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영화의 바운더리는 점점 좁아지고 독립영화의 관객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김대환 감독은 “마치 편의점 냉장고에 탄산음료만 진열된 것 같다”는 말로 다양한 영화를 품지 못하는 상업영화계의 포용력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에 우리는 <꿈의 제인> <초행> <시인의 사랑> <용순> <폭력의 씨앗>처럼 용감한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다섯편의 영화는 하나같이 용감한 시도를 보여준다. 더불어 만드는 과정에서도 용감한 결단과 인내가 필요한 영화들이었다. <철원기행> <초행>의 김대환 감독, <시인의 사랑>의 김양희 감독, <용순>의 신준 감독, <폭력의 씨앗>의 임태규 감독, <꿈의 제인>의 조현훈 감독까지, <씨네21>이 주목하는 신인감독 다섯명에게 대담을 청했다. 신인감독으로서, 젊은 감독으로서의 고민과 생각을 들려달라 했더니 김양희 감독은 제주도에서 기꺼이 서울까지 날아왔다. 임태규 감독과 김대환 감독은 차기작 촬영을 코앞에 두고 바쁜 시간을 쪼갰다. 다음날 일본행이 예정돼 있던 신준 감독은 대담 당일 아침까지 다른 감독들의 놓친 영화를 유료결제로 챙겨보며 짐싸기를 미뤘다. <씨네21>이 선택한 2017년 올해의 신인감독 조현훈 감독은 거시적이고 객관적 시선으로 현답을 들려줬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진지했던 이날의 대담을 상세히 전한다.
-<씨네21>이 주목하는 신인감독들의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면서 어떤 생각, 어떤 기대를 했나.
=조현훈_ 우선 <씨네21>이 꾸준히 젊은 영화, 작은 영화들에 관심을 가지고 조명해주는 것에 감사드린다. 동시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고 해서 부푼 마음을 안고 왔다.
=김대환_ 다행히 구면인 감독들이라 편하게 수다 떤다는 마음으로 왔다. 개인마다 생각의 차이, 경험의 차이가 있을 텐데 다 같이 모여서 그 이야기를 나눈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김양희_ <씨네21>의 대담이라고 했을 때 기억에 깊이 남아 있는 게 영화계 내 성폭력 연속 대담이어서, 이번에도 작은 영화가 얼마나 만들어지기 힘들고 살아남기 힘든지에 대한 뾰족한 얘기를 나누는 자리일거라 생각하고 조금 긴장했다. 다행히 주목하는 젊은 감독들이라고 해줘서 기쁘다.
=신준설_ 합본호에 기사가 실린다고 해서 명절에 집에 갈 때 들고 가면 딱이겠다 싶더라. 명절에 집에 가면 항상 ‘뭐 하고 지내냐’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일동 공감의 웃음) 잡지를 보여드리면 부모님이 좋아하시지 않을까.
=임태규_ 처음엔 나에게 왜 전화를 했을까 싶더라. (웃음) 이제 겨우 한편의 영화를 찍었을 뿐인 내가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싶긴 했다. 더불어 오늘의 얘기가 구체적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독립영화 만드는 건 힘든 일이야’라고만 말하는 건 재미없으니까.
독립영화에도 유행이라는 게 존재한다
-동시대에 활동하는 감독들로서 서로에 대한 호기심, 서로의 작품에 대한 호감이 있었을 것 같다. 이 자리에서 마음껏 상대 감독에 대한 애정고백을 해도 좋다.
김양희_ <꿈의 제인>은 특별한 개성과 감수성을 가진 영화였다. 나같이 평범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선 <꿈의 제인>이 용감한 영화로 보였다. 이런 영화가 선전하는 것도 기쁘고 반가웠다. 요즘은 영화판이 너무 극단화되어 있어서 나같이 평범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만든 영화도 소수의 독립영화로 분류되는 것 같다. 한때는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 <인어공주>(2004) 같은 드라마가 상업영화로 만들어졌지만 요즘은 그런 영화들이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상업적인 게 뭔지 정말 모르겠다. 점점 상업영화의 바운더리가 협소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다지 용감하지 않은 영화도 주류영화가 아니라서 독립영화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김대환_ 동의하는 바다. 20년 전 그때가 지금보다 훨씬 더 영화가 다양했다. 그리고 <초행>을 찍기 전 <폭력의 씨앗>을 봤는데, 영화가 너무 좋아서 <폭력의 씨앗>을 찍은 손진용 촬영감독을 <초행>의 촬영감독으로 섭외했다. 임태규 감독과는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동문이라 어느 정도 친분이 있다. 그런 상태에서 영화를 봤는데 이렇게 독하고 집요한 사람인 줄 몰랐다. (웃음) <꿈의 제인>을 보면서는 내가 만들 수 있는 영화는 아니라는 걸 확실히 느꼈다. 나는 보편적인 시선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하는데, <꿈의 제인>은 좀더 확실한 시각이 존재하는 영화란 생각이 들었다.
