 <짱구는 못말려>의 경우 혼고 미쓰루와 더불어 초기부터 주요 멤버로 활약했으며 독립한 다음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극장판의 경우 작화, 그림 콘티, 디자인 등 표현에 관한 전반에서 역할을 담당했다. 미국 애니메이션 <어드벤처 타임> 시즌6 중 7화 ‘Food Chain’을 감독하기도 했다. 간혹 외주 제작을 하는 이 시리즈에서 일본인이 감독한 유일한 에피소드다. 애니메이터로서의 단단한 실력과 다양한 표현방식이 연출로 이어질 때 유아사 마사아키만의 독창적인 아이디로 발현된다. 막 그리는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 않다. 피카소가 피카소일 수 있었던 건 이미 관습적인 미술을 마스터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표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인드 게임>, 한번도 본 적 없는 무언가가 등장했다!
이게 뭔가요? 처음 봤을 때 반사적으로 나올 법한 말이다. 그런데 보다보면 묘하게 빠져든다. 만화가 지망생 니시는 첫사랑인 묜을 우연히 만나 그의 초대를 받는다. 그런데 갑가지 묜의 아버지의 빚 문제로 야쿠자가 나타나 다툼에 휘말렸다가 총에 맞는다. 천국에 가서 신을 만난 니시는 죽고 나서야 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나 저승에서 도망친다. 시간을 되돌려 총 맞기 직전으로 돌아간 니시는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장편 데뷔작 <마인드 게임>(2004)은 난해하다. 스토리라인이 복잡해서가 아니다. 메시지도 비교적 명확하고 꾸준히 반복되는 형식도 있다. 하지만 이 독특한 작품은 이야기를 설명하는 대신 인물들의 감정에 반응하는 이미지를 감각적이고 과감하게 그려나간다. 문자 그대로, 감정을 그림으로 그린다는 게 핵심이다. 이미지를 과장시켜 형태를 왜곡한 이미지들은 그에 따른 결과물이다. 갑자기 실사가 겹치기도 하고 추상적인 표현들이 난무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세계. 2D, 3D, 실사, 픽실레이션과 로토스코핑 등 상상력의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애니메이션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식을 시도한다. 변화무쌍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의식의 흐름에 따른 자유분방한 연출, 역동적인 그림체로 대표되는 유아사 마사아키 월드의 정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나왔던 2004년, 일본 문화청 미디어예술제 애니메이션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당시 심사평을 빌리자면, “고도의 기술과 고차원적인 센스가 융합, 셀애니메이션이 아니면 불가능한 표현의 정점”이다.
사이언스 사루,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유아사 마사아키는 2013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사이언스 사루’를 설립했다. 애니메이터이자 프로듀서인 최은영과 함께 설립한 사이언스 사루는 독창적인 두 작가의 시너지를 기대하게 만든다. 최은영 애니메이터는 유아사 마사아키가 매드하우스에서 <게모노즈메>(유아사 마사아키의 첫 오리지널 TV애니메이션)를 만들 때부터 함께했다. 이후 유아사 마사아키가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2010)를 연출할 때 원화가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으로 호흡을 맞추다 결국엔 스튜디오를 설립하기 이른다. 유아사 마사아키는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행사 중 “내가 사이언스(지능) 담당이고 최은영씨가 사루(야생)를 맡고 있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두 사람의 감각은 어딘지 닮은 면이 있다. 스튜디오 사루의 스타일이 무엇인지 선보인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2017)는 물론이고 넷플릭스가 제작한 <데빌맨: 크라이 베이비>(2018)까지 플래시애니메이션을 기반에 두고 있다는 게 특징 중 하나다(<데빌맨…>은 그야말로 쉽게 접하기 힘든 수위와 과감한 표현이 난무한다). 선이 살아 있는 움직임, 자유분방한 표현과 리듬으로 대표되는 스튜디오 사루의 작화는 유아사 마사아키의 오리지널이면서 동시에 최은영 작가의 개성이 녹아들어간, 말 그대로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비주얼을 구사한다. 기술적인 발전과는 또 다른 귀중한 자산이다.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부터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까지
요약하면 자유분방한 그림과 표현, 그림을 눈으로 듣는 것 같은 템포와 리듬감, 거침없는 전개와 황당한 스토리, 뻔뻔한 상상력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유아사 마사아키의 작품은 하나로 묶어내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한편 한편이 전부 유일하다. 2010년 일본 문화청 미디어예술제 대상을 수상한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는 유아사 마사아키의 첫 히트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대중적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검은 머리 아가씨와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구성이 독특하다. 크라우드 펀딩을 받아 제작한 <킥하트>(2012)는 사디스트 여자 레슬러와 마조이스트 레슬러의 만남을 코믹하게 푼 작품으로, 최은영 작가가 원화를 담당했다. 2017년 오타와국제애니메이션 장편부문 대상을 수상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2017)는 모리미 도미히코의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팀이 다시 뭉친 막무가내 명랑발랄 로맨틱 코미디다. 리듬과 템포가 하나의 연출이 되는 유아사 마사아키식의 뮤지컬을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