임태규_ <초행>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초행>의 제작 시스템을 들여다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나리오 없이 배우들의 대화를 통해 장면을 만들어가거나 소규모 스탭으로 현장을 꾸린 것 등, 그것이 대안적으로 영화 만들기의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시나리오를 꼭 써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도 할 수 있을 테고. 김양희 감독의 <시인의 사랑>을 보면서 좋았던 건 보편적인 정서였다. 또 캐릭터를 대하는 연출자의 애정 어린 시선이 물씬 느껴져서 좋았다.
조현훈_ 영화를 기차 여행과 스쿠터 여행에 비유한다면, <시인의 사랑>과 <용순>은 기차 여행 같은 영화였다. 영화가 이끄는 방향대로 따라가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그런 재미가 있는 영화였다. <폭력의 씨앗>과 <초행>은 스쿠터 여행처럼 스스로 길을 찾고 재미를 발견해야 하는 영화였다. 독립영화를 보는 관객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이런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해 준 영화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2017년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해였다고 생각한다.
신준_ 독립영화에도 유행이라는 게 존재한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2015)이 개봉한 뒤에 접한 시나리오의 60%가 아이들이 주인공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폭력의 씨앗>은 탈유행의 작품이었다. 자신이 선택한 연출 방식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영화였다. <꿈의 제인>은 시나리오가 좋다는 이야기를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들었기 때문에 어떻게 그 시나리오가 영화로 탄생할까 궁금했던 작품이다. 시나리오도 좋았는데 영화 역시 멋지게 탄생했더라. <시인의 사랑>은 전혜진 배우의 팬이어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작품인데, 생활감이 느껴지는 디테일, 작은 것까지도 놓치지 않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다섯 감독 모두 국내외 영화제를 많이 돌았고, 수상의 영광도 꽤 안았다. 그러한 수상이 실질적으로는 어떤 혜택으로 돌아왔는지 궁금하다.
조현훈_ 작은 영화의 경우 개봉 후의 수상이 영화를 재조명하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다. 시상식에서 언급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사실 디렉터스 컷 시상식에서도 봉준호 감독님이 그런 역할을 해주신 거다(2017 디렉터스 컷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은 신인감독상을 받은 조현훈 감독의 <꿈의 제인>을 두고 ‘올해 최고의 영화’라고 극찬했다.-편집자) . 작은 영화들을 발견할 수 있게끔 목소리를 내준 그런 배려가 더없이 감사했다.
김양희_ 데뷔하는 것 자체도 정말 힘이 들지만 데뷔를 하고 개봉을 한다고 해서 그 어떤 영광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영화를 그만둘 수도 없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웃음) 연말에 상(여성영화인상 각본상,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각본상)을 받았을 땐 ‘내 영화에 주목하고 있구나, 계속 영화를 해보라고 하는구나’라고 격려해주는 거라고 느꼈다. 이런 작은 영화들은 수익이 나기도 힘들고 물질적 보상을 받기가 힘든데, 그런 작은 격려가 ‘좀더 가봐도 되겠구나’ 하는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
영화제 수상과 영화 홍보의 상관관계
김대환_ 로카르노국제영화제 베스트 이머징 디렉터상 수상은 너무나 반가운 수상이었다.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됐던 게, 그 상금 덕에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웃음) 이 정도의 예산이면 결혼을 할 수 있겠지 하고 준비 중이었는데 그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느낄 즈음 수상 소식을 들었고, 상금이 들어왔다.
조현훈_ 상금이 얼마였는지 물어봐도 되나?
김대환_ 3천만원이었다. (일동 부러움의 탄성) 제작사 봄내필름의 공동대표이자 <초행>의 프로듀서인 장우진 감독과 상금을 반반 나눴다. 영화를 만들고 개봉하기까지 1년여의 시간 동안 영화로 수익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이 상금 덕에 지난해를 잘 버틸 수 있었다. 상을 받아서 생긴 결과론적 아쉬움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칸국제영화제가 아니고선 관심을 받기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양희_ 요즘은 영화제 수상이 영화의 홍보 마케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분위기다.
조현훈_ 영화뿐 아니라 문화예술가들이 이룬 거대한 성취에 대한 동경이 요즘은 많이 사라진 것 같다. 더이상 이 직업을 다른 직업과 구분할 만한 차이점을 못 느낀다. 그냥 돈 없는 노동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매일매일 일은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그게 무슨 일인지 손에 잡히지 않는.
김대환_ 단기간에 근사한 결과를 기대하지 말자고 생각을 정리했다. 체감하는 문제점과 아쉬움은 많지만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보이지 않고 그걸 해결할 능력도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든 꾸준히 영화를 만드는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신준_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대명컬처웨이브상으로 받은 상금이 2천만원이었는데, 상금 배분과 관련해 제작사와 의견 차이가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이 영화에 참여한 스탭과 배우들은 없다. 영화제라는 게 힘든 작업을 함께한 스탭과 배우들에게 이만큼의 성과가 나왔다는 걸 보여주는 자리라면, 상금 또한 함께 나누는 게 좋지 않나. 그래서 상금을 1/N로 나눠서 스탭들에게 드렸다. 그렇게 하고 나니까 도리는 다 했다는 마음이 들더라. 김대환, 조현훈 감독님의 경우 본인이 직접 제작사를 차려서 영화를 만들었지만 나는 제작사에 소속돼 있다보니 제작사의 입장과 부딪힐 때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또 <초행>이나 <폭력의 씨앗>의 경우 같이 작업한 사람들이 보이는 영화인 반면 <용순>은 제작사가 두드러져 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홍보 단계에서도 영화제 수상이 오히려 영화를 고루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해서 수상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상이란 게 뭘까 싶더라. 그냥 정신승리에 대한 치하, 금일봉 정도인 것 같다.
김대환_ 날카로운 얘기네~. (웃음) 그런데 <용순>은 제작비를 어떻게 마련했나.
신준_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제작지원금 1억원으로 찍었다. 제작사를 차린 두분 감독님이 부러웠던 게, 제작사에서 영화를 준비하다보니 담당 프로듀서가 오케이를 하지 않으면 작업이 진행되지 않았다. 일일이 서류 검토하고 장소 헌팅하고 프로듀서한테 승인받고, 오케이가 나지 않으면 그 일을 반복하고. 영화 규모가 작으니 일할 사람이 없어 그 모든 일을 혼자서 했다. 그런데 제작사에선 영진위에서 지원받은 1억원으로는 촬영에 들어갈 수 없다 하고, 나는 1억원으로라도 찍자고 하고. 그렇게 승강이를 하다가 영진위가 제시한 제작 마감일이 다 돼서야 겨우 촬영에 들어갔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난 뒤에 롯데가 후반 작업 단계에서 투자·배급으로 들어왔고.
김양희_ <시인의 사랑>도 그렇지만, 개별 제작사의 문제가 아니라 제작 시스템의 문제인 것 같다. <시인의 사랑>의 자본 형성을 보면 영진위에서 1억원, 전주시네마프로젝트에서 1억원, CGV아트하우스에서 1억5천만원을 댔다. 거기에 충무로 제작사가 붙었고, 상업영화 시스템으로 모든 과정이 돌아갔다. 매 단계에서 감독의 자율권과 관련해 싸워야 했다. <시인의 사랑>은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에 있는 영화였다. 신준 감독님이 언급한 것처럼, 이런 게 유리하면 이런 기준이 적용되고, 저런 기준이 유리하면 저런 게 적용되는 식이라 감독의 자율권이 제한되는 경우가 있었다.
신준_ 김양희 감독님이 나보다 더 고생했을 거다. <용순>의 경우 투자·배급사인 롯데시네마에선 일절 터치가 없었다. 오히려 롯데에서 ‘이 영화가 100억원짜리도 아니고 200억원짜리도 아니고, 감독님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영화가 산으로 갑니다. 끝까지 밀어드릴게요’라고 방패를 쳐줬다.
김양희_ 전주시네마프로젝트의 경우 지원은 하지만 간섭은 하지 않는다. 이런 작은 규모의 영화는 가능성을 실험할 수 있게 감독을 믿고 밀어줘야 한다. 제작사나 배급사에서 상업영화의 논리를 들이밀면 신인감독은 싸울 무기가 없다. 그런데도 ‘싫어’ 하면 고집쟁이가 되는 거고. 다만 조심스러운 건, 이런 이야기가 피해자 코스프레로 비치지 않았으면 한다.
임태규_ 적은 예산으로 이만큼의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게 사실 기적이다. 내 생각엔 한국이니까 가능한 일 같다. 데뷔하는 감독, 경험이 많지 않은 감독이 간섭받지 않고 자신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창구가 더 늘어나야 한다.
조현훈_ <꿈의 제인>도 영진위로부터 1억원을 지원받았다. 프로덕션 과정에선 라인 프로듀서인 백제호 감독이 완벽하게 일을 해줬는데,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선 프로듀서가 따로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형에게 일정 금액을 지원받았다. 집안 돈을 끌어들인 거다. <꿈의 제인>은 현실적으로 최소한 2억원은 필요한 영화였다. 그런데 지원금이 1억원이었고, 2억원짜리 규모의 영화를 1억원짜리로 줄일 방법은 없었다. 스탭들 인건비만 1억원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선 결국 빚을 내서 찍거나 포기하는 방법밖에 없다. 영진위의 지원금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그러면 결국 ‘감독이 스스로 구하라’가 되는 거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후반작업을 지원받고, 영화제 상영 이후 배급팀이 붙은 뒤로는 비교적 편한 길을 갔지만 프로덕션 단계에선 사비를 쓸 수밖에 없었다.
김대환_ <초행>은 전주시네마프로젝트에서 7천만원을 지원받았다. 7천만원을 어떻게 운용해서 찍을까, 현실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초행> 이전에 프로듀서로 참여한 장우진 감독의 <춘천, 춘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영진위에 제작지원을 신청했다가 붙은 적이 한번도 없다. 다들 시나리오를 어떻게 썼기에 지원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웃음) 아무튼 장우진 감독이 선택한 건 서울에 살던 집 보증금을 빼서 본가인 춘천으로 들어가는 거였다. 그 보증금과 강원문화재단 지원금으로 <춘천, 춘천>을 찍었고, 스탭을 줄이는 선택을 했다. 장우진 감독이 연출 겸 촬영, 내가 프로듀서 겸 동시녹음, 나머지 일을 도와주는 스탭 1명, 이렇게 3명이서 영화를 찍었다. 그런데 그때의 경험이 굉장히 즐거웠다. 3명이서 찍으면 힘든 일만 가득할 줄 알았는데 그 안에서 충분히 영화적 성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초행>의 제작비가 7천만원으로 책정됐을 때도 그렇게 두렵진 않았다. <초행>은 스탭 9명이서 만들었다. 회차를 줄여가면서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정리하면, 전주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의 제작지원 펀드, 단국대학교 대학원이나 영화아카데미의 장편연구과정, 영진위의 제작 지원,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지원. 이러한 지원 형태로 현재 한국 독립영화가 존재하고 있다. 나 같은 경우 제작비가 적기 때문에 사지로 내몰리는 듯한 경험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전혀 간섭받지 않고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어서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신준_ 영진위 지원금 1억원으로 영화를 찍느냐 마느냐 할 때, 어떤 감독은 사비를 얼마나 내놨다고 하는 얘기를 심심찮게 듣기도 했다. (일동 실소) 사실 나나 촬영감독 및 스탭들의 보이지 않는 투자가 있었다. 수학학원 강사를 하면서 모아둔 돈이 있었는데 그걸 회의비, 회식비 등 촬영 진행비로 썼다. 촬영감독님은 장비가 부족하면 사비로 장비를 렌털했고. <용순>은 대외적으로는 27회차를 1억원에 찍은 영화지만 실은 1억원이 1억원이 아니다. 스탭과 배우 덕에 이 영화를 찍을 수 있었고,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얘기하는 게, 스탭, 배우,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롯데시네마에 대한 고마움이다. <용순>에는 이수경, 최덕문, 김동영 배우까지 호두 소속 배우가 3명 나오는데, 호두에서 종종 회식도 쏘고 간식도 쏘고 영화에 큰 애정을 보여줬다.
김양희_ <시인의 사랑>의 전혜진 배우도 호두 소속인데, 우리 현장에서도 그랬다. (웃음)
임태규_ <폭력의 씨앗>은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장편 연구과정으로, 학교에서 5천만원을 지원받았다. 영진위에서 지원을 받든 교육기관에서 지원을 받든, 지원하는 사람이나 지원을 받는 사람이나 말도 안 되는 돈으로도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는 것 같다. <꿈의 제인>이 1억원으로 찍을 수 없는 영화라는 걸 잘 알면서도 이걸로 어떻게든 찍어보라고 한다. 감독이나 프로듀서 또한 그걸 체념하듯 받아들인다. 어느 순간부터 창작자와 제작자 모두 암묵적으로 열정페이를 동의하고 가는 것 같은데, 그건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다.
제작비의 한계와 열정페이
-적은 제작비로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5편의 영화는 오히려 상업영화보다 흥미로운 영화 연출,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준다. 제작비의 한계가 분명했기 때문에 다른 방식의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었던 건가.
김대환_ <철원기행>과 <초행> 모두 공간이 제한적이었고, 그런 점에서 제작비를 줄일 수 있는 기획이었다. 컷을 나누든 원 테이크로 찍든 사실 영화에 들어가는 시간은 비슷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제한된 공간에서 원신 원컷의 숏 구성이 제작비 절감에 용이하게 작용했다. 그리고 나와 장우진 감독은 후반작업 공정인 편집, DI, DCP를 우리가 다 소화한다. 물론 이 역시 좋은 예가 되어선 안 되겠지만.
김양희_ 제작비에 제약이 있으면 새로운 방법론을 찾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초행>은 영화에 잘 맞는 미학적, 영화적 방법론을 찾은 영화다.
조현훈_ 시나리오 단계에선 이야기의 논리를 설계하는 데 집중했다. 스스로 완벽한 논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촬영팀에 얘기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 그림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가’, ‘비일상적으로 느껴지는가’ 하는 거였다. 동시에 개연성 있는 그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음악도 비슷했다. 영화의 음악이 사람들의 감정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리시키는 방향을 고민해보자고 했다. 그래서 혼란을 주기도 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불신하게끔 만들 수 있도록.
-배우들이 하나같이 주목받은 영화란 것도 공통점이다.
김대환_ 내가 보고 싶었던 건 날것 같은 모습이었다. 다듬어진 연기가 아니라, 중얼거림조차 살아 있는 대화처럼 느껴지도록 적극 활용했다. 배우들에게 상황과 대화의 맥락만 줬고 배우들이 거기에 살을 붙여 나갔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현실에 있는 커플의 일상을 보길 바랐다. 반면 <철원기행> 때는 즉흥성을 배제했다. <철원기행>을 찍으면서 느낀 영화적 미학도 있었지만, 어느 정도 내가 예상한 지점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초행>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예상을 벗어나는 무언가가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찍었다.
김양희_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배우의 감정 전달이다. 내가 생각하는 리얼함이라는 게 있는데 조금만 연기가 과해도, 조금만 연기가 건조해도 리얼하게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 적정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했고, 현장에서도 감정의 완성도를 높이는 걸 목표로 연출했다.
신준_ 배우가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건 첫째 조건이지만, 미팅 땐 배우들에게 대본 리딩을 안 시켰다. 한 시간쯤 얘기를 나누다보면 그 사람의 특징이 보이고 그게 마음에 들면 캐스팅을 한다. 그런데 관계자들은 이런 방식을 싫어하더라. 왜 준비한 연기를 보여달라는 말을 안하냐고. (웃음)
임태규_ (이)가섭이는 얼굴이 좋아서 캐스팅했다. 만났을 때의 느낌이 좋았다. 신인배우든 기성배우든 캐릭터에 어울리면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캐스팅을 진행했는데, 그 나이 대의 기성배우 중에 딱히 원하는 배우가 없었다. 오히려 신선한 얼굴의 젊은 배우들끼리 모여서 작업하길 잘한 것 같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리허설을 잔인하게 많이 하는 편이다. 촬영 전까지 불안 요소를 제거해간다. 98% 정도 미리 맞춰놓고 현장에 간다. 걷는 모습이나 숨쉬는 것까지 체크한다. 그런 방법은 아마도 신인배우들과의 작업이었기에 가능한 거라 생각한다. 기존 유명 배우들과 그렇게 작업하는 것이 가능할까. (웃음)
조현훈_ 배우들이 배역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우리의 이야기에 대한, 영화에 대한 스탭들의 존중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제인(구교환)의 역할도 컸다. 구교환 배우가 캐릭터를 생각하는 마음이 분명히 전달되었고, 이민지 배우가 보여준 태도가 우리 모두에게 강렬하게 전해졌다.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현장에서 내가 정말 불쌍해 보였다. 왜냐하면 나에게 <꿈의 제인>은 ‘초행’이었으니까. 감독이자 제작자로서 고민의 시간이 길었다. 그러다보니 촬영 직전에는 식음을 전폐할 수밖에 없었고, 몰골이 심각한 수준이 되었다. 내가 이 영화에 많은 것을 걸었구나, 그런 절박함이 전달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상황이었다. (웃음) 결국 사람들을 움직인 건 내가 가진 절박함이었던 것 같다.
-배급 과정, 흥행 결과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느끼는 아쉬움도 있었을 것 같다. 배급 지원과 관련해 바라는 지원책이 있다면.
조현훈_ 말하고 싶은 건 영진위의 독립영화 배급 지원사업이다. 배급 지원의 경우 환수 조건이 있다. 영화가 광고홍보(P&A) 비용을 충당하면 지원금을 영진위에 다시 돌려줘야 한다. 예를 들면 2천만원을 배급 지원금으로 받았는데 영화가 흥행해서 P&A를 넘기면 2천만원을 다시 뱉어내야 한다. 지원 금액 자체가 터무니없이 적은데 그것마저 환수해가는 건 어떤 논리인지 모르겠다. 대부분 감독들이 잘 모르고 있다가 환수할 때가 오면 깜짝 놀라게 된다.
김대환_ <철원기행>과 <초행>이 배급 지원을 받았는데, 한번도 손익분기점을 넘지 않아서 이 얘기를 몰랐다. (웃음)
임태규_ 난 못 넘겼는데 알고는 있었다. (일동 웃음)
김대환_ 배급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건, 어느 순간부터 개봉 첫주 40개관이 잡혔다고 했을 때 이 정도면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안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40개관이라는 건 턱없이 적은 숫자인데 말이다. 그리고 독립영화의 배급 형태, 홍보·마케팅의 형태가 비슷하다. 개봉 첫주 40개관 정도 잡고, 한달 전부터 SNS로 마케팅하고, 저명한 분들을 데려다가 GV를 하고. 과연 이런 형태밖에 없는 건지 궁금하다.
김양희_ <시인의 사랑>은 CGV아트하우스에서 투자·배급한 작품이라 개봉 첫주 100개관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홍보·마케팅 비용을 많이 쓸 수 없는 영화였기 때문에 영화가 사람들에게 제대로 인지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극장에선 동일선상에서 상업영화와 경쟁해야 한다. 영화가 만들어진 조건은 다른데 시장에 나오는 순간 동일하게 경쟁해야 한다. 영화 그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관객의 반응이 올라오지 않으면 결국 명분에 불과한 상영, 파행적인 상영을 하게 된다. 영화가 상영 중이지만 볼 수는 없는 환경 말이다. 결국엔 흥행 실패의 원인이 영화의 잘못으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감독이나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은 상처를 받고.
신준_ <용순>도 개봉 첫주에 상영관 100개로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용순> 개봉 때 처음으로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가봤다. 월드타워에 <용순> 포스터가 크게 걸려 있었다. <용순>이 어떤 영화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런 식으로 노출이 되면 이런 작은 영화가 월드타워 같은 곳에서도 상영하는구나라는 걸 알릴 수 있어 긍정적이라 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SNS로 영화 홍보를 한다. 혹시라도 부가판권 수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운이 좋게 <용순>이 손익분기점은 넘겼지만 관객 1만명을 넘기기도 힘든 현실이 씁쓸하다.
임태규_ 영화를 만드는 방법은 다양한데 왜 배급 방식은 똑같은지, 영화를 만드는 사람 또한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주류 배급망에 어떻게든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비판의식 없이 하게 된다. <폭력의 씨앗>은 지난해 11월에 개봉했다. 스크린쿼터 때문에 극장에서 11월에 독립영화를 몰아서 개봉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스크린쿼터 때문에 개봉을 했지만 스크린쿼터 때문에 피해를 보는 상황도 생긴다. 하지만 극장이 11월에 열어주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
차기작에 대하여
-상업영화 진영으로의 진출도 고민하고 있나.
임태규_ 물론 한다. 상업영화라는 건 상업자본으로 영화를 찍는 건데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니까. 중요한 건 그다음인 것 같다. 요즘은 감독의 브랜드 가치라는 것도 있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상업영화를 찍고 난 후 어떤 모습, 어떤 태도를 보여주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기본적으로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직업의식과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안 넘기고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자기가 받은 개런티와 제작비를 합당하게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준_ <용순> 이후 감사하게도 상업영화 콜을 몇 군데에서 받았다. 마음이 동하지 않아서 고사를 한 경우도 있다. 그러는 과정에서 계속 고민을 했다. 나는 무얼 하고 싶나. 생각 끝에 도달한 답은 ‘같이 일하는 스탭과 배우들이 표준근로계약에 준하는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영화를 연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구분하기보다, 스탭들의 역량이 소모되지 않고 나 역시 소모되지 않는 작업을 하고 싶다. 독립영화가 무슨 징검다리냐는 얘기도 있지만, 같이 일하는 스탭들의 고생이 빤히 보이는데도 그걸 내가 챙겨줄 수 없는 상황이 버겁더라. 우선은 부끄럽지 않게 영화를 만드는 게 첫 번째 목표다.
김양희_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가르는 건 영화판의 논리인 것 같다. 그런 구분 자체가 요즘은 무의미한 것 같다. 영화는 그냥 영화지. 안그런가. 상업적으로 벌일 수 있는 규모의 이야기여서 투자사나 제작사가 붙어 자본이 들어오면 상업영화가 되는 거고, 그렇다면 좀더 책임감을 가지고 유연하게 작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내가 쓴 이야기가 상업영화 사이즈가 아니라면 좀더 자율적인 작업이 가능한, 좀더 깊이 파고들어갈 수 있는 작업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김대환_ 무조건 안 하겠다, 이런 건 아니다. 언젠가 기회가 오면 하고 싶은데, 상업영화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서 들은 무서운 상황들은 또 피하고 싶다. (웃음) 아직은 심각하게 상업영화 연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런 생각을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다는 건 어쩌면 내가 그 상황으로부터 도망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조현훈_ <꿈의 제인>을 끝내고 마음에 남았던 건 완전히 모르는 길을 헤매면서,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매면서 결국엔 어떤 목적지까지 도착했다는 느낌이다. 그게 가장 큰 성취감으로 남아 있고, 그게 또한 내 창작 동기가 되는 것 같다. 다음 영화 역시 그랬으면 좋겠다. 모르는 길을 가고 싶다.
김대환_ 초행이네, 초행. (일동 웃음)
조현훈_ 매번 초행을 하고 싶은 게 지금의 내 마음이다. 그것이 어떤 영화가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익숙한 방향으로 나를 이끄는 것들은 피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각자 차기작 계획을 들려달라.
임태규_ 2018 전주시네마프로젝트로 선정된 작품 <파도치는 땅>이 2월 19일에 크랭크인할 예정이고, 지금은 그 준비로 정신없다. 부자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사회적 메시지도 담겨 있다. 북에 피랍됐다가 돌아온 후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세월을 살았던 아버지를 외면하고 학원 원장으로 살았던 중년의 남자가 주인공이고,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2010)에서 복남의 남편으로 나온 박정학 배우가 주인공을 맡았다.
김대환_ 함께 전주시네마프로젝트로 선정된 장우진 감독의 <겨울밤>의 프로듀서를 맡았다. 우리도 곧 촬영에 들어간다. 서영화, 양흥주, 이상희, 우지현, 김선영 배우가 나오고 춘천 청평사에서 벌어지는 1박2일간의 이야기다. 내 연출작은 아마도 내년 봄에 촬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철원기행> <초행>에 이은 가족영화 3부작이고, 재혼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신준_ 연출을 제안받은 작품이 있다. 각색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가제는 <리듬 속의 그 춤을>이다. 음악영화다. 써놓은 시나리오도 하나 있는데, 요즘 남자들만 나오는 영화가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작정하고 여자들만 나오는 이야기를 써둔 게 있다.
김양희_ <시인의 사랑> 찍을 때는 모든 게 처음이라 긴장을 많이 했다. 그래서 사람들과 정을 쌓아가면서, 즐기면서 찍지 못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게 아쉬움으로 남더라. 다음엔 재밌게 즐기면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게 가장 큰 목표다. 아직 구체적인 이야기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유쾌하고 발칙한 소동극을 만들어보고 싶다.
조현훈_ 단편을 하나 제안받아서 4월에 찍게 될 것 같다. 다음 장편 시나리오도 얼른 써야 할 텐데. (웃음)
<철원기행> <초행> 김대환 감독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졸업(2기). 데뷔작 <철원기행>(2014)으로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을 수상했다. 김새벽, 조현철이 주연한 두 번째 영화 <초행>(2017) 역시 가족이라는 관계에 현미경을 들이댄 로드무비로 결혼, 임신, 상견례를 앞둔 커플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초행>으로 제70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 베스트 이머징 디렉터상(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고향 친구인 장우진 감독과 영화사 봄내필름을 운영하고 있으며, 장우진 감독의 <춘천, 춘천>(2016)에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시인의 사랑> 김양희 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8기). 단편으로 <지나갈 어느 날>(2007), <보청기>(2013)를 만들었고, 2017년 전주시네마프로젝트로 선정된 <시인의 사랑>으로 장편 데뷔했다. 양익준, 전혜진, 정가람 주연의 <시인의 사랑>은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어느 시인의 사랑과 성장을 보편적 감성으로 전달하는 귀여운 드라마다. 2017년 여성영화인상 각본상, 2017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각본상을 수상했다. 현재 제주도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시인의 사랑> 역시 제주도에서 찍었다.
<폭력의 씨앗> 임태규 감독
중앙대학교 영화학과를 졸업했고,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연출 전공 5기로 입학했다. 데뷔작 <폭력의 씨앗>으로 2017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과 CGV아트하우스상을 수상했다. 외박을 나온 군인 주용(이가섭)이 하룻동안 목격하는 군대와 가정 내 폭력을 4:3 화면비율과 롱테이크, 핸드헬드 촬영으로 담은 작품이다.
<용순> 신준 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16기). 단편 <용순, 열 여덟 번째 여름>(2014)을 장편으로 확장해 데뷔작 <용순>(2016)을 만들었다. 육상부 체육선생을 좋아하는 고등학생 용순(이수경)의 들끓는 감정을 오롯이 따라가는 <용순>은 멜로드라마적 감수성으로 충만한 성장영화다. 소녀의 세계를 섬세하게 그린 <용순>으로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대명컬처웨이브상을 수상했다.
<꿈의 제인> 조현훈 감독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단편 <서울집>(2013), <메타모포시스>(2007)를 만들었다. 데뷔작 <꿈의 제인>(2016)으로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남녀배우상, 제42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 2017년 디렉터스컷 신인감독상 등을 수상하며 ‘올해의 발견’, ‘올해의 신인감독’이라는 극찬을 두루 받았다. <꿈의 제인>은 가출팸에 들어간 소녀 소현(이민지)과 가출팸의 ‘엄마’인 트랜스젠더 제인(구교환)의 만남을 통해 불행이 중첩되는 삶 속에서의 한줌 희망을 보여주는 영화다.
2017년 나의 베스트영화
“일디코 엔예디 감독의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이어서 개막식 때 처음 보고 극장 개봉했을 때 또 봤다. 그 끈질김, 꼼꼼함, 섬세함이 충격적일 만큼 인상깊었다. 비주얼적으로도 굉장히 선명한 인상을 남긴 영화다.”_김대환
“일디코 엔예디 감독의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연출의 완급이나 호흡이 마치 교과서 같았다. 화려하게 테크닉을 부리지 않고 차분하고 집요하게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관철시키는 과정, 그리고 끝내 영화가 도달하는 지점이 좋았다.”_김양희
“안드레아 아놀드의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 어떻게 보면 독립영화에서 많이 본 캐릭터들이지만, 캐릭터를 다루는 연출자의 태도가 굉장히 힙하다. 마이너들의 이야기를 너무 마이너하게 그리는 한국의 독립영화들이 있는데, 그런 건 좀 재미없다.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는 진지할 수 있는 상황을 요즘 감각에 맞게 잘 연출한 영화라고 생각한다.”_임태규
“배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 그 장면이 안 잊힌다. 청년 샤이론이 수업이 끝나고 학교를 나오면, 친구들이 샤이론을 치고 지나간다. 그때 학교 현관에 서 있는 샤이론의 얼굴에 모든 게 담겨 있는 듯했다. 이처럼 <문라이트>에는 어떻게 저런 순간을 포착했을까 싶은 장면들이 있다. 잘 짜여진 영화의 경우, 날것 같은 느낌을 포착하지 못하는 때가 많다. 그러나 <문라이트>는 그런 계산을 뛰어넘는 순간들을 보여준다.”_신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 시간과 기억이라는 소재를 직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만든 영화다. 영화의 형식 자체도 놀라웠는데, 무엇보다 상업영화로서 이런 이야기, 이런 형식의 영화를 만났다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배울 점이 많은 영화였다.”_조현훈
좋아하는 감독 & 영향받은 감독
김대환_ “좋아하는 감독은 오즈 야스지로다. 대학 때 단편영화를 찍으면서 스스로가 정말 영화를 못 만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와중에 한방을 안겨준 영화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어도 걸어도>(2008)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영화에 접근하는 태도, 영화적 선택과 시각 등을 보면서 내가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허우샤오시엔과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알게 됐고, 결과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오즈 야스지로가 됐다.”
김양희_ “좋아하는 감독은 나루세 미키오. 나루세 미키오 감독 영화의 미학적인 부분, 탐미적인 부분이 좋다. 그 원류에서 이어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좋아하는데, 생각해보면 일본영화가 일상을 그리는 태도가 와닿았던 것 같다. 일상을 감각하게 만드는 특유의 미학을 좋아한다. 실제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영화들은 1980~90년대 할리우드의 좋은 드라마 장르 영화다. <허공에의 질주>(1988), <스탠 바이 미>(1986), <보통사람들>(198) 같은 보편적인 드라마들.”
신준_ “처음으로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했을 때, 내가 만든 영화에 탱고 음악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왕가위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2010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특별전을 할 때 <밑바닥>(1957)을 봤다. 당시 한창 시나리오를 쓰다가 막혀서 괴로워하던 때였는데, 모든 캐릭터가 너무 생생했고 인물과 설정만으로 영화를 그렇게 끌고 간다는 게 놀라웠다.”
임태규_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를 하는 게 멋있어 보여서 영화과에 들어갔고, 이른바 시네키드는 아니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영화 이야기를 하면 소외감을 느끼곤 했다. 그러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다르덴 형제의 <더 차일드>(2005)를 봤는데, 진짜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감정을 느꼈다. 스크린 안과 밖의 경계가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고 그런 연출과 태도에 큰 영향을 받았다.”
조현훈_ “좋아하는 감독은 에드워드 양이다. 좋은 영화감독은 시대의 관찰자라고 생각하며 에드워드 양이 그런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건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이다. 그 시절 <복수는 나의 것>(2002) 같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영화를 하게 된 것 같고, 그런 점에서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이 내 영화의 뿌리라고 생각한다.”